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기자의 이스라엘, 요르단 성지순례 기행문<4>

김명열기자의 이스라엘, 요르단 성지순례 기행문<4>

이스라엘의 코셔(Kosher) 음식들과 가이사랴 유적지

 

요나가 도망쳤던 욥바항을 둘러보고난후, 우리들 일행은 첫날의 성지순례 일정을 마무리하고 텔아비브 다운타운의 어느 호텔에 도착을해 여장을 풀었다. 별 다섯짜리의 오성급 호텔로 무척 깨끗하고 쾌적해보였다. 각자 배정된 룸에 짐을 내려놓고 우리들 일행은 호텔 라비 곁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 안에 들어가니 정갈하게 차려진 부페식의 이스라엘 전통음식들이 수십종 츄리에 담겨서 우리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각종 향신료를 넣고 만든 이스라엘 음식들을 처음 대하고 보니 어느 것을 먼저 먹고, 어느 것이 나의 입맛에 맞는 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저 보기 좋고 맛이 있을 것 같은 것을 커다란 접시에 담아서 테블로 와서 앉았다.

히브리어로 코셔(Kosher)라고 부르게 되는 이스라엘의 보통의 음식들은 정결을 뜻하며, 이스라엘에서 먹을 수 있는 보통의 모든 음식들을 코셔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이스라엘 음식은 세계의 다양한 음식들이 모여 있어 비교적 선택의 폭이 넓은 음식이다. 중동의 교통요지에 위치하여 오랜 역사를 통해서 정복자들, 교역자들, 식민지 관리 등이 3천년이상 여러 대륙과 제국으로부터 이스라엘에 도착하고 이들이 각종의 음식문화와 맛을 소개해 와서 조화를 이루게 된 것이 이스라엘 음식 문화의 배경이다.

로마, 그리스, 터키, 유럽십자군, 이슬람교도들이 역사에 걸쳐 고대 이스라엘음식에 자취를 남긴 것이 오늘날의 이스라엘 음식이다. 비록 이스라엘국토의 절반이상이 사막이지만 이스라엘은 농업기술과 농산물 수출로 유명하며, 실제로 사막에서 토마토 등의 각종 야채들을 기르고 있다. 자연에서 신선하고 다양한 야채와 과일이 수출되어 성서에 언급되는 종류로부터 동남아시아의 열대과일까지 찾아 볼 수 있다.

기본적인 음식재료는 성경에 언급되는 7가지 식물(Shivat Nimin)을 통해서 보듯이 밀, 보리, 무화과열매, 포도, 대추야자열매, 석류 그리고 올리브열매이다. 양파, 마늘, 호박 등의 야채도 사용되고 대두는 수프를 만드는데 사용되었다. 부유한 사람들의 식단에는 양고기, 쇠고기 등 각종 사냥한 짐승의 육류가 있고 신선한 야채가 즐비하며 순무, 오이, 서양무 절임, 절인 고기요리, 구운고기, 훈제 및 튀김요리, 사과, 아몬드, 배, 복숭아, 머루, 귤 등등의 과실, 그리고 각종 포도주가 다양하게 오른다. 종교를 벗어나서는 절대로 이스라엘을 이해할 수가 없는데, 발톱이 두갈래로 갈라진 짐승을 먹지 말고, 되새김질 하는 동물은 먹는다. 비늘이 있지 않은 생선, 오징어, 갑각류, 꽃게, 조개 등은 먹을 수 없다. 유대인의 율법에 한해서 유제품과 고기를 함께 먹을 수 있다. 정통 종교 유대인들은 엄격하게 코셔를 지키지만, 비종교인들은 먹고 싶은 대로 먹는 편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식단에 꼭 올려지는 음식중 하나는 피타 빵이다. 지중해 연안과 중동지역의 독특한 빵으로 직경이 10~15Cm정도로 둥굴고 얇으며 반으로 쪼개면 마치 주머니처럼 속에 구멍이 나있는데 거기에 샐러드와 고기 등 여러 가지를 넣어서 샌드위치처럼 만들어 먹는다. 특히 눈여겨 볼 사항은 각종 향신료, 조미료 그리고 올리브기름은 이스라엘 음식의 빼놓을 수 없는 요소들이다. 올리브 나무는 이스라엘 전역에 즐비하고 수백년이상 수명을 유지하고 있는 나무도 많다. 산악의 구릉지대에 각종 향신료 식물들이 야생하고 있으며 한때는 중요한 향신료 무역의 원산지였다. 주변의 이태리, 그리스, 스페인, 아랍 등의 음식과 같이 전형적인 이스라엘 음식은 메제(Megge)라고 불리우는 커다랗고 현란한 전채로 시작된다. 이태리음식에서 ‘안티파스티’라고 부르는 샐러드나 스페인요리의 ‘티타스’와 유사한 것으로 계절 감각이 가미된 신선하고 특선된 몇종류의 샐러드가 포함된다. ‘메제 앙상블’은 흔히 검은색, 갈색, 초록색 등의 다양한 색깔을 지닌 절인 올리브와 후무스, 트히나 같은 빵에 찍어먹는 샐러드를 수반한다. 후무스는 중동지역의 강남콩 일종으로 삶은 후에 갈아서 각종 향신료와 혼합한 음식이고, 트히나는 참깨를 갈아서 마늘, 레몬, 파슬리 등과 혼합한 음식으로 빵이나 다른 음식에 곁들여 먹는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메제와 식사중에는 꼭 피타빵이 함께 식단에 오른다.

