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여름철의 별식(別食) 냉면 이야기.
지난 7월11일은 초복 이었고 21일은 중복이다.
요즘처럼 무더운 날씨가 계속 이어지는 여름철에는 더위에 지친 몸을 식혀주고 무디어진 입맛을 돋구어주는 음식으로는 단연 냉면을 꼽고 싶다. 나 역시도 여름철이 되면 냉면을 종종 사먹거나 집에서 만들어 먹는다. 냉면은 더워지기 시작하는 5월 하반기부터 8월 까지가 성수기이며, 이때를 맞아 냉면을 파는 식당들은 여름철 장사의 대목을 맞는다.
우리나라 고유음식인 냉면(冷麵)은 말 그대로 차가운 냉(冷) 국수(麵)이다. 냉면은 더운 여름철에 즐기는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원래는 추운 겨울철 음식이다. 이북이 고향인 사람들은 추운 겨울 뜨거운 온돌방에서 이가 시리도록 찬 동치미국에 냉면을 말아 먹는 것이 진짜 냉면 맛이라고 한다.
냉면을 겨울철에 먹는 이유는 냉면국수를 만드는 메밀이 조선시대에는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에서 재배됐는데, 음력 7월 초순에 심어 가장 늦게 수확했다. 당시 평안도 사람들은 한 여름에 밀을 수확해 만두와 국수를 만들어 먹고 겨울이 되면 늦가을에 추수한 메밀로 냉면을 만들어 먹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우리나라 한국에서는 냉면 하면 추운 지방의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을 최고로 꼽는다.
냉면의 종류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이중 대표적인 냉면으로 꼽는 평양 냉면의 유래에는 재미있는 사연의 이야기가 있다. 아주 오랜 옛날 고려중엽, 평양 찬샘골 마을 주막집에는 처가살이를 하는 ‘달세’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는 우연히 주막에 들른 백세 노인에게 장수의 비밀이 메밀이라는 얘기를 듣고 메밀 칼국수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는데 준비한 면이 동이나 손님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했다. 다음해 봄, 옆집에 살던 연장공이 작은 구멍에 쇠판을 댄 참나무통을 가져와 면을 만들기 쉽게 도와주었고, 만들어진 면을 삶아 찬물에 헹군다음 동치미 국물에 말아먹어 보았는데 그 맛이 일품이었다. 사람들은 이 음식을 곡식 곡(穀)자에 물수(水)자를 붙여 ‘곡수’라 불렀는데, 이 말은 나중에 국수로 바뀌었다고 한다. ‘달세’의 ‘찬 곡수’는 평양성 안에 소문이 퍼져 훗날 평양냉면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고, 음식이 유래된 찬샘골은 ‘냉천동’이 되었다고 한다. 임금도 천하의 으뜸가는 음식이라 치하했던 평양냉면은 고려시대부터 내려온 서민들의 삶의 지혜가 담긴 건강식이다.
참고로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은 흔히 ‘물냉’과 ‘비냉’, 물냉면과 비빔냉면으로 분리되지만 본질적인 차이는 면(국수)의 재료다. 즉 평양냉면은 메밀을 많이 넣고 삶은 국수를 차거운 동치밋국이나 육수에 만 ‘장국냉면’이다.
한편 함흥냉면은 고구마 전분을 넣어 가늘게 뺀 국수를 매운 양념장으로 무치고 양념한 홍어회를 얹은 비빔냉면이다. 한국은 1970년대 까지만 해도 물냉면이 대부분이었는데 1990년대 이후 함흥냉면 체인점이 전국에 퍼지며 인기를 얻었다.
냉면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신분이나 계층간의 구별 없이 아무나 사먹을 수 있다. 전 대통령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은 평양에 남북정상회담차 방문했을 때 평양의 옥류관 식당에서 냉면을 먹었다. 그때 그는 ‘내가 늘 먹어왔던 평양냉면 맛의 극대치’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 2020년 6월15일 북한의 선전매체 ‘조선의 오늘’에 따르면, 오수봉 옥류관 주방장은 지난13일 한국정부를 향해 “남조선 당국자들이 평양에 와서 우리의 이름난 옥류관 국수(냉면)를 쳐 먹을 때는 그 무슨 큰일이나 칠 것처럼 요사를 떨고 지랄하더니 돌아가서는 지금까지 한 일도 없는 주제에, 오늘은 또 우리의 심장에 대못을 박았다”고 비난했다.
1960년 8월에 문을 연 옥류관은 북한 평양 대동강 기슭에 위치한 대표적인 음식점이다. 대동강의 옥류교 옆에 지어졌다고 해서 ‘옥류관’ 이란 이름이 붙었다. 옥류관의 대표적인 음식은 평양냉면, 평양온면, 대동강 숭어국, 송어 회 등이다. 옥류관은 금강산 관광 구역과 중국 베이징 등에 분점이 있다. 2000년 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곳에서 식사를 했다. 이어 2018년 9월 남북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옥류관에서 식사를 했다. 이때 리선권 당시 조국평화통일위원장(나중에 외무상이 됨)의 ‘냉면 발언’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리선권은 평양 남북정상회담 당시 평양을 찾은 기업총수들에게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구설수에 오른바 있다. 당시 남한의 국민들은 저렇게 버르장머리 없는 놈을 그냥 내버려 두는 한국정부가, 뭔가 북한에 약점을 잡혀서 찍 소리도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 며 바보처럼 당하고만 있는 한국정부를 욕하기도 했다.
