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동지섣달 기나긴 밤, 나의 고향 이야기
낮의 길이가 짧고 밤의 길이가 길어진 이맘때, 동지섣달 그 무렵의 겨울이되면 내고향 시골마을에서는 논과 밭의 가을걷이 농사도 다 마쳤고, 김장도 입동을 전후해서 모두 담궈 뒷 곁의 담장 밑이나 양지쪽의 텃밭에 묻어두었으니 먹고살 문제는 해결이 되어있다. 몇 달 후 닥쳐올 보릿고개는 아직은 까마득한 나중의 얘기이지만, 아무튼 지금의 이 시기, 동지섣달은 먹을 것이 그리 부족하지 않은 넉넉한 시절의 이야기들이다.
지금의 이맘때쯤에는 각가정의 집마다 초가지붕도 이엉을 엮어 새로 이었고, 안방, 사랑방, 건너방이 미닫이, 여닫이, 드닫이, 방문과 봉창도 모두 창호지를 새로 바르고 문풍지도 붙여 외풍을 막았고, 나뭇간에는 콩대, 깻대를 비롯하여 마른 솔나무가지와 참나무 장작까지 겨울나기 땔감을 가득히 쟁여놓아 추위에 떨 걱정도 덜어냈다.
이렇게 월동준비를 마치고 농삿일이 끝난 이때를 소위 말하는 농한기에 접어들은 것이다. 이때가 되면 우리들의 보통 시골 아낙네들은 길쌈이라 불리는 기나긴 공정에 들어가니, 목화솜이나 가늘게 찢은 삼(대마) 껍질을, 물레에 돌려 실을 뽑고, 마당에 길게 매어 널어 풀 먹이고 말리기를 거듭한 뒤 베틀에 걸고 삼베나 무명을 짜셨다. 그리고 우리네 남정네 아빠들은 사랑방 한켠에 놓인 가마니틀로 가마니를 짜거나 내외분이 함께 돗자리를 짜 모아, 닷새마다 열리는 장날에 내다 팔아 살림에 보태곤 하였다. 그러나 그때, 지금 생각해보면 아득한 옛날의 그 시절에는 전기도 없고 흑백TV도 없던 그 시절, 어둠이 내리는 저녁이 되면 엄마들은 침침한 석유등잔불 앞에서 버선을 기우거나 뜨개질도 하고, 혹은 조금은 도시 형태를 갖춘 읍내 동네에서는 ‘홀치기’라고 불렀던 농가부업도 하면서, 읍내 소리사에서 삐삐선으로 보내주는 유선방송 스피커의 라디오 뉴스나 연속극을 들으면서 동지섣달 긴긴밤을 보냈지만, 사랑방에서 무료하게 혼자서 새끼를 꼬고 계시던 우리의 아버지들은 슬그머니 일어나 동네사람들이 모이는 동네 사랑방으로 가서 종이에 말아 담은 잎 연초 말린 담배를 뻐끔대며 입에 물고 담배연기 자욱한 실내에서 화툿장을 꼬나들고 구삥, 장땡을 외치며 얼굴이 벌개져서 게거품을 물기도 했다.
어느 때는 일년에 한,두번씩 면소재지 옆 공터에 곡마단(써커스)이나 창극단, 또는 활동사진(영화)이라도 들어오면 ‘쩐’이 문제라 먼지 나는 호주머니속을 몇번씩이나 손주먹이 들락날락 하다가 제물에 겨워 지쳐서 애꿎게 맹물만 한바가지 벌컥벌컥 마시고 방구석으로 쳐 박혀 들어가 버린다. 그러나 시도 때도 없이 가끔씩은 만담을 곁들인 약장사가 들어왔다 하면 입장료가 필요 없는 무료입장이라 공짜구경을 늘어지게 할 수 있다. 간혹 공짜구경을 하는 것이 미안하신 어른들은, 효능도 믿지 못하는 환약이나 경옥고를 인정에 못 이겨서 한두가지 사주기도 했다. 어느때는 경찰서(주재소) 지소 옆의 농협창고에, 바닥에 가마니를 깐 가설극장이 들어와 ‘성춘향’ 활동사진이라도 틀게 되면 저녁 상영시간 두세시간 전부터 농협창고 앞 공터에는 십여리밖 산골동네 사람들로부터 개똥이 엄마, 소똥이 아부지, 골말댁, 언년이, 거시기삼촌 등등의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이들을 바라보고 뻥튀기, 솜사탕, 엿장사들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며 하나라도 더 팔려고 손님들을 불러모으느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대개들 이맘때가 되면, 일상에서 동지섣달 긴긴 밤이란 말을 두루두루 많이들 한다. 동지는 24절기중 뒤에서 두번째 음력 11월을 말하며, 일년중 밤의 길이가 가장 길다. 섣달은 음력으로 마지막달인 12월을 말한다. 동지섣달 긴긴 밤을 독수공방을 말하는 것은 말벗 없이 긴 밤을 보내야하는 심리적 묘사를 잘 표현한 말이다. 바로 요즘을 섣달이라고 한다. 지금이야 도시나 농촌 할 것 없이 아무곳에서나 TV만 시청해도 여기저기 채널을 바꿔가며 날을 샐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의 어린 시절, 나의고향마을 농촌에서는 짧은 낮의, 여우꼬리 만큼 짧은 낮이 지나고 해가져 밤이 되면 집집마다 군불을 지피는 굴뚝에 하얀 연기를 내뿜는다. 어둡기 전에 석유등잔불을 댕겨 불을 켠다. 