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세상의 각종 아름다운 향기들

<김명열칼럼> 세상의 각종 아름다운 향기들

연 노랑을 함께한 초록색의 윤택한 잎과 고결하고 청아한 핑크빛 연분홍 꽃과 하얀 옥잠화, 보라빛의 난쟁이 꽃, 샛빨간 앵두빛 꽃 등등의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귓불을 간지럽히며 스쳐가는 봄바람에 하늘거린다. 훈풍을 동반한 산들바람과 함께 춤추는 맑고 달콤한 꽃향기가 봄하늘에 가득하다. 지난밤 밤이슬을 듬뿍 머금고 새롭게 피어난 꽃은 선녀가 되어 밤새 반짝이는 별들을 지켜주고 있었다. 낮이 되어 화사한 봄 햇살에 눈이 부신 듯 수줍어 고개를 숙이며 아름다운 향기로 햇님에게 손 인사를 보내고 있다. “이 향(香)을 어떻게 간직할 수 있나요?” 물음에 햇님은 아무런 대답이 없다. 이에 갓 피어난 들꽃은 그저 빙그레 미소를 보내며 보이지 않지만 느껴지는 향기를 전해준다. ‘향기는 기억으로 간직된다’라는 말처럼 향기는 기억으로 가슴에 남는다.

나는 지난주 2년만에(매년 방문을 하지만 작년에는 코로나19 때문에 가지 못했음) 테네시주와 노스캐롤라이나주를 함께 끼고 있는 스모키 마운틴 국립공원과 Nantahala National Forest(난타하라) 국유림을 여행하고 돌아왔다. 그곳에 가보니 따듯한 봄을 맞아 만물이 소생하며 대자연속의 초목과 생물들은 봄을 찬미하듯 저마다 주어진 생명을 감사하며 나름대로 그들만의 독특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이곳은 매년 계절에 따라 그 모습과 색깔이 변화되듯이, 초목들의 향기 또한 봄 여름 가을 겨울, 춘하추동의 냄새와 향기 또한 다르게 뿜어져 나와 색다른 감정을 느끼게 한다. 금년에도 내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 역시 봄날의 따스한 햇볕과 더불어 각종 들풀과 야생화, 그리고 나무에서 풍겨져 나오는 그윽한 향기는 전신을 자극하고 코끝을 즐겁게 해주는 자연의 향기 또한 나의 몸과 마음을 풍선처럼 부풀려 뜨게 하여 하늘을 나는 듯 한 황홀감을 선물해주었다. 특히 이름 모를 야생화에서 뿜어져 나오는 들꽃의 향기는 더욱더 나를 황홀감과 무아경으로 몰입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유혹의 손길을 떨쳐낼 수 없게 하였다.

꽃은 빛깔과 향기로 노래한다. 빛깔과 더불어 향기가 없으면 꽃이 아니다. 이러한 향기의 의미는 우리에게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대개 향기를 좋아한다. 어떤 사람은 살짝 스치는 여인의 몸과 머리에서 풍겨나는 향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샤넬 No9을 좋아하고, 또 어떤 사람은 어머니의 젖 냄새를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은은하게 풍겨져 나오는 커피 향을, 그리고 어떤 사람은 국화의 향기를 좋아한다. 이 세상에는 참으로 향기가 많다. 꽃향기가 있는가 하면 풀 향기가 있고, 그런가 하면 음악의 향기도 있다. 숲 향기, 자연의 향기, 봄의 향기, 가을의 향기, 농촌의 향기, 흙의 향기, 신록의 향기, 연인의 향기, 술의 향기, 전통의 향기, 문학의 향기, 입술의 향기, 나무의 향기, 글의 향기, 깨소금 향기, 사람의 향기 등등이 있는가 하면 우리가 추구해야할 나누고 베푸는 인정의 향기도 있다.

