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현대인들의 기호식품(嗜好食品), 라면 이야기

<김명열칼럼> 현대인들의 기호식품(嗜好食品), 라면 이야기

라면은 세계 여러나라에서 국가와 민족이나 인종, 종교, 계급, 성별 등과 관계없이 누구나 선호하고 즐겨 먹는 기호식품이다. 여행을 좋아하고 틈나는 대로 여행을 다니는 나에게 이 라면은 절대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필수품중의 하나다.

새들이 지저귀는 깊은 산속, 바윗돌 위 계곡 물가에서, 거울처럼 맑은 물위에 아름다운 풍경이 비쳐지는 아름다운 호숫가에서….. 낙엽이 떨어지는 산책로 단풍나무 그늘에 앉아 뜨거운 물속에 끓여 나온 얼큰한 국물을 시원하게 마시며 쫄깃쫄깃한 면발을 씹으며 김치와 함께 먹는 그 맛은 신선들이 먹는 선식(仙食)인들 이러한 묘미의 맛을 음미해볼 수 있을까?……..

내가 군대에 입대해 군무생활을 할 때 이야기다. 군대 병영생활속에 먹는 라면의 맛은 왜 그렇게도 맛있고 좋았을까. 추운 겨울 한밤중, 새벽녘 1~2시에 보초를 서고 내무반에 들어와 얼은 손발을 녹이며 장작난로 불에 끓여먹는 라면은 왜 그리도 맛있었는지?…….! 글자 그대로 둘이 먹다 한사람이 죽어도 모를 정도로 맛이 너무나 좋았다. 거기에다 지난주 외출 때 시내에 나갔다가 몰래 사 가지고 온 두꺼비 소주를 관물함에서 꺼내 홀짝 홀짝 반주로 마시다 보면, 어떠한 일류 식당의 메뉴도 이런 맛을 따라올 수가 없을 정도다.

라면은 1960년대 중반에 처음으로 국내시장에 선보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내가 처음 군대에 입대했을 당시에는 군대에는 라면이 공급되지 않은 상황이었고, 1970년대 초에 들어서 일반 군부대에 라면이 공급되었다. 군대에 공급된 라면은 시중에서 낱개로 포장되어 판매되는 라면과는 달리 사각형으로 제조된 1인용 라면을 수십개씩 커다란 박스에 담아 포장해온 군대전용 라면이었다. 맛도 시중의 것과 비교하면 한층 질이 낮은? 라면이었다. 그래서 나 같은 경우 가끔씩 외출, 외박을 맞아 시내에 나오게 되면 시중에서 판매되는 라면을 잔뜩 사가지고 들어와 이렇게 가끔씩 요긴하게 끓여먹곤 했다.

현재의 인스턴트 라면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뒤 극심한 식량기근을 해결하기 위해 일본에서 대만계 일본인인 ‘안도 모모후쿠’가 발명했다. 당시 미군 구호품으로 밀가루가 많이 있었기에 이를 이용한 새로운 식품을 고안하게 되었다. 밀가루로 국수를 만들어 기름에 튀겨 국수 안의 수분이 증발되고 이후 뜨거운 물에 들어가게 되면 본래의 상태로 풀어져 먹기 좋은 상태가 된다. 최초의 즉석라면은 1958년 8월25일에 현재 ‘닛신식품’의 전신인 ‘산시쇼쿠산’에서 생산한 치킨라멘이었다. 초기 라면은 양념이 면에 더해진 상태였으나 이후 1962년에 스프를 분말로 만들고 따로 첨부한 형태의 봉지면이 인기를 끌게 되었다.

라면이 한국에 처음 도입된 것은 1963년 9월15일이다. 1963년 9월15일에 삼양식품 창립자 전중윤 회장은 일본의 묘조식품 으로부터 제조기술을 전수받아 처음으로 삼양라면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그 당시 라면 가격은 10원이었다. 처음에는 생소하여 판매가 부진했지만, 무료 시식회에서 사람들에게 그 맛을 인정받으며 곧 서민들의 음식으로 환영받게 되었다. 그 당시 박정희 정부의 혼분식 장려 정책도 라면이 널리 보급되는데 기여했다. 정부는 쌀 부족문제 해결을 위해 혼식(잡곡밥)과 분식(밀가루)을 강제로 시행하는 정책을 실시했는데 그 정책 덕분에 라면은 많이 팔릴수 밖에 없었다. 그 실제 사례로 1969년 한해동안 1500만봉지가 팔렸다. 1970년대 들어서는 즉석 짜장면, 칼국수, 냉면 등의 다양한 제품들이 나왔다. 1982년 11월17일 육개장 사발면의 출시를 시작으로 용기에 직접 뜨거운 물을 부어 먹는 컵라면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는데 이후 짬뽕라면, 비빔라면, 라볶이, 쌀라면, 매운라면 등등 벼라별 종류의 수없이 많은 종류의 라면들이 지금은 식품점 진열대를 거의 독차지 하고 있을 정도다.

