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꽃피는 4월, 아름다운 봄의 계절에…………….
5월이 계절의 여왕이라면, 4월은 새싹과 꽃들이 피어나는 꽃 잔치의 달이라고 하고 싶다.
오랫동안 겨울과 힘겨루기를 하며 밀고 당기기를 하던 봄이 이제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엷은 연두빛 새싹이 돋아나고, 주변에서도 각종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고 있다. 황금빛의 복수초를 비롯해 울긋불긋 난쟁이 꽃, 난초 그리고 풀밭에는 흰색의 냉이꽃, 노란 꽃다지 꽃과 민들레, 보라 빛의 제비꽃이 피어나고 흰색 또는 붉은빛의 매화와 벚꽃도 제 세상을 만난 듯 앞 다투어 피어나고 있어 봄으로의 가슴 설레는 여정을 시작하고 있다. 이렇게 봄이 되어 각종 꽃들이 다양한 색깔로 치장하며 피어나는 이유는 벌이나 나비 등과 같은 곤충들을 유인하여 수정을 잘하고 씨를 맺어 종족을 번식시키기 위해서이다. 꽃들이 독특한 향기를 갖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이 곤충들도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이 색들을 잘 구별할 수 있을까?. 불행이도 벌들은 붉은색을 사람들처럼 잘 인식하지 못하고 붉은 꽃잎과 녹색 잎의 차이를 겨우 알 정도라고 한다. 그렇다면 붉은 장미는 어떻게 벌들을 불러올 수 있을까?. 벌들은 붉은색을 잘 볼 수 없지만 대신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자외선 부분을 인식할 수 있다고 한다.
붉은 꽃잎은 붉은색만 반사하는 것이 아니라 벌들이 볼 수 있는 푸른색, 보라색 및 자외선도 반사하기 때문이다. 한편 나비들은 붉은색에 민감하다고 하니 꽃속에는 우리가 모르는 신비한 자연의 오묘함이 곳곳에 숨어 있는것 같다.
아주 먼 옛날, 우리의 선조는 겨울이 되면 동굴과 움막에 몸을 숨겼다. 얼어붙은 땅과 강을 원망하며 영겁같은 혹한을 버텼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겨울이 지나가면 동굴과 움막에서 들로 뛰쳐나와 “생존”을 자축했다. 올해 겨울도 살아남았음을 온몸으로 기뻐했다. 봄의 들로 나온 인간을 반겼던 건 갓 녹은 땅에서 솟은 연초록, 아지랑이를 파도삼아 너울너울 춤을 추며 노는 나비의 노랑, 한껏 맑아진 하늘의 파랑이었다. 산야와 언덕 곳곳을 수놓은 봄꽃의 분홍과 풍성한 태양의 빨강도 한몫을 했다. 겨울을 살아낸 인간의 눈으로 봄의 색이 흠뻑 물들었다. 이제 대부분의 인간들은 추운겨울에 추위와 싸우며 생존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DNA에 각인된 봄의 환희는 그대로서였을까, 우리는 여전히 봄이 되면 초록과 노랑, 파랑 등의 봄의 색을 찾는다. 봄을 목에 두르고, 봄을 입고, 봄을 싣는다. 다양한 각종 봄의 색깔에 나의 몸과 마음도 덩달아 그 색깔속에 묻혀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러한 4계절의 계절마다 때를 상징하는 색깔이 있다. 무더운 여름은 청년의 계절답게 초록색이고, 가을은 나른한 햇볕을 받아 초록색이 바래져서 갈색이나 주황색이며, 겨울은 회색과 흰색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들 곁에 다가와서 머물고 있는 봄은 무슨 색일까?. 화사한 매화나 벚꽃놀이에 취한 사람은 흰색이라고 할 것이고, 이른 봄 일찌감치 산자락이나 양지바른 담벼락 사이로 피어난 개나리꽃, 산기슭 골짜기에 외롭게 피어난 산수유 꽃에 눈이 아픈 사람들은 노랑 색깔이라고 할 것이며, 철쭉이나 진달래꽃 놀이에 빠진 사람들은 분홍색이라고 할 것이다. 한편으로 붉디붉은 동백의 자태를 보면 빨강색도 빼놓을 수가 없다. 그러고 보니 봄은 계절의 여왕답게 화려하고 화사한 색깔들로 몸치장하는 여인의 계절이다.