나의 어린 시절 저녘 무렵 굴뚝에 피어오르는 연기를 볼 때마다 나는 가끔씩 부엌에 들어가 어머니가 새까만 가마솥 뚜껑을 여실 때 풍겨오는 구수한 밥 냄새를 맡았다. 그 냄새는 나를 한없이 행복하게 해줬다. 어머니 냄새와 함께 이 세상에 어떤 부러운 것도 없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소나무장작냄새도 좋았다. 솔가지를 분질러 아궁이에 불을 때다보면 손은 송진이 묻어나 끈적대며 새까매졌지만 그윽하게 나무 타는 냄새와 함께 풍겨져나는 송진 냄새가 그렇게 좋았다. 또 어머니가 다듬이 방망이로 다듬이 돌 위에 옷을 올려놓고 두드릴 때 무명옷감에서 퍼져 나오는 그 냄새도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이렇게 세상은 향의 천지다. 향기가 없으면 악취의 냄새라도 나는 것이 세상이다. 이런 악취를 좋아할 사람은 없으리라 본다. 사람들은 옛 부터 향과 함께 생활해왔다. 그 예는 서울에 있는 경복궁에서도 찾을 수 있다. 경복궁 안에는 1867년 고종이 건천궁 남쪽에 못을 파 향원지(香遠池)로 이름 지은 작은 연못이 있다. 못 가운데는 섬처럼 떠 있는 향원정(香遠亭)과 이 정자로 이어지는 구름다리 취향교(醉香槗)가 있다. 이곳은 이들의 이름마다 온통 향기의 세상이다. 그런가하면 우리의 선조들은 선비가 사는 집을 ‘난 향기가 나는 집’이라는 뜻의 난형지실(蘭馨之室)이라고 했다.

예로부터 선비들은 운치 있는 네가지 일(4예=四藝)로 차를 마시며, 그림을 걸고, 꽃을 꽂는 일과 함께 향을 피우고 즐겼다고 한다. 심신 수양의 방법으로 거처하는 방안에 향불을 피운다 하여 분향묵좌(焚香默坐)라는 말도 있다. 우리 옛 여인들의 몸에선 항상 은은한 향이 풍겨 나왔고, 향수, 향로 제조기술은 어진 부인의 자랑스런 덕목이었다고 한다. 신라의 진지왕은 도화녀와 잠자리를 같이할 때 침실에서 향을 사용했는데 그 향내가 이레 동안이나 지워지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또 신라시대에는 아랍지역에 사향과 침향을 수출하였고, 일본에도 용뇌향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향을 수출하였다고 한다. 중국 문헌에 의하면 신라에서는 남녀노소가 신분의 귀천에 관계없이 향낭(향 주머니)를 찼다고 한다. 고려도경(高麗圖經)을 보면 고려에는 향을 끓는 물에 담아 옷에 향기를 쏘는 박산로(博山爐)가 있었다. 또 고려의 귀부인들은 비단 향주머니 차기를 좋아했으며, 흰모시로 자루를 만들어 그 속을 향초(香草)로 채운 자수 베개를 이용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고려인들은 난탕(蘭湯)이라 하여 난초를 우린 물로 목욕하거나 향수물로 목욕해 몸에 향내를 물씬 발산시켰으며 초에 난초 향유를 혼합해 향내가 방안에 그윽하도록 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향을 복용한 향낭(香娘=동정녀)을 부여안고 회춘(回春)을 기대했다는 기록을 보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일부 사람들은 향을 먹기도 한 것 같다. 조선시대엔 부부가 잠자리에 들때 사향을 두고 난향의 촛불을 켜 두었다. 모든 여자들이 향주머니를 노리개로 찰 정도였다. 부모의 처소에 아침문안을 드리러 갈 때는 반드시 향주머니를 차는 것이 법도로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왜 우리의 조상들은 이렇게 향 생활을 즐겼을까? 우리나라 옛 사람들, 특히 여성들이 가장 즐겨 사용한 향은 사향이었다고 하는데 사향이 우리나라 팔도 각지에서 생산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상비의 약품으로 효용가치가 높았기 때문이다. 사향은 응혈된 피를 용해시키는 작용을 하며 토사곽란(토하고 설사하며 배가 아픈 병)을 진정시킨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흥분제로도 쓰인 것으로 보인다. 난초에서 얻는 난향은 우울증을 풀어주고 흥분을 진정시킨다고 한다. 향유병을 비롯하여 향로, 향꽂이, 향주머니, 향집, 향갑 등 향구(香具)들도 다양하게 제작되었다. 이들 향은 시전에서 판매되기도 했지만 대부분 가정에서 자가 제조되었다. 예부터 향은 건강을 지키기 위한 도구로 사용했다. 다시 말해 향 생활이야말로 우리의 건강을 지키는데 좋은 방법일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향이 우리들 생활에 중요했던 것은 향이 단순히 육체적인 약제로 쓰이는 것뿐 아니라 정신생활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향과 더불어 사람들의 지혜도 발전해, 우리가 여름철에 벌레를 쫓기 위해 피우는 모깃불도 이 향 문화의 한 갈래이고, 추석에 먹는 솔잎 향기가 밴 송편과 이른 봄의 쑥과 한증막속의 쑥 냄새, 그리고 단오날 머리를 감는 창포물도 우리의 삶을 건강하게 만드는 향기의 하나였다. 또 장롱안에 향을 피워 향내를 옷에 배게하여 늘 옷에서 스며나는 향기를 즐기기도 하고, 옷을 손질하는 풀에 향료를 넣어 옷에서 절로 향기가 스며 나오게도 하였다. 한걸음 더 나아가 향기를 잠자리에 끌어들이기도 하였는데 국화로 베개를 만들어 사용하면 머리와 눈을 맑게 할 수 있고 탁한 기운을 제거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런 우리의 향 문화는 외국의 향과 향수에 밀려 촌스러운 것 또는 하찮은 것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런데 도대체 그 향기는 어디로 다 간 것일까? 지금 우리나라의 향은 지난 왜정시대와 6.25사변 그리고 개발도약 시대를 지나 정신보다는 물질의 시대가 되면서 잊혀지게 되었다. 향을 수출하고 천년 뒤 후손에게 물려줄 향을 묻던 고려인들의 마음은 이미 사라졌다. 고려말 조선 초에 민중들의 염원이 담긴 매향의식은 향나무를 바닷가 개펄에 묻어두는 것인데 왜구의 침략을 당한 서민들이 먼 훗날 어떤 사람들이 쓸지도 모를 어느 사람과 함께 향나무를 묻는 의식이었다. 누군지 모를 어느 사람과 함께 향을 나눌 수 있는 그 뜨거운 마음이야말로 향 생활의 진정한 의미를 이야기해주고 있지는 않을까? 또 남에게 악취가 아닌 기분 좋은 향기를 나눠주는 것이야말로 더불어 사는 삶의 실천일 것이다. 한자의 향(香)이란 글자는 벼 화(禾)자에 날 일(日)자를 하고 있다. 벼가 익어가는 냄새를 향이라 하는 것이다. 향을 싼 종이에서는 향기가 우러나온다. 이 말을 우리의 삶에도 도입해보자. 삶이 내면에 향기를 품고 사는지, 아니면 악취를 안고 사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품격은 결정된다고 하겠다. 내 몸에서도 향기가 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남을 즐겁게 하고, 또 동시에 내가 건강할수 있으면 좋겠다. 화학작용을 거쳐 추출 된 서양식 향수보다는 한약재로 만든 우리의 천연향을 즐기는 슬기로움이 우리의 건강을 지켜낼 수도 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래가 있다. 꽃의 향기는 십리를 가고, 말의 향기는 백리를 간다. 베품의 향기는 천리를 가고, 인품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고 한다. 아마도 이 세상에서 사람의 향기만큼 오래가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나에게서는 무슨 향기가 날까?……….. 어떤 향기가 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달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향수를 뿌리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인공적인 향수는 한시적인 향기일뿐 지속적일 수는 없다. 사람의 진정한 향기는 내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인품의 향기를 머금은 사람은 저마다의 독특한 향기를 지니고 있다.

