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내와 나쁜 아내. 양처(良妻)와 악처(惡妻)

좋은 아내와 나쁜 아내. 양처(良妻)와 악처(惡妻)

한국의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정은 젊은 청춘남녀가 만나 부부가 되고 그 부부는 자연스럽게 한 가정을 이루게 된다. 이렇게 가정이 성립되면 그 가정을 지키고 관리하는 것은 아내들의 몫이다.

물론 내면적으로는 남편이 경제력을 갖고 살림비용을 대 줘야 한다. 요즘같은 세상에는 맞벌이 부부가 많아서 남녀의 역할에 구분이 없어지는 추세이지만, 이세상의 남편들은 대개들 자기의 부인을 악처 이거나 양처의 두 부류로 나눈다. 물론 중간도 있을 것이다. 남편들 모두가 자기부인이 양처이기를 원하지만, 살아가면서 아내를 악처로 만들기도 한다. 한 가정에서 아내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는 이율곡 선생의 조언만으로도 알 수 있다. 그는 ‘집을 다스리는 데에는 먼저 아내를 바르게 해야 한다’고 했다. 탈무드에서는 어진 어머니가 시집간 딸에게 보내는 충고가 나온다. ‘내 딸아, 네가 만약 네 남편을 왕처럼 존경한다면 네 남편은 너를 여왕처럼 대우할 것이다’ 즉 남편은 아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는 말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양처는 넘치도록 찬사를 받는다. 구약성서는 ‘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라고 표현했다. 탈무드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사람은 좋은 아내를 가진 남자’ 라고 했다. 반면 악처에 대한 성토는 가혹하다. ‘모든 악중에서 악처만큼 나쁜 것은 없다. 남자에게 있어 나쁜 아내를 얻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없다. 하루의 우환은 아침 이슬이요 일년의 우환은 가죽신이며 평생의 우환은 성질 사나운 아내다. 어진 아내는 남편을 귀하게 만들고 못된 아내는 남편을 천하게 만든다. 경박한 아내는 침울한 남편을 만든다. 쓰러진 말은 수레를 부수고 악처는 집을 부순다’ 이와 같이 악처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의 글들은 너무나 많다.

지금으로부터 5천년전 메소포타미아 지역 수메르인들이 최초로 문자를 사용한 이후 역사에 이름을 남긴 세계 3대 악처가 있었다. 악처는 태생부터 악인인가, 아니면 누가 악처를 만드는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다수 착하고 심성이 고운 여성과 남성의 이야기와 달리 세계에서 유명했던 악처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다. 흔히 세계3대 악처라고 하면 러시아의 대 문호 톨스토이의 부인 ‘소피아’와 고전음악의 대가인 모차르트의 부인 ‘콘스탄체’, 그리고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부인인 ‘크산티페’가 유명하다. 우리에게 이렇게 전설적이고 훌륭한 위인들의 부인들이 악처라니?….. 왜 이래? ….. 톨스토이의 걸작 안나카레리나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가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자의 이유로 불행하다’ 아마도 이 구절은 톨스토이의 경험담 일지도 모른다. ‘소피아’는 톨스토이를 따르는 제자들에 대한 질투와 유산 문제로 자살하겠다고 협박하며 톨스토이의 애를 태웠다. 끝내

참다못한 톨스토이는 가출하여 ‘아스타보포’ 역에서 죽게 되었고, 그녀는 남편을 내쫓아 죽게만든 악처가 되었다. 여기 까지만 보면 그녀의 질투심과 톨스토이에 대한 협박이 나쁜 결과를 가지고 오게 한 악처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그러나 소피아는 남편을 도와 “전쟁과 평화”를 6번씩 옮겨 적는 등, 톨스토이의 작품은 그녀의 손을 통해 태어났다. 톨스토이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대단한 악필이었지만 그녀만은 그의 글을 알아볼 수 있었다.

톨스토이는 방탕한 바람둥이였지만 출산과 육아는 소피아만의 문제로 억척스레 가정을 지켜온 장본인이었다.

다음은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 이다. 그녀의 악행은 매우 심한 낭비벽이었다. 남편이 죽은 후 6명의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라지만, 모차르트의 자필 악보나 서책을 팔아서 생활했다. 남편이 죽고 새로운 남자 ‘닛센’과 재혼을 한 이유로 악처로 불려졌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의 말로는 콘스탄체는 교양이 높고 가사에도 열심인, 밝은 성격의 여성이라고 한다. 무엇보다도 모차르트 자신이 아내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편지를 많이 남기고 있었다.

