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가을의 명상

<김명열칼럼> 가을의 명상

밤새 어둠을 견디며 풀잎위에 이슬이 영글었다. 화사한 가을 햇살을 마음에 담으며 새벽을 기다린 내 가슴속에 밝은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응답하는 저 이슬들의 투명한 시선이 새벽잠을 설친 내 얼굴위에 와 닿는다. 이 상쾌한 아침, 눈부신 태양과 자연을 찬미하는 노래를 팜추리 위에 앉아 지저귀고 있는 새들이 먼저 부르고 있다. 하나님께서 창조해주신 세상속으로 우리들 곁으로 찾아온 밝고 새로운 아침이 다가왔다.

기나긴 잠속의 숙면에 취해있던 꿈속에서 깨어나 마음의 창을 열고 나를 반기는 세상속 자연의 미소를 기쁨과 희망으로 맞아들일 시간이다. 오늘 하루, 이 좋은 아침의 하루를 나에게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 숨을 고르며 명상에 잠겨본다. 정신이 맑아지면 눈을 지그시 감고 자신을 돌아보고 잠시 동안 명상에 잠겨보자. 마치 저 크나큰 바위가 세찬 비바람, 광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지혜로운 사람은 뜻이 굳세어 비방과 칭찬에도 흔들림이 없다. 깊은 연못속의 물은 본디 맑고 고요하며 깨끗하다. 슬기로운 사람은 그와 같이 마음이 고요하고 깨끗하기 그지없다. 명상은 새소리 물소리 가득한 조용한 산사(山寺)의 스님들만의 것이 아니다. 현대를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도 명상은 필요하다.

파아란 하늘밑 햇볕이 화사한 들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풍요롭고 풍성한 가을이 무르익어가고 있다. 이 풍성한 가을을 먹고 싶다. 엊그제까지 보이던 여름의 흔적들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선들바람에 밀려 사라졌다. 시루떡처럼 겹겹이 가을이 쌓인 숲길을 걷는다. 이슬비에 옷 적시듯 풀잎에 구슬처럼 맺힌 이슬방울이 바지가랭이를 적신다. 노오랗게 염색된 가을의 햇볕속에 고추잠자리 한마리가 파란하늘 위로 비상을 하고 분칠을 한 듯 하얘져서 한낮에 떠오른 반달은 누군가 먹다 남은 수박처럼 일그러져 있다. 갓 스물도 안돼 보이는 솜털이 보숭숭한 앳띤 처녀 하나가 호젓한 벤치에 앉아 위에는 파랑, 아래는 노, 황색으로 붓 칠을 한다. 주황색깔이 많이 칠해진 화선지 위에선 각종 구색으로 어우러진 농익은 가을이 춤을 추고 있다. 나무와 풀잎, 사람, 그리고 해와 달, 모두가 하나처럼 조화가 되어 가을을 먹고 있는데 나도 그속에 끼어 어느새 가을을 너무 먹어 배가 부르다.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가을바람이 제법 서늘하고 시원하다. 그 바람에 도토리나무에 열려있는 도토리들이 우수수 땅위로 떨어져 나뒹군다. 떨어진 도토리 위로 내리쬐는 가을볕이 제법 따갑게 느껴진다. 우리나라 속담에 ‘봄볕에는 며느리 내보내고 가을볕에는 딸 내 보낸다’라는 속담을 들어보셨을 줄로 안다. 이 말의 속뜻을 알고 보면 아주 얄궂고 심술궂은 속담이다. 높 푸른 가을하늘과 쾌청한 가을 날씨는 사람들의 마음조차 상쾌하게 만들어준다. 그런데 위의 속담내용을 잘 살펴보면 딸과 며느리의 차별이 무척 심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사실적인 이야기로, 봄 햇살은 가을의 햇살보다 더 빛살이 강하고 무엇보다 자외선이 작렬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시어머니가 참으로 못됐다는 생각마저 든다. 가을의 햇볕은 비타민 D를 생성하여 뼈를 튼튼하게 해주고 백혈구 기능을 활발하게 해줘서 인체의 저항력을 길러주며 계절성 우울증에도 효과가 있어 일석 3조로 가을철 햇볕은 보약과도 같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우리의 몸에 이롭다. 이러한 과학적 근거의 가을철 햇볕의 유익함을 그 옛날 사람들(시어머니)은 몰랐을 텐데, 단지 체험적인 상식과 지혜에서 얻어진 생각으로 딸을 보호하고 남의 자식이었던 며느리는 별로 신경을 써주지 않았다는 결론이 생겨난다.