맛을 알면 멋을 안다. 여름은 냉면의 계절, 냉면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여름을 잘 날수 있다. 냉면의 대명사는 평양냉면이고, 평양냉면의 대명사는 ‘옥류관 냉면’이다. 하지만 제아무리 잘난 냉면도 상 위에서 제조를 잘 못하면 맛을 버리기 십상이다. 북한의 대표적인 음식, 평양냉면을 조리해 손님들에게 대접하는 옥류관 냉면 맛을 맛볼 수 있었던 기회가 주어졌는데 아깝게도 나는 그 기회를 불과 며칠 사이로 놓친적이 있었다. 2005년 내가 한국을 방문하여 금강산 관광을 갔을 때는 그해 8월25일부터 29일까지 4박5일간의 여정이었다. 그 당시 그곳 금강산에 갔을 때는 옥류관 식당이 모든 준비를 마치고 Open할 날자만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2일 후인 9월1일날 냉면 전문점 식당 옥류관이 금강산 분점의 개업을 하는 날인데, 나는 바로 직전에 그곳을 방문했기 때문에 아쉽게도 그 유명한 평양 옥류관 냉면의 맛을 보지 못하고 돌아 왔다. 미국 시민권자인 우리 가족 3명이 금강산 관광을 위해 판문점을 지나 북측의 입국 심사대인 북한 검문소를 통해 입국심사를 받을 때, 입국 심사원이 하는 말 “선생님은 미국에서 오셨군요. 왜 조국을 버리고 미국에 가셨습네까? 조국 금강산에는 잘 오셨습네다. 미국에서도 조선 음식을 먹으십네까? 며칠 후(9월1일)에는 옥류관이 문을 여는데 기왕에 왔으니끼니 맛있는 조선 평양냉면 맛좀 보시고 가시라요” 하며 퉁명스럽게 내뱉는 군관 동무의 말처럼, 그 맛좋은 옥류관의 냉면 맛을 간발의 차이로 먹지 못하고 온 것이 참으로 아쉬움을 남긴다.
금강산 관광을 마치고 서울로 귀경해 나는 끝내 냉면 맛을 잊을 수 없어 장충동에 위치한 어느 유명 냉면집을 찾아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그 식당에 들러 냉면 맛을 보니, 이곳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의 어느 한국 식당에서도 맛볼 수 없는 그윽하고 맛이 너무나 좋은 냉면 맛을 음미해 볼 수 있었다. 시원한 육수와 함께 쫄깃한 면을 먹으면 흐르는 땀을 식혀주며 몸이 충전되는 듯 한 뿌듯하고 기분 좋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때로는 냉면의 종류에 따라 별미로 만두나 연탄 불고기와 곁들여 먹기도 한다.
흔히 물냉면, 비빔냉면은 마치 짬뽕과 짜장면처럼 취향을 파악하기 위한 질문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냉면으로는, 평양냉면, 함흥냉면 외에 진주냉면이 있는데, 이 진주냉면은 역사가 깊다. 메밀가루에 녹말을 약간 섞어 만드는 평양냉면의 면발과는 다르게 순 메밀만으로 면을 만들어 낸다. 또한 돼지고기는 쓰지 않고 멸치, 바지락, 건홍합, 마른 명태 등 해산물과 표고버섯을 넣어 육수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또한 대표적으로 밀면도 있다. 이것은 밀가루에 전분을 섞어 만든 면으로 2009년 부산의 향토음식으로 지정된 음식이다. 1950년대 초반 6.25전쟁 시기에 부산에서 탄생했으며, 냉면의 재료인 감자나 메밀을 구하기 어렵게 되자 미군 원조 등으로 구호품이 지급되던 밀가루로 만든데에서 시작되었다. 이때에 밀가루에 전분을 섞어서 면발을 만들어 ‘밀면’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북한 음식의 가장 큰 특징은 자연산 재료에 있다. 조미료는 쓰지 않기 때문에 조미료 입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자칫 맛을 느끼지 못 할 수도 있다. 반대로 북한 사람들은 남한에서 이슈가 되어있는 식품 첨가제 문제가 남의 얘기가 된다. 평양냉면은 메밀에 녹말을 섞어 국수를 만든다. 주 원료가 메밀이기 때문에 면발이 다소 거칠고 먹을 때 툭툭 끊긴다. 맵거나 짜지 않고 담백한 것이 특징이다. 메밀이 70~80% 가량 되기 때문에 검은빛이 많이 난다.
옥류관 냉면은 먹기 전에 두 가지 알아두어야 할 참고사항이 있다. 옥류관 냉면은 가위로 면을 자르지 않는다. 면이 질기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위가 닿으면 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또 겨자를 많이 풀지 않는 것이 좋다. 먹을수록 점점 매운 강도가 세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옥류관 냉면이 평양냉면의 원형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옥류관이 세워진 건 남북분단 뒤인 1960년이고, 1946년 ‘서북관’으로 문을 연 서울의 우래옥이나 광복전 창업한 평양면옥 보다 역사가 짧다. 어찌됐건 옥류관이 현재 북한에서 최고수준의 맛을 낸다는 데는 이견이 없기 때문에 평양냉면의 대명사가 된 것이다.
여름은 땀이 나면서 겉이 뜨거워지고, 겨울은 겉이 차가워지면서 소변이 잦아든다.
여름은 에너지가 겉으로 나오면서 내부가 차가워지고 겨울은 내부로 에너지가 들어가면서 외부는 차가워진다. 이열치열은 여름에 뜨겁고 매운 음식을 먹어서 에너지를 내부로 집중시키면서 겉의 온도를 식히는 것이다.
어쨋거나 여름음식엔 냉면이 무더위를 식혀주는 음식으로 최적격이다. 집에서도 부담없이 냉면을 쉽게 만들어 먹을수 있으니 올 여름에는 냉면을 많이 먹고 무더위를 이겨 냈으면 좋겠다. <문학 작가 김명열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368/2023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