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길가에 아름답게 피어난 들꽃(야생화)을 보며….

<김명열칼럼> 길가에 아름답게 피어난 들꽃(야생화)을 보며….

꽃보다 고운 낙엽들이 아침이슬에 세수를 하고 난 가을 산이 너무나 아름답고 신묘하다. 계곡마다 울긋불긋 각종 물감을 뿌려놓은 듯 붉게 토해낸 빛깔로 산들이 붉게 타고 있었다. 한폭의 산수화 같은 산안개 품은 계곡마다 배 띄워라! 깊디 깊은 심연의 바다가 계곡을 끼고 구비구비 흐른다. 지심귀명래라(지극한 마음 하나 데리고 나 고향

으로 돌아갑니다) 낙엽들이 쓰고 간 그 한마디가 아직도 귓속에 쟁쟁히 머물고 있다.

몇주전 내가 조지아, 테네시, 노스캐롤라이나 주 일대를 관광하기 위해 여행길, 오고가는 길옆(조지아주 고속도로 아틀란타 외곽 I-675) 그리고 플로리다 I-75, Exit 350 주변에는 이름 모를 들꽃(야생화)들이 아름답게 피어나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빠르게 고속으로 달려가는 운전중이었지만, 길가에 눈에 띄게 시야를 유혹하는 들꽃들이 피어나 있어서 잠시 차를 멈추고 그들의 곁으로 다가갔다. 집에서는 산책을 하며 가끔씩 길가 풀 섶에 피어난 들꽃을 마주 대할 기회를 갖지만, 이렇게 무리지어 군락을 이루어 아름답게 피어나 장관을 이루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이렇게 군락을 이루며 피어난 들꽃, 야생화 무리들을 만나고 나니 너무나 기쁘고 반갑기 그지없다.

매일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삶과 생활속에 권태감이나 피로감을 느낄 때면 나는 가끔씩 생활도구를 챙겨들고 훌쩍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가는 곳, 목적지는 으례히 산이 있고 숲이 우거진 자연속으로 간다. 산, 숲에 들면 여기저기서 풀꽃들이 인사를 한다. 새들도 장단을 맞춘다. 나뭇가지에 앉아 저희들끼리 뭐라고 떠들며 노래하고 재잘대는 그들의 모습이 나를 반기는 소리라고 나름대로 생각한다. 착각은 자유라고 하는데…… 무두가 다 반가운 소리이고 몸짓이다. 나무들도 일제히 잎을 흔들며 다가서는데 나무 가지를 흔들며 지나가는 산바람이 “참 잘오셨습니다, 자연속에 심신을 풀고 즐거운시간 가지세요”라고 나에게 인사를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이렇듯 들꽃과 나무와 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침묵의 언어가 있다. 자연이 내는 소리는 시끄럽지 않다. 들으면 들을수록 더 듣고 싶어진다. 그걸 알아차리는 데는 그리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한 소리의 언어는 어디를 가든 들을 수 있었고, 소통할 수 있었다. 엘로스톤에서, 요세미티에서,그랜드캐년에서,스모키마운틴에서 등등, 그리고 얼마전에 다녀온 Blue Ridge Parkway에서도……. 어느곳 어디에서든지 내가 다녀온 수십 수백군데의 산과 들에서 그 자연이 내는 소리와 들꽃들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런 중에 그러한 자연과의 대화와 소통은 나만의 고유 영역이 되어 오늘도 나는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번의 여행때도 그랬다. 넓은 들가에 지천으로 피어난 들꽃을 보며 가까이 가서 구부려 엎드려 앉아 한참동안 묵언의 대화를 나눴다. 특히 고속도로변에 질펀하게 피어난 들꽃들은 나를 반기며 침묵의 미소를 보내주었다.

들 생명, 산 생명들은 언제보아도 거룩하고 신비롭다. 크고 화려한 것만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 이 가을에 피어난 들꽃(야생화) 한송이는 미미한 존재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바람에 꺾이고 발에 짓밟혀도 다시 살아나 그 질긴 생명력을 이어가는 들꽃 한송이에서 우리는 자연의 숭고함을 배우게 된다. 하찮은 것이 때로는 더 위대하다는 걸 저 들꽃 한송이가 보여주고 있다.

들꽃은 자연의 섭리가 닿지 않고서는 피어나지 않는다. 이 세상에 우연이란 없다. 만나고 헤어지고 피고 지고 하는 일을 자세히 뜯어보면 다 사연이 있게 마련이다.

들꽃의 생애는 사람살이와 닮은 점이 참 많다. 사이좋게 어울려 피기도 하고, 때론 제자리를 뺏기지 않기 위해 다른 꽃들을 밀쳐내기도 하며 눈길이 닿지 않는 외진 곳에 숨어 홀로 피는가 하면 애달프게도 병이 들어 생을 일찍 마감하기도 한다. 시기하고 웃고 좌절하고 슬퍼하고 다투고 자랑하고 화내고….

그렇다 이세상의 모든 목숨들은 다 질서와 감정을 지니고 살아간다. 향기와 멋으로 세상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는 들꽃 한송이를 보면서 나 자신을 뉘우치게 된다. 나는 어떤 존재이며 이 세상에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지 스스로 묻게 되는 것이다.

