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부고속도로 개통(1970년 7월 7일)
김명열기획<2> 옛날 독일에 파견된 파독 근로자, 광부와 간호사들 이야기
<지난주에 이어서>
한국에서 베스트셀러 1위로, 대중들에게 인기리에 읽혀지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옥중수기 모음 서간집 ‘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습니다’를 읽다가, 옛날 서독으로 파견되어 간호사로 근무했던 어느 여자분이 옥중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내용이 발췌되어 이번에 발행된 책의 내용속에 실려 있어 참고로 소개하여 드리겠다. 아울러 그 여자분에게 박근혜 대통령이 답신으로 보내준 편지 내용도 함께 소개해 드린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옛날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아리고 울적하다. 피,땀 흘려가며 수만리 이국땅에 가서 고생하며 가족과 나라를 위해 몸바쳐 헌신한 파독 근로자, 간호사와 광부들의 이야기들이 이 책에서도 잠시 언급되어 있어 그 내용들을 전해드린다.
과거 어느 파독 간호사가 옥중에 갇혀있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온 편지내용의 일부이다.
“저는 45년전 독일에서 5년간 간호사로 일했습니다. 정말 열심히 일하면서도 언어가 안되고 문화도 달라 처음에는 숱한 고생과 함께 그곳 사람들에게 멸시도 많이 당했습니다. 그래도 돈을 벌어 고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밤낮으로 쉬지 않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당시 필리핀 사람들이 같이 근무했는데, 그때는 우리나라가 그들보다 훨씬 가난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부강의 나라가 되었지만 필리핀은 여전히 후진국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오늘의 풍요를 이루어 놓았는데 요즘 애들은 원래 이렇게 잘 살았던 줄 아는지, 훌륭한 대통령님을 감옥에 보내고 나라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른채 방관하고 있어요. …………중략………….
2018년 3월28일,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 백 0 0.
<박근혜 대통령의 답신>
너무도 가난하였지만 경제발전을 위해 필요한 돈을 마련할 수 조차 없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머나먼 독일에서 간호사와 탄광 근로자로 일하셨던 분들이 고국으로 돈을 보낸 돈을 종자돈으로 하여, 오늘날의 경제번영의 초석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모두 알고 있을 것입니다. 저도 아버지로부터 독일을 방문하셨을 때 광부로 파견된 분들을 만나서 연설을 하시던 중 어머니와 함께 같이 우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독일 사람들이 기피하는 험한 일을 하기위해 간호사로 파견되셨던 님과 같은 분들에게 국민의 한사람으로 정말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 여생도 행복하게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박근혜 대통령 옥중서간집 (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에서 발췌. 제2장 끝없는 기다림 중 64페이지~65페이지 중에서….
다음은 지난주에 이어서 소개되는 내용이다.
서독정부도 그냥 있을 수 없다 하여 박정희대통령을 초청하였다. 이것이 단군 이래 처음으로 우리나라 국가원수가 국빈으로 외국에 초청되는 첫번째 사례였다. 우리로서는 안갈 이유가 없었다. 오지 말라고 해도 가야할 다급한 실정이었다. 그래서 모든 준비를 하였으나 제일 큰 난제는 일행들이 타고 갈 항공기였다. 그 당시 한국이 가진 항공기는 일본만을 왕복하는 소형 여객기로, 이것을 갖고 독일까지 갈수가 없어 할 수없이 아메리칸 에어라인을 전세내기로 하였는데, 미국정부가 군사 쿠테타를 한 나라의 대통령을 태워갈 수 없다 하여 압력을 가해 무산됨으로 곤경에 처한 것이다. 그래서 연구한 것이, 어차피 창피는 당하게 되었는데 일단 한번 부딪쳐보자, 이래서 당시 동아일보 사장이었던 최두선 사장이 특사로 서독을 방문하여 뤼브케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각하, 우리나라에서는 서독까지 올 비행기가 없습니다. 독일에서 비행기를 한대 보내주실 수 없습니까?” 그 당시를 회고하는 최 사장에 의하면, 그들은 깜짝 놀라서 말을 못하더라고 했다.
