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내 고향 여름밤의 추억
요즘 매일 매일 찜통같은 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이렇게 무더운 플로리다의 여름 더위를 두고, 한 여름에 마누라 또는 남편은 없어도 되지만 에어콘은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된다고들 우스개 소리로 말들을 한다.
무더운 여름 밤하면 당신의 추억은 어디에서 어떻게 잠자고 있나요? …….. 시간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 옛날 동심의 그리움속, 지금 그 추억의 여행을 떠나보려 한다.
내가 어렸을 적에 살았던 고향마을 시골은 동물농장 같은 조용하고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토끼, 닭, 돼지, 송아지 등을 돌보다보면 여름운동이 필요 없을 정도로 체력이 보충되었다. 낮 더위의 기온으로 인해 흘린 땀과, 학교를 끝나고 와서 집에서 기르는 가축들을 돌보고 먹이주고 몸 씨름을 하고난 후, 깡보리 밥에 열무김치, 상추쌈에 된장을 찍어 입안 가득히 숟가락에 담아 삼키고 나면 포만감에 온몸이 나른해진다. 멍석을 깔고 앉아있노라면 윙윙거리며 날아오는 모기떼와 사생결단을 한바탕 치르고 나서 우물가로 가 차가운 얼음 같은 물로 등목을 하고나면 여름계절에 부러울 게 없었던 그 시절, 밖의 멍석 옆에 놓여진 평상마루에 등을 붙이고 누워 밤하늘을 보고 있으면 왠지 시인이 된 것처럼, 무대에 선 무명가수처럼 아름다운 음율의 글이 떠올라 혼자서 중얼거리곤 하였다.
그 당시 밤하늘의 밤은 왜 그렇게 깨끗하고 선명했던지, 지금도 뚜렷하게 그 상황이 머리속을 스쳐간다.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고 별을 세며 북두칠성을 찾았던 그 시절, 들판에 나가 생 쑥을 낫으로 베어 한아름 품에 안고 집에 돌아와 저녁밤에 그 쑥으로 불을 피우면 그 연기의 매운 맛으로 인해 모기와 해충들은 멀리 멀리 도망을 가 모기 방충망이 필요 없던 시골이었기에, 시원한 밤하늘을 보며 가족들과 함께 과일이나 옥수수를 먹으며 하루의 노고를 휴식으로 푸는 휴식공간이 바로 넓은 앞마당의 공간에서 보내는 여름밤의 추억이다.
내가 살던 시골마을의 가구 수는 30여채 남짓한 작은 마을이다. 한여름 이맘때가 되면 벼를 심은 논에 논매기가 한창이고 밭에서는 참깨 밭, 들깨 밭, 수수 밭, 고구마 밭 등등 할 것 없이 밭고랑에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를 뽑아주느라고 일손이 분주한 때이다. 바쁜 농사일정에 서로 겹치는 일이 없도록 날짜를 잡아 품앗이를 하지 않으면 제반 농사를 그르칠 염려가 있기에 부지런한 농부들은 허리를 펼 여유도 없이 호미질과 낫질에 구슬땀을 흘려야 했다. ‘왕후의 밥, 걸인의 찬’이라고 했던가?. 땀에 흠뻑 젖은 옷차림으로 새 참 시간에 논두렁에 앉아서 먹는 새참(점심) 맛은 임금님 수라상이 부럽지 않다. 참된 노동의 댓가 일 것이다. 집에서 누룩을 발효시켜 만든 막걸리(탁주)로 목을 축이는 동네 아저씨, 곁에서 밥과 반찬을 챙겨주는 아낙네도 아저씨가 건네주는 탁배기 한잔에 목을 축이고 이내 얼굴은 들판에 익어가는 빨간 고추처럼 빨개지고 만다. 탁주 한사발에 갓 담근 총각열무김치 한 조각을 손으로 덮썩 집어 입속으로 집어넣는 그 순간, 금새 무아지경에 빠져든다.
캬~~~아 아, 술맛 좋~오~타.
