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부부 사이와 관계.

<김명열칼럼> 부부 사이와 관계.

가장 친밀한 사이가 부부이면서 때로는 원수처럼 사는게 부부 이다.

아니 대부분의 부부들은 그저 무덤덤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된장 쉰 것은 1년 원수지만 배우자 나쁜 것은 백년 원수란 속담도 있다. 초혼기의 젊은이들에게는 분출되는 호르몬과 열정과 싱그러움이 있다. 설렘과 감동과 가슴적시는 사랑도 있다. 그러나 세월의 연륜과 더불어 익숙해져 버림으로 이러한 것들은 시들하여진다. 사랑의 호르몬은 30개월이 지나면 시들해 지는 것으로 되어있다.

젊어서는 고운 정, 이쁜 정으로 산다. 그러나 나이 들어서는 아니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사랑하면서 살아가도 부딪치고 엉키기도 한다.

서로 상처를 주고 받기도 한다. 연륜과 더불어 고운 정, 미운 정, 구린 정이 엉키고 그러면서 연민의 정으로 긍휼 지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부부다. 그래서 오래 산 부부일수록 세월의 두께만큼 감사와 긍휼과 연민의 정은 그 깊이가 깊다.

몇년전(오래전) 한국의 어느 텔레비전의 한 노인 프로그램에 여든을 넘긴 부부들이 출연했다. 개그맨 서세원씨가 진행을 맡은 “좋은세상 만들기” 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출연해서 꾸미는 프로그램이다. 한 사람에게 글자를 보여주며 상대방에게 설명해서 그 단어를 알아 맞히는 게임이다. 어느 할아버지에게 ‘천생연분’ 이란 문제가 출제되었다. 회심의 미소를 지은 할아버지가 할머니 곁에 다가섰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당신과 나 사이’ 그러자 할머니가 망설임도 없이 ‘웬수’ 라고 힘주어 말했다. 장내의 모든 청중들은 배꼽을 움켜잡고 박장대소 웃음바다를 이루었다. 기가 막혀 하며 할아버지는 이렇게 소리 질렀다. ‘아니 두자 말고 넉자’ 그러자 할머니의 거침없는 대답이 곧 바로 튀어나왔다. ‘평생 웬수’…….. 장내는 그 말이 나오자 마자 완전히 뒤집어졌다.

어떤 이도 평생원수처럼 살기위해 만난 것이 아닌데도 왜 우리네 결혼은 이런 원수 같은 부부 생활로 돌아가는 것일까?…….. 차라리 이러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서는 익살이라도 읽게 되는데, 행복하게 살자고 결혼한 부부들이 평생을 원수처럼 살기 등등 하게 살아가는 일이야말로 가장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남자와 여자의 감정 차이는 무엇일까? 으례 받쳐주기만 바라는 권위의식의 남자와 인고를 삭이며 의무를 강요당해도 묵묵히 살아가는 여자가 있기에, 한 사람은 천생연분으로 생각할 때 다른 한 사람은 평생 원수로 생각하면서도 해로하며 별 문제없이 살지 않는가…… 그 시대

의 여인들은 자신의 감정을 죽이고 수고와 희생의 밑거름으로 사랑의 둥지를 만든 것이리라. 사람의 됨됨이란 배움과는 상관없는 것 같다. 주어진 여건에 충실하며 슬기롭게 사신 분들의 삶의 방식을 내 것으로 만들어 살면 좋을 것 같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요즘 세대에는 고전 같은 이야기일지는 모르겠으나 가슴에는 진한 여운으로 오래도록 남아있다.

천생연분의 동의어가 평생웬수(원수) 라고 한다. 모든 세상과 우주는 하나의 원으로 이루어졌다고 믿고 살았던 고대 사람들은 인간의 생 역시 하나의 원을 그리며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원의 시작점과 한 바퀴를 돌아온 끝 점이 동일한 것처럼 우리는 언제나 출발점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아무리 멀리 달아나 봐야 마지막으로 도착하는 곳은 출발과 가장 가까운 평생 원수의 곁이다. 작은 샘에서 시작한 물이 서로 어우러져 큰 강물을 이루듯이 각자 다르게 태어난 남녀가 몸과 마음이 합일되어 사랑을 하고 함께 걸어가는 것이 부부이다. 태생이 다른 두 물이 부딪치지 않고 어찌 한 물결로 나아갈 수 있겠는가? 분명한 것은 나의 웬수가 내가 낳은 새끼들을 가장 사랑하고, 내가 차려준 밥을 함께 가장 많이 먹었다는 사실이다. ‘이 지구상의 수십억 인구중에 왜 하필이면 당신인가요? 그것은 필연입니다’ 이미 당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그는 당신의 웬수로 태동하여 당신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며 일상의 작은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평생웬수, 관자놀이정맥의 푸른 떨림처럼 오래 오래 떨리고 싶은 단어이다.

