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기자의 이스라엘, 요르단 성지순례 기행문12> 예루살렘

김명열기자의 이스라엘, 요르단 성지순례 기행문<12> 예루살렘

<지난 주에 이어>

순레자들은 오늘도 성서의 지명을 따라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하지만 어느 곳도 엄밀히 말하면 예수님의 흔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예수님이 남긴 흔적이 아니라 로마가 만든 흔적이었다. 예루살렘을 기독교 성지로 만든 사람은 콘스탄틴 황제였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옛 예루살렘은 본래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성전 가운데 임재 하던 곳이었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다면 그만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믿음의 눈을 가지고 예루살렘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역사적 성지, 예루살렘이 오늘날 기독교신자인 우리에게 타당한 구속사적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옛 예루살렘은 다가오는 새 예루살렘을 지시하는 예표로서만 우리들에게 의미를 지니는 것이어야 한다. 옛 예루살렘은 종말론적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안에서 종말론적으로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상으로서 대충 예루살렘에 대하여 독자 여러분들께 이해가 되도록 소개를 해드렸다. 드디어 우리들 순례객 일행들은 성지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그곳에 산재되어있는 역사적 사지, 성지를 둘러보게 되었다. 우선 제일 먼저 성전산, 즉 황금사원이 높이 솟아있는,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가장 치열한 다툼의 역사가 있었던 곳, 예루살렘 성지의 여러 군데를 소개하여드리도록 하겠다.

성전산(황금사원)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한 사람이면 누구나 인상적인 건물을 기억할 것이다. 성전산 위에 자리잡은 이슬람의 황금 사원이다. 둥근 황금빛 지붕의 팔각형 회교 사원이다. 돔 형태의 지붕이 황금색으로 빛나기 때문에 ‘황금사원’이란 이름이 붙었다. 이곳의 도시 정책상 새로 건축되는 모든 건물들의 색깔을 옅은 베이지색 돌만을 이용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 황금사원은 언제나 회색빛으로 젖어있는 예루살렘을 환하게 밝혀주는 느낌을 준다. 예루살렘 성 동쪽 남부지역에 자리 잡은 성전산은 예루살렘 성내의 6분의 1을 차지할 만큼 넓은 지역이다. 산의 높이는 해발 750m가량 된다고 하지만 예루살렘 성 자체가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어서 산이라기보다는 약간 높은 언덕정도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유대교와 기독교가 있는 이곳을 제각기 성지로 여기는 이유는 창세기 22장 사건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브라함이 아들인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했던 모리아산이기 때문이다.(창22:2), 해발 734m의 모리아 산에 바위(길이 약 18m, 폭 13m, 높이 1.2~2m)가 있는데, 이곳이 번제단으로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하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말라.’<이하 생략~ 창세기22장 11절~19절 참조할것>

아브라함의 번제 사건이 있은 후 왕국시대에 이르러 다윗왕은 ‘오르난의 타작마당’ 이기도 했던 이곳을 은 50세겔을 주고 매입하였고(삼하 24:18~25), 주전 950년경에 그 아들 솔로몬왕이 두로와 히람의 도움을 얻어 이곳에 예루살렘 성전을 세웠다.(역대하 3:1)

그래서 이 성전산이 유대인에게는 자기백성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소로 여겼다. (왕하 25:8~9, 대하 36:19), 따라서 예루살렘 성전은 유대인에게 있어서 종교적, 정신적, 그리고 민족적인 중심지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주전 586년 바벨론 왕 느브갓살네살에 의해 성전은 파괴되었고 유대인들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다. 주전 536년 페르시아 왕 고레스때 포로로 잡혀갔던 유대인들이 돌아와 폐허가 된 솔로몬의 성전위에 성전을 다시 지었다. 그래서 솔로몬이 지은 성전을 제1성전이라고 하고 이때 지은 성전을 제2성전이라고 부른다. 이 성전은 솔로몬이 성전을 세운 곳이기에 이곳을 성전산이라 부른다. 이 성전은 솔로몬이 성전을 세운 곳이기에 이곳을 성전산이라 불렀다. 그리고 주전 37년부터 주후 4년까지 로마제국에 의해서 왕으로 세워진 헤롯왕은 주전 20년에 성전산을 2배의 넓이로 확장하고 아름답게 꾸몄다.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을 지어 자신을 과시하기 좋아했던 헤롯이 성전을 다시 대폭 증축, 보수를 하였기에 이를 헤롯성전이라고도 한다. 현재에도 헤롯왕이 건축한 것의 일부가 서쪽 벽밑 부분에 남아 있다.

그러나 규모나 화려함이 극치를 이루었던 이 성전도 주후 70년 아브(AV)월 9일 로마 장군 티투스에 의해서 다시 파괴되었다. 오늘날에도 경건한 모든 유대인들은 성전이 파괴된 아브월 9일을 슬퍼하며 이날을 기념하고 있다.