유대교의 음식 규정에 따라 육류와 유제품을 함께 먹지 못하게 되어있어서 기름지고 풍부한 소스의 사용보다는 그릴요리 또는 음식물 고유의 즙과 신선한 향신료와 야채를 이용하는 음식이 대부분이다. 닭고기를 올리브기름과 향신료를 혼합한 용액에 절여서 굽는 요리도 유명하다. 돼지고기나 기타 고기류의 요리는 금지되어있으나 거기에 준하여 다양한 생선요리가 있다. 디저트는 꿀과 너트 그리고 신선한 과일을 주로 이용한다. 유럽식의 크림이 사용되는 디저트와는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이와 같이 다양하고 다채로운 부페식의 푸짐한 식단은 이스라엘과 요르단 여행 내내 호텔의 식당에서 제공되었다. 처음 대하는 이스라엘의 전통 요리와 음식은 우리일행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고, 각 개인의 기호에 따라 맛있는 것을 골라서 먹었다. 아침에 일어나 호텔의 식당에 내려가 보니 메뉴는 어제 저녁과 비슷했으나 종류는 조금 줄어들었다. 각종 향신료의 냄새를 처음 대하는 나로서는 조금은 역겨웁고 나의 입맛에 맞지가 않았다. 그런대로 빵이나 커피와 함께 간단히 먹는 데는 크게 부담이나 불편을 주지는 않았다.

이튿날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관광버스에 올라 오늘의 첫 방문지인 가이사랴 유적지로 향했다.

가이사랴는 초대교회 이방 선교의 전초기지와 같은 곳이다. 두번째날 일정인 가이사랴 유적지는 호텔에서 1시간3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가는 동안 가이드를 맡은 전병규목사님은 오늘도 열심히 이스라엘의 역사와 문화, 경제, 일상생활 이야기, 종교 등등에 대하여 자세하고 재미있게 설명을 해주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듣든 중 어느듯 우리를 태운 버스는 가이사랴 유적지에 도착했다.

옛날 로마가 이집트까지 세력을 확장할 당시에 이스라엘도 점령당한다. 로마는 이스라엘을 통피할 헤롯왕을 선정하고, 왕은 로마의 아우구스투스에게 충성심의 큰 도시를 세우면서, 시저의 이름을 딴 가이사랴로 한다. 가이사랴는 규모면에서 아주 큰 항구도시였다. 이 항구도시는 깊이가 36.6m나 되는 바다를 거대한 돌로 메워 지중해로부터 부딪쳐오는 방파제를 만들고 그 위에 성벽과 여러 망대를 세웠다. 그리고 시장과 경기장, 원형극장, 신전, 로마식 공중목욕탕 등 그 어느 도시에도 뒤지지 않는 규모로 건축되었다.