‘속이 썩어도 참고 살아야지요 뭐…… 그래도 저 영감없으면 어떡해요, 내가 아플때 약 사다주고, 화날때 화풀이라도 할 수 있는 대상이 있어서 좋지요. 어디 가고 싶을 때 운전수 노릇 해주니 편하고 의지가 되네요. 없는 것 보다는 훨씬 편하고 좋지요…….’ 어느 목사님에게 신상 상담을 왔던 어느 나이드신 여자 성도님이 상담을 끝내며 한 말이다.

우리가 잘 아는 갈라디아서 5장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중, 첫번째는 사랑이고 네번째는 오래 참음 이다. 또 잘 아는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참고로 시작한다. 그렇다. 사랑의 가장 기본적인 성격중 하나는 참는 것이다. 그것은 사랑 장에서 말하는 대로 오래 참는 것이며 모든 것을 참는 것이다. 우리는 늘 참지만 오래 참지는 못한다. 우리는 많은 것에 대해 참지만 모든 것을 참지는 않는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것에 대하여 오래 참으신다. 그 참음은 참으로 깊고도 넓다.

‘평생 원수랑 살고 계십니까?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사람을 두고 계십니까? 용서 못할 어떤 사람이 있으십니까?’ ‘사랑은 오래 참고 모든 것을 참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내가 아닌 예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부란 전생의 웬수(원수) = 평생원수 平生怨讐, 자식은 전생의 빚쟁이 라고 한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그러나 나 자신 그 전생에 대해서는 아는바가 없으니 이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한국 기혼 부부들의 이혼율이 47.5%, 미국의 52%, 스웨덴의 49%에 이어서 OECD 국가중에서 3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통계자료에 나타난 결과만을 놓고 본다면 일견 부부가 원수란 말이 일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부부는 원수라고는 하지만, 시작부터 그런 관계로 맺어진 사람은 없다. 처음에는 모두가 다 좋은 감정과 사랑을 가지고 만났고, 함께 살다보니 그렇게 변화가 되었을 뿐이다. 생각해보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사연들이 있다. 청춘남녀가 처음 만나 결혼에 이르렀을 때 그 두사람은 전혀 다른 환경과 가정문화 속에서 자랐으며 가정교육의 상태도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물론 자녀에 대한 가정교육의 내용이야 엇비슷했다고는 해도 관점이나 방법이 달랐을 수도 있다. 자연히 두 사람 간의 ‘다름’을 서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다툼이나 언쟁이 생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다툼을 해결하는 방법과 과정이 서툴러서 마음이 상하고 앙금이 생겨 두 사람 간에 틈이 생기는 악순환의 과정이 반복되면서 원수의 길로 접어들 수도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울수 있다.

모 난 돌이 정 맞는다고, 처음부터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존심 싸움을 하다보면 서로에게 돌이킬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성경말씀에 보면,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성내지 아니 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기에 이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순종했더라면 그저 사랑싸움으로 끝났을 일을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해 원수의 길로 접어들었을 수도 있다.

싸우면서 크는 것은 아이들만의 일이 아니다. 어른들도 부부 싸움을 해 가면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기도 하고 받아들이기도 하면서 사랑을 키워 가는 것이다. 한 평생 속 썩여온 남편이지만 그래도 내 신랑 이라는 애증의 표현인 평생웬수…………

감기라던가, 자신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제일 먼저 달려가 약 사오고, 곁에서 위로 해 주는 사람이 그래도 지겨운 웬수밖에 없다. 효자아들 열명보다는 악한 남편한명이 그래도 낫다고 하지 않던가……..!

젊어서는 연인이어서 손을 잡고, 중년에는 친구가 되어 손을 잡으며, 늙어서는 서로 아픈 곳을 보듬어주어야 하는 손길이 필요한 삶을 영위해 나가는 부부는 서로의 손길을 원하는 평생원수(平生願手)이며 그런 모습이 바로 부부인 것이다. <문학 작가 김명열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387/2023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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