나는 설익은 봄이 좋다. 마치 화장을 하기 전 말끔히 씻은 후 청조한 얼굴로 거울 앞에 앉은 여인처럼, 가지각색 원색들의 향연을 앞두고 봄의 기운들이 대지를 녹이는 이맘때의 봄 색이 좋다. 아련한 추억속의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내 고향속의 봄 색깔은, 연 노랑빛, 연 겨자빛, 연분홍빛이 군무를 추듯 겨울 나무위로 차분히 내려앉고 있다. 미세하고 흐릿하지만 봄의 따사한 온기로 피워놓은 고운 빛깔이다. 마치 알록달록 색동옷으로 곱게 차려입고 집을 나서는 수줍은 처녀의 얼굴처럼 곱고, 화사하고, 수줍어 보이며 아름답게 보인다. 자세히 눈동자의 동공을 고정시켜 주시하여 바라보니 오동나무, 버드나무, 굴피나무, 앵두나무, 단풍나무, 살구나무, 은사시나무, 매화나무 등의 수없이 많은 꽃과 나무들이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만들어놓은 진정한 봄의 색깔이다. 곧이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는 듯이, 나무의 잎사귀는 녹색의 푸르름을 자랑할 테고, 봄의 동산은 울긋불긋, 알록달록한 색들의 자태를 마음껏 뽐낼 것이다.
여기에 질세라 봄을 맞는 사람들의 옷 빛깔도 산과 들 속에 묻혀 자연속에 인간이 함께하는 조화의 색깔들로 물들여질 것이다. 여기에 더불어 아지랑이가 무르익어가는 봄기운에 흥에 겨운 듯 손사례,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면서 하늘을 향해 올라가고 있다. 좀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이 아름다운 봄의 색깔을 더 많이 더 높이 되도록 무척 많게 보려는 듯이…….
봄은 아득하게 머나먼 거리, 저 멀리 지평선 끝의 높은 산 너머에 있는 줄 알았는데, 벌써 그봄은 4월이라는 봄의 대명사를 동반하고 나의 코앞에 다가와서 서성거리고 있다. 세상이 아무리 어수선하고 분주해도 봄은 한 해도 빼놓지 않고 이렇게 어김없이 찾아온다. 봄은 멘델스존의 음악처럼 다정하게 귓속말을 속삭이며 오기도 하고, 하이얀 백합처럼 청아한 미소를 띄고 오는가 하면, 노랑 개나리처럼 까르르 웃으며 오기도 한다. 의학적 관찰로 본다면 남자보다는 여성들이 봄에 더 민감하고 봄을 좋아한다고 하는데, 그래서 봄을 여성의 계절이라고 부르는가보다. 그러한 이유는 일조량이 많아져 감정표현과 연관이 있는 멜라토닌 호르몬분비가 많아 기분이 들뜨게 되며 습도와 온도가 동시에 올라가 말초혈관이 확장되고 피의 흐름이 활발해져 겨우내 움추러 들었던 음의 기운이 피어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봄은 여인의 계절이라고 하니 불현듯 머리속에 옛날 중국의 4대 미인이 떠오른다. 서시, 왕소군, 초선, 양귀비 로 대표되는 중국의 4대 미인은 ‘침어낙관 폐월수화’라는 파생어를 낳았다. 참고로 독자들의 편의를 위하여 한문은 써 올리지 않았다. 이 문장의 뜻을 풀이하면, 물고기가 헤엄치지 않은 채 가라앉고, 기러기가 날개 짓 없이 땅에 떨어지며, 달이 부끄러워 구름 뒤에 숨고, 꽃도 수줍어 고개 숙일 정도의 미모였다는 것. 그중에 궁녀출신인의 왕소군은 흉노~한 화친을 위한 정략 결혼의 희생물로 흉노왕의 아내로 끌려갔다. 떠나던 당시 중원은 봄이었으나 잡혀간 북쪽은 찬바람이 부는 추운 겨울였던 것, 그래서 이로부터 춘래불사춘(봄은 왔으나 봄 같지 않다)이라는 말이 나왔다.
지금 우리의 심정도 이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봄이 되어 기온은 온도가 올라가 따듯해졌는데, 몸으로 느끼는 체감경기는 여전히 겨울 한가운데를 맴돌고 있다. 지금 이러한 얘기는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의 이야기이다. 문재인정부가 들어와서 평양은 봄이라는데, 서울 하늘은 미세먼지를 동반한 찬바람이 쌩쌩 몰아치고 경제전망은 먹구름이 잔뜩 끼어서 금방 폭풍우속의 소낙비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다고 한다. 한국은 위에 말한 대로 봄은 왔건만, 아직은 서민경제가 찬바람 속에 구멍이 뚫린 주머니가 바람에 나부끼듯이, 돈이 그 속에 머물지를 못하며 겨울 추위속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고 한다.
언제쯤 한반도 내나라 대한민국에, 호황속의 각종 봄꽃들이 아름답게 활짝 피어나서, 가정이나 직장 그리고 내 주머니속에도 돈이 내 풍기는 풍요와 넘침의 향기가 가득히 풍겨 나올까? 하고 꿈의 환상을 펼쳐본다. 등 따시고 배부른 태평성대의 따듯한 봄은 언제나 오려는지?……………. 옛날이 그립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