특히 가이사랴는 지중해에 위치해 있어서 식수로 사용할 물을 얻기가 어려워 가이사랴 북쪽에있는 갈멜산으로부터 물을 끌어들이기 위해 9Km에 달하는 수도교(Aqueduct)를 건설했다. 또 로마에서 파견된 총독의 관저와 행정본부를 두어 행정 수도로서 정치의 중심지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서 사도행전(10:11)에 나오는 로마군대 백부장인 고넬료가 가이사랴에 주둔했던 것으로 보아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항구로서 그리 좋은 조건이 아니었는데 막대한 비용을 들여 이곳에 항구도시를 건설한 이유는 이 지역에 심한 북풍이 불어 큰 폭풍일 때 마땅히 피할 항구가 없고, 이스라엘북쪽 도르와 욥바 사이에 좋은 항구가 없어 로마의 문물을 신속히 받아들이고 사마리아의 농산물을 로마에 수출하는데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신이 이스라엘의 위대한 통치자임을 대내외에 과시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가이사랴는 이후 비잔틴 시대와 십자군 시대에도 계속 발전함으로써 인구가 약 10만명에 이르는 거대한 도시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주후 638년 십자군이 이스람군대에 의하여 패망하면서 이 거대한 도시 가이사랴는 함락되어 역사속의 도시로 사라져가게 되었다. 폐허가 된 현장에서 파괴된 유적들이 발견되면서 지금은 조용히 관광객을 맞고 있다.

유적들 가운데는 십자군 당시에 쌓은 성,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원형 야외극장, 마차경기를 즐겼던 해안의 경기장, 목욕탕 터, 갈멜산으로부터 물을 끌어들였던 수로가 바닷가에 줄을 지어 서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야외 원형극장에서는 지금도 지중해를 바라보면서 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특이한 것은 무대 앞에서 소리를 지르면 소리는 공명이 되어 우렁차게 울려 퍼진다. 무엇보다도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환호하는 것은 유적들이 있는 해안에서 짙푸른 망망대해 지중해를 바라보면서 독특한 낭만을 즐기는 일이다.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바닷가 전망대에 서면 그동안 장시간 여행에 시달렸던 순례객이나 관광객들 모두에게 시원함과 아울러 상쾌함을 선사해준다. 이곳에선 해변 바위 위에서 고기를 낚는 강태공들도 흔히 볼 수 있는데, 내가 그곳을 방문했을 때 역시 여러명의 낚시꾼들이 낚시 줄을 바다를 향해 던지며 열심히 고기를 낚고 있었다. 고기를 잡은 사람이 있어, 무슨 고기를 잡았는지 보여 달라고 했더니 팔뚝만한 숭어 두마리를 잡아놓고 의기양양하게 ‘이거보라’는 듯이 자랑을 했다. 사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 탬파에서는 특히 낚시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그 고기가 별로 자랑거리가 되지못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는 그것보다 몇갑절 큰 고기들을 종종 낚아 올리기 때문이다.

가이사랴는 기독교 신자들에게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앞서 언급한 로마 백부장 고넬료는 자신이 주둔하고 있는 가이사랴에서 욥바의 시몬집에 머물러있던 베드로를 모셔오게 하여 고넬료와 함께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세례를 받게 한다 이것은 당시로선 역사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너희는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기르쳐 지키게 하라(마태복음 28:19~20)”. 이 말씀이 처음으로 실천에 옮겨진 이 역사적 사건은 베드로가 유대인이 아닌 로마사람에게 세례를 줌으로써 기독교가 유대인의 울타리를 벗어나서 세계적인 종교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고, 인종과 국가를 초월하여 범세계적으로 복음이 전파되는 역사적 사건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곳 가이사랴는 사도 바울이 전도여행 중에 여러번 들른 것으로 나타나있는데, 일곱 집사중의 하나였던 빌립의 집에 머물기도 했다.(행10:1, 21:8). 또 사도 바울은 로마로 이송되기 전에 이곳 가이사랴 감옥에 약 2년간 수감(행18:22, 21:8, 23:23~33, 24:27, 26:1)되어 있다가 로마로 가서 참수형을 당한 것으로 기록이 남아있다.

이곳을 방문한 많은 순례자들은 초대교회당시 이방 선교의 전초기지가 되었던 현장 가이사랴에서 하나님을 경외한 의인 고넬료에게 내린 성령강림 사건을 되짚어보며, 이방 선교의 당위성을 앞세워 복음을 들고 지중해를 건넜던 바울의 선교 열정에 감탄하면서 다시 선교의 사명을 다짐해본다. <다음 주에 계속 이어짐>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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