긴 밤을 보내면서 등잔속의 석유가 다 소비되고 나면 이튿날 저녁에는 이렇게 다시 채워줘야 한다. 조금만 늦어도 심지가 타버리고 불은 꺼져버린다. 무명실을 겹겹해서 만든 심지는 너무 크면 끄림이 나고, 밝기는 하지만 냄새가 나며, 콧구멍이 새까맣게 그을기도 한다. 방안에는 석유등잔불이 문창호지를 통해 비쳐 나오지만, 그러나 밖의 세상은 온 동네가 암흑천지다. 하지만 큰 불편을 느끼지 못하고 사는 것은 발전된 문명을 체험해보지 않았기에 당연한 것이었다. 초저녁 일찍 먹은 저녁밥은 이미 뱃속에서 사라진지 오래여서 무엇이 먹고 싶고 허전하며 뱃속이 출출하다. 이럴때는 엄마가 정확히 상황판단을 잘하셔서 고구마를 삶아 동치미국물에 한 상을 차려주시면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이 단숨에 먹어치워 출출해진 뱃속을 채운다. 어느 때는 그도 모자라 입맛을 쩍쩍이다 보면, 안됐다는 듯이 조무래기 우리들 5남매를 바라보시던 할머니는 돌 담가 감나무사이에 볏짚으로 쌓아놓은 홍시를 꺼내다 주시곤 했다. 지금이야 도시나 농촌 할 것 없이 전화 한통이면 통닭이며 피자, 짜장면, 커피, 등등을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지만, 옛날 그 시절은 자급자족한 농산물이 주전부리나 간식거리의 전부였다.
요즘의 동지섣달 도시의 풍경은 어떻게 보내는가. 젊은 청소년이나 학생들은 겨울방학을 맞아 재미있게 보내고 있을 것이고, 또 어느 아이들은 날 샌 줄도 모르고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끼고 앉아 게임이나 잡담에 열중하면서 가족과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시간들을 뺴앗기고, 습관은
개인주의로 변하는 밤을 보내고 있다. 어른들 역시 연말을 맞아 계모임, 동창회, 동호회, 송년회등으로 먹고 마시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2차가 부족해 3차까지 노래방, 나이트클럽, 룸싸롱 등등으로 너무도 다양한 긴긴 섣달 밤을 밖에서 보내고, 파김치처럼 축 쳐져서 대리운전에 몸을 싣고 집을 찾는 동지섣달의 긴긴 밤을 보내고 있다. 경제성장과 문명의 변천은 기나긴 밤을 밤낮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유흥가는 불빛으로 꺼질 줄 모르고 성업중이다. 자연스럽게 옛 풍습이 까맣게 잊혀져가고 생활의 변화에 따른 가치관마저 바뀌어져 가는 세시풍속으로 변하고 있다. 모든 것이 개인주의화돼가는 사회라고 하지만 온고지신 정신으로 옛것을 익히고 현실도 함께 받아들이면서 옛날과 현대가 공존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시대다.
요즘 젊은이들이나 신세대들이 어떻게 석유등잔불을 알것이며, 군불 지피던 온돌방 생활을 얼마나 알수있을까?………..지금 시대를 풍요로운 물질만능 시대라고들 말을 한다. 그러나 경제력이 좋은 부자나라가 됐다고 해서 국민들의 행복지수도 덩달아 좋아지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즉 경제만 잘된다고 모든 국민이 행복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부자들도 불행을 겪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자급자족한 간식을 먹으면서 동지섣달 긴긴 밤을 석유등잔불 아래서 즐기는 그 옛날의 우리 선인들의 행복지수는 아마도 이 세상에서 제일 높았을 것이라는 것을 동지섣달 긴 긴 밤을 보내면서 생각해보았다.
<지난 한해도 변함없이 관심을 갖고 저의 글을 애독하여주시고 독후감을 보내주신 많은 독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2020년 금년 새해에는 모든 독자분들께서 행복지수도 높아지고 생활도 향상되는 복되고 즐거운 한해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드립니다.
후회하지 않는 보람되고 넉넉한 2020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애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