사실 당대 음악가의 아내 모두 악처라는 평을 들었고, 다만 우리에게 바하의 아내 ‘빌케’, 슈만의 아내 ‘클라라’ 만이 현모양처로 남아있으니 후대의 콧스탄체의 평가는 박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우리에게 알려진 악처의 끝판 왕은 역시 소크라테스의 부인 ‘크산티제’가 아닐까? 친구 좋아하는 소크라테스에게 친구들 앞에서 바가지로 머리에 물을 쏟아 부은 사건은 유명해서 많은 예술작품의 소재가 되고 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전혀 화를 내지 않고 ‘벼락 뒤에는 비가 내리기 마련이지!’라는 명언이 유명하게 전해져 온다.

여기에 더불어 한국에서는 수많은 악처들이 있었다. 몇년전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희대의 살인범 고윤정은 전 남편을 살해하고 아이까지 죽이려고 작정해서 악처의 오명을 남겼고, 늘 계모라고 칭하며 자신을 무시했다고 남편을 죽여 버린 40대 모 여인, 이런 사람들의 인명경시 풍조는 언급하기조차 기분 나쁜 이야기다. 앞에서 언급한 위대한 인물 세사람의 부인들을 누가 언제부터 세계의 3대 악처로 불렀을까? 이 세사람에게는 드러나게 뚜렷한 죄상이 없기 때문에 이들의 무슨 행동이 악처의 별명을 불러왔는지 궁금하다. 남편을 살해한 독한 아내가 악처이지 어찌하여 톨스토이 부인같이 남편을 도와서 큰 인물이 되게 한 그녀를 왜 악처로 부르게 된 것일까?……. 나의 눈에는 악처보다 양처가 몇십배는 더 많아 보인다. 물론 제3의 인물이 옆에 있을 때는 부부가 의도적으로 양처, 양부로 보이려고 애 쓴다는 사실을 감안하고라도 이 세상에는 악처보다는 양처가 더 많은 것 같다.

악처는 소동을 일으키고 험한 말을 입에 담기 쉬우나 양처는 조용하게 말없이 남편을 돕기만 하는 사람들이라 다른 사람들 눈에 띄는 경우가 드물 것이다. 얼마전 한국 지방신문에 안동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400여년전 조선시대 어느 선비의 아내가 서른한살에 죽은 남편의 관에 넣어둔 편지가 공개된 적이 있었다.

1998년에 경북안동 고성 이씨 집안에서 무덤을 이장하다가 시신의 머리맡에서 발견한 편지라 한다. 그 편지를 읽고 이런 수정같은 마음씨를 가진 아내면 양처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양처의 마음씨는 이래야 한다 싶은 생각이 들어 그 원이 어머니의 편지 일부를 소개하여 드린다.

원이 아버지에게, 병술년 초하루,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먼저 가십니까? ~중략 ~ 함께 누우면 언제나 당신에게 말하고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래도 살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내 편지 보시고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주세요. 꿈속에서 당신 말을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드립니다’

원이엄마 편지에는 화려한 수식어가 없고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그대로 쏟아놨기 때문에 진실하고 청순한 정서가 온 글발에 묻어있는 것 같다. 400년 전이 아니라 요즈음 기준으로 봐도 원이엄마는 보기드문 양처가 되었지 싶다.

현대말로 풀이해 설명을 한다면 좋은 아내다. 완벽에 가까운 남편을 만났을지라도 자신이 좋은 아내가 되기란 쉽지않다. 좋은 아내가 되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하고 항상 애정이 넘치며,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남편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영국의 속담에 좋은 아내(양처)를 갖는 것은 제2의 어머니를 갖는 것과 같다, 좋은 아내는 남편이 탄 배의 돛이 되어 그 남편을 항해시킨다.

이 세상에서 아내라는 말처럼 정답고 마음이 놓이고 아늑하고 편안한 이름이 또 있을까? 천년전 영국에서는 아내를 Peace weaver(평화를 짜는 사람)라고 불렀다.

아내는 행복의 제조자 겸 인도자인 것이다. 베이컨의 말대로, 아내는 젊은이에게는 연인이고 중년 남자에게는 반려자이고 늙은이에게는 간호사다.

지금 나와 함께 밥을 먹고 한집에 살고 있는 나의 집사람(아내)은 연인과 반려자의 과정을 거쳐 이제는 나를 간호해주고 보호해주는 어머니이자 누나이고, 너무 흔해서 고마움을 모르는 물처럼 매일 매일 그 사랑을 마시면서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나를 위해 평생을 헌신 봉사해온 아내(집사람) 에게 한없는 고마움과 사랑을 느낀다.

<문학 작가 김명열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406/2024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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