주후 638년 이슬람의 칼리프 오마르 왕이 예루살렘을 점령한후 이곳은 성지 논쟁에 이슬람교가 가세했다. 이슬람의 오마르왕은 이곳을 이슬람교도의 성지로 만들기로 결정하고 솔로몬의 성전터 위에 현재의 바위 돔 (the Dome of the Rock)을 세웠고, 8세기 초에는 성전산 남쪽에 칼리프 왈레드가 엘~악사 회교사원을 건축했다. 이곳은 솔로몬왕때의 궁전이 있던 장소라 전해지는 장소다. 이 사원밑의 지하 건물은 고대의 아케이드로 불린다. 아름답게 장식된 기둥과 아치들이 지붕을 받쳐주며, 사원바닥은 값비싼 유탄자로 덮여있다. 그 결과 거룩했던 하나님의 성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대신 이슬람교 모스크가 그 자리에 서서 위용을 자랑하게 되었다.

1099년 성전산은 십자군이 정복하여 성전산을 거룩한 장소로 여기고 무슬림의 모든 건축물을 기독교라 하면서 건물에 십자가 등을 설치하였으나, 1187년 아바시드의 지도자 살라딘, 1250년 이집트의 마믈릭왕조, 1517년 오스만 터어키에 의해 거듭 정복되면서 이곳의 이슬람 건물은 더욱 보강되고, 오스만 터어키의 슐탄 술레이만 황제는 1940년 바위 돔에 푸른색 타일까지 장식했다.

지금 성전산에는 이슬람의 황금사원이 세워져 유대교, 기독교인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데, 이슬람교도들은 마호메트가 지상의 삶을 끝내고, 백마를 타고 승천한 장소가 바로 그곳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마호메트가 승천할 때 밟았던 마지막 발자국의 흔적까지 그곳의 바위산에 남아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들은 그곳에 두개의 이슬람교 대 사원을 건축했고, 그곳을 ‘하람 에스 샤리프’라고 불러왔다.

‘고귀한 영역’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슬람교도들에게는 모하멧이 태어난 곳 메카, 모하멧의 무덤이 있는곳 메디나와 더불어 이곳 모리아산을 회교의 3대 성지로 여기고 있다. 이처럼 한 장소를 놓고 세 종교가 영유권을 주장하다보니 어찌 성지를 차지하기 위한 분쟁이 없겠는가. 1967년 6일전쟁 이전까지 이곳은 요르단의 영토였는데, 6일전쟁 이후 예루살렘지역은 이스라엘이 차지하여 모든 장소가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무슬림이 아닌 관광객이나 유대인이 성전산에 가기위해 이용할 수 있는 통로는 단 하나다. 서쪽에 있는 ‘무그라비’라 불리는 문이 그것으로, 예루살렘 성내 유대인 구역인 ‘통곡의 벽’ 광장쪽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 벽위가 바로 성전산이다. 통곡의 벽은 유대인들이 성전산 구역에서 예배드릴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 그래서 이 벽 광장 아래에서는 유대인들이 통곡하며 기도하고, 위에서는 무슬림들의 기도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울려 퍼지는 진기한 장면이 매일 매일 연출되곤 한다. 그나마 성전산은 매주 금요일 오전에는 이곳에서 수천에 이르는 이슬람교도들의 집회가 열리는데 이때 일반인들은 출입이 통제된다.

오늘날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는 다윗왕이 성전산 지역을 돈을 주고 샀다는 사실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윗왕의 후손이 되는 오늘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성전산의 소유권이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삼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구약성경의 기록이 오늘날 소유권 분쟁의 해결에 법적인 효력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있고, 아랍인들은 그런 주장을 일고의 가치가 없는 것으로 일축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계속되어온 크고 작은 갈등의 본질은 결국 예루살렘에 대한 주도권 다툼이라고 할 수 있다. 아랍인 처지에서는 예루살렘에 대한 모든 통제권을 뺴앗긴 상황에서 유일하게 자신들이 관리권을 행사하는 성전산 구역을 이스라엘이 좌지우지 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는 뜻이고, 이스라엘은 자국 영토이자 수도인 예루살렘에 대한 통제권을 일부 지역이나마 아랍인들에 의해 제지당하는 상황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사람들 중 일부 극단적인 과격파들은 이러한 상황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폭탄을 사용해서라도 성전산 위에 있는 두개의 이슬람교 대사원을 폭파시키고 새로운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세우겠다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극단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수가 1천명을 훨씬 넘는다는 사실은 극히 우려할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의 하나라도 그런일이 벌어진다면, 사태는 걷잡을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22개 아랍동맹국가들은 물론이요 이슬람국가연합을 구성하고있는 57개 국가들은 반드시 집단적으로 이스라엘에게 보복 공격을 가해올 것이다. 이스라엘측은 이에 대응할 수 밖에 없고, 상황은 걷잡을수 없이 대규모 전쟁으로 확대될 수가 있다. 이것은 단순한 가상의 시나리오만은 아니다. 실제로 돌발적으로 전개될 수 있는 폭발직전의 불화산 같은 상황이 언제나 이곳에 잠재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그러나 성전산에 있는 옛날의 성지 유적지들을 둘러보고 나오면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오늘날 우리가 찾아야할 진정한 성전이란 성지 예루살렘의 성전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있는 성전이요, 신약의 신령한 성전인 교회로서의 성전이라는 것을, 예루살렘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인하여 그를 믿는 초대교회 공동체로 신령하게 변모되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신자의 마음속에 있는 보이지 않는 교회를 ‘하나님의 성전(고 전 6:19)’ 이라고 말하고 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에게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고전19)”

베드로도 그의 편지에서 초대교회 성도들이 신령한 이스라엘이요 하나님의 백성이요 거룩한 제사장 이라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다음 주에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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