전해 내려오는 말로 남비추 여비춘(男悲秋 女悲春)이란 말이 있다. 가을에는 남자가, 봄에는 여자가 더 다감(多感)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봄에는 여자가 바람나기 쉽고 가을에는 남자가 바람나기 쉬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옛 부터 ‘봄처녀’라는 말이나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처녀 바람났네’ 라는 노랫말과 같이 봄은 여자의 계절로 여겨, 여자들이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바람나기도 쉬운 계절로 보았다. 그리고 가을은 남자의 계절로서 남자들이 바람나기 쉬운 계절이라 하였다. 봄이나 가을에 부는 바람이라는 일차적인 의미를 중의적으로 표현해서 이런 속담이 생겨 난듯하다.

풍요로운 가을이 무르익고 농익어가는 10월달이다. 가을의 향기가 온 대지와 나의 주변, 정원속 풀섶에 살고 있는 귀뚜라미에게 까지 진한 향기를 내뿜고 있다. 가을의 향기는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까?……….잘 익고 붉게 물든 달콤한 과일의 향기, 아니면 저녁노을처럼 불타는 향기, 숲속의 나뭇잎들이 수액을 말리면서 고운 빛깔로 번져가는 그윽하고 메마른 향기, 아울러 그리운 사람에게 전하고 픈 사랑의 향기?……………

수채화 같은 10월이 아쉽게도 시간의 흐름속에 밀려 지나가고 있다. 파란 하늘은 마음에 물 들고 붉은 단풍은 가슴에 떨어진다. 나는 어느새 가을의 시인이 되었다. 가을에 느끼는 남자의 감성이란 이런 것일까?. 어둠이 짙게 깔린 산책로를 걷다보니 어디선가 풀숲에서 처량하게 울고 있는 귀뚜라미의 울음소리가 낮게 깔린다. 갑자기 가슴속이 허전해져 희뿌연 야광속에 아련히 빛을 발하고 있는 별들을 올려다보니 스산한 가을바람이 옷깃 속으로 스며든다. 바람과 함께 더불어 온 불청객이 있으니 다름 아닌 허전함과 공허감이다. 어느덧 황혼녘에서 져가는 석양을 바라보는 눈빛에 이슬이 돋아나는 것은, 나도 가을을 타는 것일까?. 진정 가을은 남자의 계절인가보다.

빠져 나올 수 없었던 마음속의 적막한 바람들이 우리의 가슴을 적시는 계절인 가을은 네 계절중 가장 맑고 청량한 느낌을 주며 때맞춰 부는 바람도 소슬하여 청량감을 더해준다. 이때에 내리는 비는 더욱 처연한 느낌을 갖게 되는데 이런 비애의 분위기가 초록의 잎이 시들어 떨어지는 가을이 환기하는 비애감을 형성한다고 볼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들 한다. 그래서 ‘가을남자’ 라는 표현이 있다. 가을이 오면 여자는 혼자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하고, 가을 남자는 곁에 누군가가 있어주기를 원한다. 또 가을 남자는 어느 후미진 골목 선술집에서 막걸리로 비애와 향수를 달래며 단풍이 곱게 물든 장미의 눈물을 기억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흘릴수록 좋은 눈물에는 세 종류가 있는데 신뢰의 눈물, 연민의 눈물, 회개의 눈물이다. 참으로 힘들고 어려울 때 누군가가 잡아주는 격려의 손, 위로의 말, 작은 정성 때문에 감동하여 흘리는 눈물은 신뢰의 눈물이다. 또한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 같은 처지여서 공감하여주는 마음, 가족을 위하는 마음, 사랑의 감격에 빠져 흘리는 눈물은 연민의 눈물이다. 죄를 뉘우치고 후회하며 흘리는 눈물은 회개의 눈물이다. 참다운 사람, 인격을 갖춘 사람은 이 세가지 눈물을 흘릴 줄 알아야 한다. 특히 나는 나 자신의 모든 허물과 나의 인생여정에 알게 모르게 지은 온갖 모든 죄악과 불의를 후회하고 뉘우치며,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진정한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눈물을 흘리면 남자답지 못하고 점잖지 못하다고 흉을 보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좋다.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은 그만큼 따듯한 마음을 가졌다는 증거이다. 진정 흘려야 할 때 흘리는 눈물이 우리를 더 큰 사랑으로 하나님께서는 이끌어주신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235>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