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 한인 백인선” 출판기념회 인사말
안녕하세요. 이승봉입니다.
이곳에서 자동차로 8시간 정도 걸리는 펜사콜라와 포트윌튼비치를 비롯해 4시간반 걸리는 마이애미, 그리고 2시간 이상 걸리는 겐스빌, 올랜도, 그리고 탬파지역에서 참석하신 많은 동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백인선 출판기념회 잔치의 주인공은 여러분들입니다.
여러분들도 오늘 보셨겠지만 “플로리다 한인 백인선” 책자가 한국에서 인쇄해 배로 탬파항에 도착한 날 저는 한인 책자를 받아 들고 너무도 감격적이고 벅찬 마음에 그날 저녁 밤새 한 잠도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지난해 11월부터 약 7개월간을 신문을 발행해야지 편집해야지 기사 취재하야지 하면서 바쁜 시간을 쪼개어 백인선 출간을 위한 편집과 교정 등 힘겨운 시간이었기에 더욱 애착이 가는지도 모릅니다.
이 소고의 묶음에는 어렵고 힘들었던 이민 초기에 겪어야 했던 여러분들의 피땀어린 역경과 고난 그리고 현재 환희에 차 있는 기쁨의 미소가 담겨있는 여러분의 작은 자서전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올해는 미주 이민 백주년의 해 입니다.
초기 이민 선배들은 일본의 식민지하에 억압과 고통을 피해 자유를 찾아 이민길에 올랐습니다.
돌아 갈래도 돌아갈 조국이 없었던 우리 이민선배들은 조국 광복의 기쁨이 전부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초기 이민선배들은 “나는 없어도 나라는 살아야한다”라는 일념으로 당시 생활비의 절반 이상을 독립운동자금으로 바쳤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민 선배들의 조국사랑과 함께 나누는 삶이 오늘의 저와 여러분을 있게 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정말 자랑스러운 분들입니다.
단순한 이민의 삶을 살아오신 것이 아니라 풍토와 환경이 다르고 무엇보다도 삶에서 제일 중요한 언어가 다른 이 땅에서 이민 선배로 꿋꿋하게 한민족의 얼과 문화를 계승시키며 후손들의 번영을 위해 희생과 헌신을 아끼지 않은 위대한 한민족의 일원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으셨습니다.
이러한 여러분의 봉사와 헌신은 플로리다 한인 이민 역사에 길이길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각자각자 모두 위대합니다. 그리고 자랑스럽습니다.
자녀들에게 그리고 주위 친지분들께 나는 이렇게 살았노라고 떳떳하게 알릴 수 있는 이 소고의 묶음이 저를 비롯해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분들에게 자부심과 긍지를 갖는 중요한 역사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저는 예화를 통해 오늘 여러분들에게 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그는 한국에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 국가 고위직에도 있었지만 정권이 무너지면서 공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많은 재산이 있어 여러번 사업을 시도했으나 번번히 실패를 했다고 합니다.
그는 몇 번의 사업을 실패하면서 한국을 도망 나오듯이 빠져나와 미국 이민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민생활도 그에게는 고통과 좌절의 연속이었습니다.
그의 부인은 방황하는 남편을 교회에 나가자고 설득 함께 교회에 출석하던 어느 날 목사님의 설교 한 대목이 그의 뇌리를 찌르는 비수처럼 그의 가슴속에 파고들었다고 합니다.
내용인즉 어느 마을에 평생을 부유하고 평탄하게 장수를 누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아버지의 묘비를 세우고자 한 저명인사를 찾아가 비문을 부탁하였다고 합니다. 그 저명인사는 부친의 생전의 행적을 물은 뒤 한참 동안 천장을 바라보다가 붓을 들어 비문을 써주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태어나 먹고 살다 가다.’라는 문구였다고 합니다.
그는 이 짧은 일화에 불현듯이 “내가 죽은 뒤에 비문은 과연 어떻게 씌어질까”라는 의구심으로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며 고민했다고 합니다.
