애틀랜타에서 성공한 언론인 이국진사장

좌로부터 이승봉 본보발행인, 이국진 사장, 김원동 신문인협회 고문.

좌로부터 이승봉 본보발행인, 이국진 사장, 김원동 신문인협회 고문.

애틀랜타에서 성공한 언론인 이국진사장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인물 이국진! 과연 괄목할만한 발전이었다. 오늘의 그가 있기까지의 언론인으로서의 그의 입지전적 성공담은 미주 동포언론사에 한 획을 그을만한 쾌거라기에 족하다. 성실과 정직을 바탕으로 한 용기 하나만으로 숱한 난관을 극복하며 앞만 보고 묵묵히 정진한 결과이다. ‘미주동남부’라는 주간 생활정보지를 토대로 발판을 굳힌 그는 이제 일간 동아일보와 스포츠조선 및 주간동남부를 함께 발행하며 30여명의 직원규모가 말해주듯 순수 자생동포언론사로서는 드문 단단한 기반을 구축했다. 설립자본금이라 해봐야 겨우 몇 달치 인쇄비 수준이었던 사장 이국진. 그는 용기 하나로 도전했다며 편집 인쇄 배달까지 도맡아 해야했던 1인3역의 그 시절을 회상하며 말문이 막힐 때는 만감이 교차하듯 소주잔을 들고 한참을 망설이던 그의 눈에는 이슬이 고이기도 했다.
9월 9일에 있을 윤전기 도입 및 사옥 확장 이전 기념리셉션을 열흘 앞두고 현지를 방문한 필자에게 그는 몹시 바쁘게 지나고있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애틀랜타 외곽지대의 한인상가 밀집건물을 먼발치에서 마주보고 있는 최신형 건물에 사무실과 윤전기가 들어선 공장 건물을 함께 매입해 간판을 붙인지는 그리 오래지 않다. 그는 이번 최신형 윤전기도입과 사무실 확장에만 약 2백50만 달러을 투자했다. 그리고 다음주로 임박한 기념리셉션에서는 10여개가 넘는 현지 동포언론사의 사주들을 모두 초청해서 애틀랜타 동포사회 발전을 위해 언론의 사명을 다하자는 약속의 장소도 함께 마련할 계획이라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인 1989년 2월 어느 날 애틀랜타의 한인사회를 위해 뭔가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에서 그는 생업의 현장이던 그로서리 점포을 청산한다. 지금도 대종을 이루고 있지만 그로서리점이나 클리닝 업종에 종사하던 부분의 한인들은 같은 교회의 교우들이나 특정단체의 소속원들이 아닌 타업종의 동포들과의 교류가 전무한 것을 보고 함께 동참하고 발전하는 동포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뭔가 건전한 정보의 전달자로서 언론의 사명이 막중하다는데 착안하고 바로 실천에 들어간 것이 타블로이드로 발행을 시작한 주간동남부사의 창간이었다.
이른 새벽 잉크도 마르지 않은 신문뭉치를 들고 업소들을 방문 배포하던 그 때는 애틀랜타 발전에 기폭제가 되었던 올림픽이 치루어지기도 전인 시점에서 애틀랜타는 그리 각광받는 이민지도 아니었기에 모국에서 유입되는 이민자의 수도 제한적이었으며 동포사회의 모든면이 열악했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한다.
당시의 고충을 묻는 필자에게 그는 왜 없었겠냐며 가족들의 심한 질책도 그러려니와 무엇보다도 동포사회 발전에 해악 요인으로 지목되는 인물이나 단체에 대해 매도가 아닌 발전을 위한 차원에서 비평의 글이라도 쓰면 바로 고소전에 휘말릴 때라면서 일견 비판을 수용 못하는 문화권에서 살다 온 이민1세들이라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서 스스로를 달래 보기도 했다고 한다. 적잖은 변호비용의 후유증인들 왜 없었겠느냐며 그러나 이 부분만은 인터뷰기사에 싣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8만여 인구에 250여개에 달하는 한국교회가 난립 포화상태를 이루고 있는 그곳도 북미 어느 동포사회나 마찬가지로 크고 작은 뉴스거리가 편집데스크에 쌓이는가 하면 그래도 훌륭한 한국인으로서 지역사회 봉사나 발전에 기여하는 사람들의 소식을 접하고 기사화 할 때는 보람도 느낀다고 한다. 그는 보기에도 듣기에도 민망하고 난처한 뉴스가 홍수를 이루고 있는 모국에 대한 걱정도 많다. 그러나 애써 지역 동포사회 발전이나 화목을 위한 기사발굴에 Priority를 두라는 편집지침을 편집간부들에게 강조한다. 그래서 주간동남부는 배껴먹지 않는 신문으로 자림매김 한지도 오래다.
미주동포사회의 리더구실을 자임하고 나선 미주한인신문인협회에도 창설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요직을 두루 거치며 열심히 하고 있는 그는 회원사들의 미팅 때도 선후배를 가려 깍듯한 예의를 보이는데도 수준급이며 특히. 부인 이정난씨에게도 신문사 출입을 자제하도록 하는 것 역시 신문사 여직원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깊은 배려가 깔려 있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신사도를 보이기도 한다.
애틀랜타 한인동포사회의 맹주이자 수문장인 이국진사장의 희망과 용기로 가득찬 모습이 귀로의 캐나다국경을 넘을때까지 필자의 뇌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민 사반세기에 숱한 장애물을 뛰어 넘으면서 성공가도를 달리며 동포언론인으로 우뚝 선 불굴의 용기와 집념과 패기로 우뚝 선 이국진, 그의 야심 만만한 제2의 도약을 선언하는 그 뜻깊은 행사에 참석을 대신하여 이글을 띄운다.
김원동 / 미주신문인협회 고문 <2006-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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