결국 합의가 된 것이 홍콩까지 오는 여객기가 서울에 먼저 와서 우리 대통령 일행을 1,2등석에 태우고 홍콩으로 가서 이코노미석에 일반 승객들을 탑승케 한 후 홍콩, 방콕, 뉴델리, 카라치, 로마를 거쳐서 프랑크푸르트로 간 것이다. 1964년 12월6일 루프트한자 649호기를 타고 간 대통령 일행은 퀼른 공항에서 뤼브케 대통령과 에르하르트 총리의 영접을 받고 회담을 한 후, 다음날 뤼프케 대통령과 함께 광부들이 일하는 탄광지대 ‘루르’ 지방으로 갔다. 그곳에는 서독 각지에서 모인 간호사들과 대통령이 도착하기 직전까지 탄광의 갱구 안에서 일하던 광부들이 석탄가루에 범벅이 된 채 작업복을 그대로 입고 있는 채 강당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새까만 얼굴을 본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는 목이 메기 시작하더니 끝내 울음보가 터져 나오는 것을 억제하지 못한 채 애국가를 제대로 부르지도 못했다. 그리고 이어진 연설에서 연설 도중 그만 울어버렸다. 광부들과 간호사들,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한 덩어리가 되어 부등켜안고 통곡의 바다를 이루었으니 얼마나 감동적이었을까! 그 광경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독일의 대통령도 감격에 북받쳐 울었고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들마저 흑흑 느껴 울었다. 참으로 감격적인, 이심전심의 인간애가 넘쳐흐르는 감동과 감격이 혼합된, 민족과 인종을 초월한 가슴 벅찬 장면이었다. 얼마 후 현장을 떠나려는 대통령과 육여사를 붙들고 놓아주지를 않았던 광부들과 간호사들은 ‘대통령 각하 만세, 대한민국 만세’ 로 눈물을 감추지 못한 채 아쉬운 이별을 고하였다.
돌아오는 고속도로 차 속에서 계속 우는 우리 대통령에게 뤼브케 대통령은 자신의 손수건으로 손수 눈물을 닦아주기도 하였는데, 대통령을 붙들고 우는 국민, 함께 어우러져 부등켜 안고 눈물을 철철 흘러내리면서 새까만 얼굴에 석탄가루가 묻어있는 작업복을 마다않고 그들을 덥썩 안아 포옹하며 반기는 모습에,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전 나라 언론들은 이러한 사실에 완전히 한국으로 돌아선 것이다. 간호사들은 간호사들 대로 대통령과 육여사를 번갈아 싸안으며, 육여사에게 어머니, 어머니하며 매달리고 울음보를 터뜨렸다. 박대통령 방문 후 서독은 제국의 보증이 없이도 한국에 차관을 공여하겠다는 내부결정을 하였지만, 국제관례를 도외시 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한국 광부와 간호사들이 받는 월급을 1개월간 은행에 예치하는 조건으로, 당초 한국이 요구한 차관액보다 더 많은 3억마르크를 공여 하였다.
서독에 취업한 우리광부와 간호사들이 본국에 송금한 총액은 연간 5000만달러, 이 금액은 당시 한국의 국민소득 2%를 차지하는 엄청난 금액이었으며 이 달러가 고속도로와 중화학공업에 투자되었다. 이후 한국과 서독간에는 금융문제는 물론 정치적으로도 진정한 우방이 되었다. 서독에서 피,땀흘린 광부와 간호사들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조국 근대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위대한 ‘국가유공자’들임에도 우리들은 그들을 잊어버린 것은 아닌지?…….. 요즘은 엉뚱하게도 5.18 관련 국가 유공자들이 몇천명이 넘어 그들에게 지급되는 국가 보상금이 천문학적이라고 한다. 5.18때 광주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사람들이 국가유공자로 버젓이 올려 있어 해마다 국가의 곳간에서 이들에게 엄청나게 많은 돈을 지급해 주고 있다고 한다. 정작 국가의 유공자로 대우받을 사람들은 외면을 받고 엉뚱한 사람들이 수혜를 받고 있다고 하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대한민국은 빚이 1천조에 다달았는데, 이렇게 한편으로 국고가 낭비되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 때문에 우리는 그 옛날 낯설고 물설은 머나먼 이국땅에서 피땀흘리며 고생하고, 국가와 민족의 발전, 그리고 부흥.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고 노력한 그들의 업적이 이 나라의 초석이 되고 쌈짓돈이 되었는데, 지금은 많은 국민들이 그들의 존재조차 까맣게 잊고 있는 듯 하여 마음이 참으로 안타깝다.
아우토반, 1920년대 말, 히틀러가 만든 세계 최초의 고속도로다. 히틀러는 이 도로를 전쟁을 위하여 만든 것이지만 이 도로가 있었기에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경제 부흥의 초석이 된 것이다. 이 도로를 달리던 우리나라 대통령(박정희 대통령)은 세번이나 차를 세우고서 도로 상태를 면밀히 살펴보고 조사하면서 울었다고 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고 국가의 대 동맥이 되어 한국의 경제성장에 큰 밑바탕이 되었고, 커다랗게 이바지 하게 되었다.
박 대통령의 집권시 경제성장과 나라사정 이야기는 다음주에 이어서 자세히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다.
<문학 작가 김명열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298/2022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