결국 그는 지난 삶이 사회에 아무 쓸모가 없었다는 자신을 발견하고 새로운 삶을 위해 목표를 세우고 가족과 나아가서는 주위의 모든 분들을 위한 봉사와 헌신의 삶을 살기로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면서 평화스러운 마음과 기쁨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나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다가 허무하게 종말을 맞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 이 동포사회를 위해 무엇인가를 남기고 가시는 의미있는 삶을 사신 존경받는 사람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언젠가 세상을 떠난 후 많은 후세들이 이 사회에 무슨 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아, 이 사람이 지금 있었으면 좋게 해결 할 수가 있었을 텐데’ 하는 많은 사람들의 기억과 역사에 이름이 남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오늘 기념식을 갖는 플로리다 백인선 책자와 함께 여러분들이 플로리다 한인 동포사회의 이민 역사와 후손들에게 존경받는 인물로 또 책으로 영원히 남아있기를 바랍니다.
진짜 여러분들은 위대합니다. 그리고 자랑스럽습니다.
오늘 츨판기념회를 가지면서 이책이 백만불보다 더 값진 유산으로 자손대대로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하여튼 여러분들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끝으로 이 책이 나오기까지 인터뷰에 응해주신 모든 분들과 지금 한국에 체류중인 김원동 북미주 신문인 협회 이사장님, 한국에서 책 출판이 늦어져 인쇄소 섭외와 출판 후 배로 선적해 주셨으며 출판기념식을 위해 축시를 써주시고 오늘 직접 시낭송까지 해주신 김낙영 시인께 감사드립니다.
또 기념식을 축하해주기 위해 참석해주신 언론인 대 선배이며 제가 제일 존경하는 KPI주필 이선명 선배님, 그리고 시애틀 코리아 포스트 이문우 발행인님 내외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또 오늘 기념식에서 사회로 수고해 주신 도영수관장님 그리고 축사 및 순서를 맡아주신 모든 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특히 오늘 이 장소와 푸짐한 음식 그리고 기념 케이크까지 약 2천불 이상의 금액이 들어가는 기념식 잔치 만찬을 무료로 준비해주신 골프장 대표이신 에디고 사장님과 사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진짜 중요한 분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오늘에 제가 있기까지 항상 기도와 사랑으로 버팀목이 되어주신 저희 어머님 장천덕권사 입니다. 처음에는 너무 힘들어하는 저에게 왜 신문을 시작해서 이렇게 힘들게 사냐며 그정도 노력이면 돈벌고 잘 살수 있는데 하시면서 남몰래 눈물을 흘리시던 어머님.
이 못난 아들의 고집을 꺾지 못하시고 항상 기도해 주시며 그래도 하나님이 사람을 세상에 보낼때에는 믿음가운데 선하게 살면서 남에게 무언가 보람된 일을 하며 베풀고 살라고 하셨다며 용기와 격려를 해주신 어머님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함을 표합니다. 어머니 사시는 그날까지 건강하고 편안하게 사세요.
두 번째 중요한 사람은 낮에는 신문편집 하랴 밤에는 책 교정을 보랴 밤새 쓰라린 눈을 비벼가며 계속하품을 하면서도 짜증한번 안 부리는 집사람 마이 하니인 이선화, 사랑합니다.
백인선 출간을 위해 자료수집과 잡다한 심부름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인 이승일 영업부차장, 교정과 편집을 도와준 김이남기자, 항상 신문의 발전을 위해 걱정해 주시는 임춘호 이사님, 최경수 이사님, 1991년 창간이래 지금까지 무보수로 본보의 발전을 위해 올랜도 기사를 취재해 송고해주시는 70세의 청년 김준식 이사 겸 올랜도 지사장님, 어머니가 한국인인 미국인으로 유창한 한국말을 구사하며 한국어로 기사를 송고해주는 포트윌튼 비치의 데브라 기자님, 그 외 한인사회의 발전과 본보의 발전을 위해 광고 및 후원으로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들이 계시기에 저와 신문사가 있습니다. 자랑스러운 여러분 항상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2003년 10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