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의 재미있는 커피 이야기<2>

<사진은 몇년전 내가 시애틀로 여행갔을때 미국에서 최초로 개업한 스타벅스 커피점에 들러 커피를 사면서 기념으로 찍은 사진이다.>

김명열의 재미있는 커피 이야기<2>

 

커피는 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 커피 한잔을 빼놓을수 없을정도로 대중적인 음료로 자리 잡았다. 이제는 거리를 걷다보면 웬만한 식당이나 카페, 커피전문점 등에서는 커피를 팔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커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며 커피시장 역시 경쟁이 치열하다.

처음에 커피열매를 발견했을 당시 사람들은 야생의 열매를 그대로 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맛이 너무 자극적이어서 물을 넣어 마셨고, 이후 약처럼 달여서 먹기도 하면서 전 세계로 전파되었다. 콩에 따라 그 맛과 향이 다른 커피는 커피나무에서 1년에 한차례씩 수확하며 다양한 성분을 가지고 있다.

검붉은 색의 시큼하고 쌉싸레한 열매가 세계에서 가장 널리 소비되는 음료가 되었다.

수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커피의 유래를 둘러싸고는 다양한 설이 있지만, 확실한 기록이나 문헌상의 증거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 이야기로만 전해지고 있다. 커피에 대한 기원은 크게 다음의 세가지로 구분된다. 커피의 기원과 관련한 설중,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에디오피아의 양치기 소년인 칼디(Kaldi)는 어느날 자신이 기르는 염소들이 흥분하여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양을 보았고, 그 이후 염소들의 행동을 주시했다. 며칠간 유심히 염소들을 관찰한 칼디는 염소들이 들판에 있는 어떤 나무의 빨간 열매를 먹고 나면 흥분을 하게 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열매의 맛과 성분이 궁금해진 자신도 열매를 먹어보았고, 열매를 먹고 난뒤 피로감이 사라지면서 신경이 곤두서는 듯한 황홀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곧장 인근의 이슬람 사원에 있는 사제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렸고, 빨간 열매에 잠을 쫓는 효과가 있음을 발견한 사제들에 의해 여러 사원으로 퍼지게 되었다.

1528년 아라비아의 사제였던 셰이크 오마르는 어느날 잘못을 저질러 산으로 추방되었는데 며칠간을 헤매다 너무 배가 고팠던 나머지 새가 쪼아 먹고 있던 빨간 열매를 먹게 되었다. 열매를 먹은 오마르는 활력을 되찾았고 이 열매가 가진 효능을 알게 되었다. 이후 이 열매를 많은 사람들의 치료에 사용하였고, 성자로서 높은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세번째로는 에디오피아의 기원설이 있다. 다른 지역에서 커피를 액체형태로 추출하여 약으로 사용하였던 것과 달리 에디오피아 지역에서는 커피나무의 열매를 다른 곡류와 함께 분쇄하여 식량으로 취급하였다.

이렇게 취급된 커피콩은 점차 아라비아의 여러 지역으로 뻗어나갔고, 11세기초 아라비아의 라제스와 아비세나를 대표로한 의사들이 커피가 위장의 수축을 부드럽게 하며 각성효과가 있다라고 발표하면서 부터 약이 아닌 기호품으로 변신을 꾀하게 되었다.

참고로 우리들이 살고 있는 미국의 커피역사와 문화에 대해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다.

미국은 영국식 문화와 여러 국가의 문화를 미국식 문화로 발전시켰다. 업무를 중시하여 식생활에 대한 소비시간을 최소화 하여 간편한 식사를 선호하게 되었는데 이는 커피를 많이 마시는 생활을 견인하게 되었다. 특히 중남미지역에 인접해 있어 아라비카 커피를 선호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엄격한 커피의 품질을 관리하고 있다. 하와이와 중남미 커피의 생산지에서 많은 커피가 유입되어 미국의 커피문화가 급속도로 번창했다. 연간 커피의 소비량은 2천여만포대로 (1포대는 60Kg 기준) 세계 1위의 소비를 이루고 있다. 1971년 시애틀에서 탄생한 스타벅스는 유럽과는 반대로 편안한 카페문화를 정착시켰다. Long Time, Big Size는 에스프레소 베리에이션 음료의 발달과 더불어 Take Out의 새로운 문화코드로 자리매김 하게 되었다. 특히 하와이 코나 커피는 코나지역에서만 생산되는 세계 최고급 원두로 해발 4000m 고산지대에서 재배한 커피로 신맛과 더불어 스파이시 하면서 아로마가 풍부한 커피로 사랑받고 있다. 최고급커피를 산정하는 스페셜 티로 원두를 결점 두 수에 따른 분류에서 거의 결점두가 없는 커피로 이름나 있다.

아울러 커피의 나라 브라질에 대해서 곁들여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다. 브라질의 커피 전파는 1727년 포르투칼 군인 팔헤타가 프랑스 묘목을 가져와 유래시켰다고 한다.

한때 식민지 노예 폭동과 CLR(커피 녹병)의 전염으로 커피나무가 고사되어 유럽의 커피시장이 축소되기도 했다. 브라질은 세계 최고의 커피 생산국으로 발돋음 했는데, 1882년 포르투칼에서 독립한 이후에는 세계 커피생산량의 절반을 차비했으며, 전세계 아라비카 품종의 70%를 점유했다. 브라질의 ‘카페 징요’는 커피를 냄비에 넣고 물과 설탕을 함께 끓여 여과 천으로 거른 커피인데, 강한 로스팅의 진한 풍미의 커피를 에스프레스 작은 잔인 데미타스로 마시고 있다. 고품질의 상급 커피는 수출용으로 하고 하급 커피는 내수용으로 유통되고 있다.