수많은 꽃들은 제각기 다른 향기로 자기의 존재를 알린다. 그래서 벌과 나비들이 모여든다. 사람들도 이와 같다. 저마다의 향기로 사람들과 더불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향기와 꽃의 향기는 같은 의미의 향기가 아니다. 꽃의 향기는 냄새로 느낄 수 있지만, 사람의 향기는 마음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의 향기는 인품, 성품 또는 인간성 등이 좌우한다. 인품의 향기는 양심이라는 바탕위에 사람으로써의 착한 본성을 잃지 않는데서 생겨난다. 그리고 자기 분수를 지키며,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것에서 생겨난다. 이런 사람들만 있으면 이 나라는 정의로운 사회가 되고, 부정부패는 사라질 것이다. 또한 양심을 저 버리고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부정을 저지르는 악취나는 사람들의 설 자리는 없어질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나치게 자기를 과시하려고 하거나 자신을 인정받으려고 하는 사람은 경계해야한다. 다시 말해 타인의 존경과 관심의 대상이 되기위해 끝없이 집착하는가 하면, 내면의 충실함보다는 겉치레에 상식 이상의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은 ‘자기애성 인격장애’를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사람에 대한 평가도 겉 만보고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겉모양이 화려해도 그 본성이 속물적이거나,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교만이 가득 차 있다면 인품의 향기가 날 리 만무하다. 우리가 이끌어 가는 사회에는 사람답게 사람냄새가 나야한다. 평소에 남을 대할때 한마디의 말에도 아름다운 말의 향기가 백리를 가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나이가 들수록 그만큼 경륜이 쌓이므로 더 많이 이해하고 더 크게 배려하며 더 너그러워져야 한다. 나이가 든 만큼 살아온 날들이 남보다 많은 우리들이다. 인품의 향기가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삶을 우리 모두가 살았으면 좋겠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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