그 당시에 독과점을 이루고 있던 삼양라면 광고에 나오는 재미있는 문구 하나를 소개해 드리겠다. (1) 일반시민 여러분 (2) 이것이 무엇입니까 (3)삼양라면입니다 (4)사용해 보십시요 (5) 오골오골한 라면에 (6) 육류스프를 넣고 (7) 칠칠하게 끓이지 마시고 (8) 팔팔하게 끓여서 (9) 구수하게 잡수시고 (10) 십원만 내십시오.

삼양라면이 승승장구 성공을 거두며 한국시장을 석권하고 있을 때, 롯데공업이 도전장을 들고 라면생산업에 뛰어든다. 롯데에서 라면을 생산한 것은 1965년, 이후 롯데공업은 75년 당시 최고 인기코메디언이었던 막둥이 구봉서씨와 후라이보이 곽규석 씨를 등장시킨 광고, ‘형님 먼저 드시오, 아우 먼저 들게나’라는 카피로 유명한 농심라면을 내 놓는다. 농심라면의 성공을 계기로 롯데회사의 사명을 아예 농심으로 교체하기에 이른다. 현재 한국시장의 점유율은 업체 조사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농심이 70% 가량을 점유하며 1위를 달리고 있고, 다음으로 삼양라면 (13~14%), 한국 야구르트, 오뚜기 등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앞서도 잠간 언급했듯이, 내가 처음 군에 입대했을 당시(1968년)에는 라면이 군대에 공급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1970년도 초(제대 1년전)에 처음 라면이 공급 되었다. 그 전에는 시중에서 별도로 사 와서 영내에서 끓여먹었는데, 나는 대학시절 같은 학과 급우가 ROTC장교로 같은 부대에 근무하는 연고로 그 친구 덕분에 군대에 라면이 보급되기 전부터 그 친구가 자기집에 출퇴근 할 때 사다가 주어서 라면을 자주 끓여먹을 수가 있었다. 군인들에게 라면을 식사용으로 제공하자는 논의는 1968년도에 시도가 되었고, 분식장려의 국가시책과 다양한 급식을 주자는 모토에서 한국군은 쌀이나 보리쌀에 의존하던 주식의 일부를 분식으로 대체하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1968년 3월5일부터 연구에 들어갔고, 약 1개월간의 실험 끝에 국수를 비롯한 8개품목중 6개 품목이 급식 대체용으로 채택되었다. 그 품목은 국수, 우동, 짜장면, 수제비, 콩국수 그리고 라면 이었다.

1968년 육참총장의 재가를 받고서 2차 시험에 들어갔는데, 이번에는 병력숫자를 늘려 약 1만여명의 장병들을 대상으로 10일간 시험한 결과 72%가 급식에 찬성을 하고, 빵 14%, 수제비 17%, 찐빵은 11%만이 찬성했으며, 압도적으로 라면이 최고의 인기품목으로 선정되었다. 이에 따라 1969년에 라면을 끓이는데 필요한 장비들을 확보하였고, 후반기부터 매주 일요일날 일부 군 부대에 라면이 공급되었다.

그후 1970년대 들어서는 거의 모든 군부대에 라면이 공급되어 군 장병들은 그 맛있는 라면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군대에서 먹는 라면 맛은 일반 사회에서 먹는 라면 맛보다 몇갑절 더 맛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당시보다 훨씬 더 품질이나 맛도 더 개선되고 입맛에도 더 알맞게 제조되었는데, 아무리 좋은 라면을 사서 먹어보아도 옛날 그 시절, 군대에서 끓여먹던 그 라면의 맛은 찾을 수도 없고, 맛 볼 수도 없으니 그만큼 나의 입맛이 변했나보다.

<문학 작가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409/2024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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