가을의 멋은 가을만이 간직한 분위기에 있는듯 하다. 단풍, 낙엽에서 느껴지는 포근한 색감이 좋고,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리움과 고독에 몸을 떨기도 한다. 옷자락을 파고드는 서늘한 바람 한줄기에서 문득 따뜻함을 찾기도 하고 반코트를 입고나온 사람들을 보면서 겨울을 예감하기도 한다. 아무리 삭막한 사람살이라지만 함초롬히 얼굴을 내민 한송이 들꽃 앞에 서면 마음이 한없이 순수해지고 편안해진다. 꽃을 “자연의 어머니”라고 말한 사람도 있지만 꽃이 지닌 신비와 오묘함은 그 자체가 감동이다. 피는 시기와 맺는 열매는 달라도 아름다운 한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갖은 고초를 견뎌낸다. 들꽃이 사람과 다름점이 있다면 제 몫 이상의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들꽃은 절대로 다른 꽃들을 부러워하지도, 닮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생긴 대로 피고 지면서 한 생애를 조용히 살아간다. 주어진 만큼의 힘으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 일을 쉬지않고 해 낸다.

들꽃은 베풂과 나눔이 뭔지도 알고있다. 들꽃은 자신이 가진 향기를 이웃들에 게 아낌없이 베풀줄 안다. 베풀고 나눌줄 아는 마음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변덕이 죽끓듯 하고,탐욕의 손길을 서슴없이 내밀고, 거짓이 하늘을 찌르고, 드러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들꽃(야생화)의 겸손과 겸양은 무엇을 말하는가, 곰곰히 되새겨볼 일이다.

이번 여행 중에 본, 산과 들에 지천으로 피어난 온갖 들꽃들은 하나같이 아름다웠다. 그 고운 빛깔과 무늬에 감탄하고 향기에 몸을 들썩거리고 손에 닿는 보드라운 질 감에 놀라고 주변 풍경과 너무도 잘 어울려 감동하고……..그것은 자연이 보여주는 훌륭한 예술의 기교였다. 산과 들을 거닐면서 만나게 되는 숱한 꽃들은 모두가 다 이름과 사연을 지니고 있다. 그 구구절절한 사연이나 이름을 낱낱이 알 수 없으니 들꽃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다만 부끄러울 따름이다. 게으름 탓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이제 머지않아 기온이 내려가고 찬서리, 눈발이 내리는 추운겨울이 닥치면 모든 초목과 들꽃들도 시들어 생명을 다 할 것이다. 한껏 피어나서 자태를 뽐내며 저마다의 정서를 아름답게 가꿔주는 들꽃이야말로 자연의 고마운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매일매일 생존 경쟁속에 내몰린 이들에게 한떨기 꽃이 던져주는 위로와 기쁨은 참으로 고마운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꽃을 보고도 별다른 감정이 없다. 빡빡하고 고달픈 현실이 삶의 여유를 앗아간 것일까. 우리는 여기서 한가지 진실에 도달하게 된다. 삶이 아무리 힘들고 고달플지라도 현실에서 한발짝 물러난 삶을 관조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는 것, 맞다.

지금 부터라도 이런 관조의 삶을 실천해볼 일이다. 바쁘단 말을 하루에도 수십번 되뇌는 사람들에게 꽃은 한낱 사치로 여겨지기 십상이지만 생각을 바꾸면 진정한 나를 되찾을수 있다. 한송이 들꽃을 앞에 놓고 가만히 내면에 귀를 기울여 보라. 보다 순수하고 성숙해진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앞만 보고 달려온 자신에 대한 반성은 늘어진 삶에 자신감을 불어 넣어준다.

햇볕 괸 산비탈에 다분다분 피어난 들꽃무리, 바람소리, 새소리, 물소리를 들으며 오늘도 그렇게 한송이 꽃으로 살아간다. 산바람,강바람에 꽃 대궁을 흔들며 몸속에 지닌 향기를 어디론가 실어 보낸다. 들꽃의 삶이란 이처럼 질서정연 하다. 저 들꽃에 견주어 인간들이 보여주는 삶의 행태란 얼마나 부끄러운가. 시기하고 질투하고 헐뜯고 모함하고 싸우고……세상이 빨리 변할수록 인간 본연의 순수함으로 돌아가야 한다. 햇살 한줌, 향기 한줌, 물 한모금의 고마움을 아는 사람으로 거듭 나냐 한다.

요즘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마른 풀냄새가 가득한 들판을 만날 수 있다. 집 근처,밭 뚝, 기칫길 옆, 도로 변 할 것없이 가을꽃들이 담뿍담뿍 피어있다.

고속도로변 큰 길가에 피어난 들꽃들은 차가 지나갈 때마다 이쪽저쪽으로 휩쓸린다. 흙먼지 자욱히 뒤집어쓰고도 아무런 불평불만이 없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오늘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가을에는 누구나 가슴앓이를 한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고독과 쓸쓸함이 무슨 전염병처럼 쌓인다. 산길을 홀로 걸어봐도, 강가에 나부끼는 억새를 바라봐도, 뭉게구름과 눈을 맞춰 봐도 마음 한구석에 쌓인 쓸쓸함을 쉬이 떨칠 수가 없다.

얼마남지 않은 이 가을 내내 이 쓸쓸함과 숨박꼭질을 해야 할 것 같다.

저 산과 들에 옹기종기 피어난 들꽃들과도 대화하는 시간을 꼭 갖고 싶다. 지난 여행중 어느 산속 오솔길에서 얻은 삶의 지혜를 그대들에게 나눠주고 싶다. 들꽃 향기를 당신의 가슴에 안겨주고 싶다. <문학 작가 김명열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383/2023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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