인류가 백인, 흑인, 황색인 이렇게 구분되듯 일반적으로 커피의 종류는 아라비카, 로부스타, 리베카로 크게 나뉜다. 로부스타는 일반적인 예전에 즐겨마시던 인스탄트 커피이고, 아라비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음용하는 원두 커피에 해당하며, 리베리카는 필리핀 등지에서 재배되어 타국으로 수출될 정도로, 크게 대중적인 인기는 없다.

고급커피의 대명사이며 원두커피의 대부분인 아라비카. 아라비카란 무엇인가?. 사전적으로는 아라비안 반도인 예멘에서 기원한 커피의 종(種)을 지칭한다. 커피는 에디오피아, 아프리카가 고향이지만 문화적으로 향유하기 시작한 기원은 아라비아 반도이다. 커피를 처음 발견하고 아랍인들은 카와(K’hawaah)라고 불렀다. 이 카와의 뜻은, 첫째 자극과 활기를 불어넣는다는 의미, 두번째 커피가 카파(에디오피아 연방의 하나의 주) 에서 건너왔다는 유래, 세번째 커피 원두가 마술적인 힘을 지녔다고 생각하는 근거. 마지막으로 지상의 죄를 정복한 후 날개 달린 수레를 타고 천국에 올랐던 페르시아의 위대한 왕, 카이 카우스(Kai Kawus)의 이름과도 맞닿아 있다.

술이나 와인을 금기시 했던 이슬람 문화권에서 활기와 현실(이상=以上)의 뭔가를 주는 것이 커피였다. 커피는 배가 부르지 않아 커피의 성분인 카페인의 각성효과가 인간을 깨어있게 하였다. 하지만 일반 각성제와는 다르게 취급된다. 기호품이지만 와인과는 다른 기능성을 뛰어넘는 매력이 숨겨져 있다.

커피가 커피하우스를 통해 보편적으로 대중들이 향유하게 되는 과정은 꽤 오랜시간이 걸렸다. 오스만트루크 제국이 영토를 확장하면서 덩달아 커피도 본격적으로 커피가 범위를 넓혀가게 되어 유럽에 전달되기 까지 1000여년의 시간이 걸렸다. 아랍에서도 처음에는 수많은 논란거리였다. 남성들이 야간에 커피를 마셔서 정신이 맑아지고 부인들을 멀리하여 초기에는 여성들이 커피마시는 것을 반대하기도 하였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고 나서 오스만투르크에서는 커피가 상당히 넓은 대중적인 인기를 구가했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도입된 시점은 명확하지 않은데, 대략 19세기 후반 개화와 근대화의 바람을 함께 실려 왔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커피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우리나라 최초의 미국 유학생인 유길준이 쓴 서유견문(1895년)에서 찾을 수 있는데 유길준은 우리가 숭늉을 마시듯 서양사람들도 커피를 마신다고 소개하고 있다. 당시 한국인 최초의 커피 애호가였던 고종의 커피사랑도 유명한 이야기며, 고종에게 자주 커피를 대접했던 독일 여인 손탁이 ‘정동구락부’라는 곳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커피를 판매했다고 전한다. 이 당시만 해도 커피는 지체 높으신 양반이나 외국인들이 즐길 수 있는 특수한 기호식품 이었으며 한자 음을 따서 ‘가배’라고 하였는데, 어쩌다 맛을 본 일반사람들은 쓰디쓴 첫 맛에 서양에서 들여온 탕국이라 하여 양탕(洋湯)국 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1910년 한일합방이 되고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다방문화가 유입되면서 인테리층과 돈많은 부호가들에 의해 다방을 중심으로 커피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해방후 6.25전쟁이 끝나고 나서 미군의 군용 야전식량인 C레이션에 들어있던 인스턴트 커피가 미군들에 의해 소개되면서 일반 대중들에게 인스턴트 커피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되면서 점차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매개체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된다. 일제강점기 인텔리들의 아지트였던 다방은 전쟁후 점차로 대중화되어 많은 사람들이 약속을 잡고 선을 보고, 음악을 들으려는 다양한 목적의 장소가 되었고, 심지어는 사무실 대용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1928년 동서커피가 설립된 이후 커피의 소비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곧 대중들의 대표 음료로 자리 잡게 되었다. 1976년 한국 커피역사의 한 획을 긋게 되는 동서식품의 커피믹스와 1978년 커피 자판기가 개발 보급되면서 커피시장은 대학생과 직장인을 중심으로 가히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1987년 커피수입 자율화 이후 백화점에는 수입된 원두커피가 진열되었고, 거리 곳곳에는 ‘(자뎅, 난다랑, 도토루’같은 원두커피 전문점이 속속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울러 서울 남대문시장 지하 도깨비시장 같은 곳에서도 미8군에서 흘러나온 여러 종류의 커피들이 시민들에게 암암리에 팔려나가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커피가 시중에 보급되는 하나의 과정이라 하겠다. 이렇게 이 시기에 커피는 다양한 루트와 과정을 거쳐 생활전반에 깊숙이 파고들었고, 급속한 경제발전 속에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온 직장인들에게는 휴식으로, 공부를 하는 수험생에게는 머리를 맑게 해주는 피로회복제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되었다. 오늘날 이제 커피는 과거와 달리 단순 기호품이 아닌 이시대의 대표 아이콘으로서 문화의 중요한 한 축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재미있는 커피 이야기 다음주에 계속>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1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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