누구에게나 고향은 어머니의 품속 같은 보금자리나 다름없다. 때문에 세상 살기가 힘들 때 마다 어머니의 품속을 찾듯 고향을 찾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우리가 세상살이에 힘들어 하고 좌절할 때마다 어머니가 맞아주듯, 고향의 산천은 우리를 따듯하게 감싸 안으며 품어준다. 우리들은 현재 어머니와 같은 고향이 아니고는 위로 받을 곳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특히 우리들은 둥우리를 떠난 병아리처럼 수없이 멀리 떨어진 머나먼 이국땅 미국에서 고국을 그리워하며 향수에 젖는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생각해보면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이 있다. 특히 우리네 같은 이민자들은 고향을 잊고 사는 유민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지금은 먹을게 많아져서 과체중, 뚱뚱이 아이들이 많이 보이지만, 옛날 나의 어린시절에는 뚱뚱한 아이는 눈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무더운 여름 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참외나 수박밭에 들어가 참외서리를 해서 따낸 수박이나 참외를 들고 가볍게 냅다 튀기에는 날씬하고 마른 체격이 안성맞춤이었다. 몸이 빼빼하고 날씬하다보니 달음박질 하는 데는 모두가 선수였다. 수박이나 참외를 지키기 위해 밭 주인은 높다랗게 원두막을 짓고, 가파른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그 원두막에서 막상 참외 서리하는 아이들을 발견하여 붙잡으려고 내려 오느라면 시간이 걸리게 된다. 그 사이 옷자락에 잔뜩 참외를 주워 싼 개구장이들은 잽싸게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줄행랑을 친다. 붙잡히면 끝장이다. 이것이 발각되어 학교에서 알게 된다면 정학처분을 받거나, 엄마와 함께 곱배기로 보리쌀 자루를 들고 가서 사정사정 하며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야 한다. 때문에 기를 쓰고 도망을 해야 한다.
마구잡이로 급하게 따온 수박이나 참외는 덜 익은 것도 간혹 섞여있었지만, 그것을 한입 깨어 물은 순간, 얼마나 달았던지 내 입술과 혀가 감미로운 맛과 향기에 취해서 호강에 겨워 요강에 빠진듯 하다. 내가 평생을 살아오면서 이것처럼 달고 맛있는 참외는 이때껏 먹어보질 못했다. 이렇게 맛있는 참외와 수박 맛을 보기 위해서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빠지지 않고 다녔던, 천사였던 기운이는 오늘 친구들의 꾐에 빠져서 그날로 천국의 입국 명단에서 삭제되어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고, 에덴동산에서 몰래 따온 금단의 열매가 그렇게 달았을까?……… 가슴이 쿵쿵 뛰고, 손발과 오금이 저려오는 긴박감 속에 부지런히 참외와 수박을 따서 훔쳐오는 시간 내내, 무더위에 땀으로 범벅이 된 몸과 옷은 소낙비 맞은 듯 흠뻑 젖어있지만, 별빛에 반사되어 다람쥐 눈처럼 초롱초롱한 젊은 눈망울들은 미소를 가득 머금고 모두가 그보다 더 큰 행복이 세상에는 없는 줄로만 알았다. 기나긴 장마가 끝나고 폭염의 연속, 7월의 한 여름 밤, 짜디짠 땀의 노고 후에 얻어진 달고 맛있는 참외와 수박을 먹으며 그날 그곳의 모든 어린애들은 그것이 정말로 나쁜 도둑질인줄도 모르며 모두가 깔깔대고 조잘대며 개울가 모래밭에서 밤새는 줄도 모르고 웃으며 장난을 쳤다.
어릴적 한여름이 되면 더위와 모기들이 극성이라 해가지고 밤이 되면 겁이 나는 여름 밤, 지금이야 에어컨과 선풍기, 전자 모기향, 모기 쫓는 스프레이 등이 있어서 나름대로 모기걱정 없이 쾌적하고 편안하게 보낼 수 있으나, 옛날에는 더위를 피해 마당에 돗자리나 멍석을 깔거나 평상 주변에 모깃불을 피워놓는 게 전부였다. 엄마 다리를 베고 누워 하늘을 올려다본 별들은 어찌나 투명하고 밝든지 그 아련함을 잊을 수가 없다. 모깃불이라야 무성한 뺑쑥이 최고라 하여 돗자리나 평상주변에 불을 지펴 놓으면 매케한 연기에 아이들은 난리를 피우기도 하다가 할머님이나 엄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다가 어느 듯 스르르 잠이 들곤 했다. 지금은 생활과 환경이 윤택하여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지만 삭막함은 어쩔 수 없나보다. 그 당시에는 부채 하나가 지금의 선풍기 역할을 하기도 하여 할머니나 엄마는 팔이 아픈 줄도 모른채 손주나 아이들을 위하여 선풍기 역할을 해주기도 하셨다.
우물물에 담궈 둔 잘 익은 수박을 잘라 이웃들과 나누어 먹으면서 여름밤은 깊어갔고, 이웃사람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 소리들이 마치 지금도 귓전을 맴도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아름다웠던 내고향 여름밤의 추억이었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