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기행문> 동유럽 4개국 및 발칸 2개국 12일(플리트비체 & 포스토이나)간의 여행 기행문(5)
유럽 여행 중 독일 이야기
(지난주에 이어서…..)
박정희 대통령께서 연설이 끝나고 강당 밖으로 나오자 미쳐 그곳 강당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여러 사람의 광부와 간호사들이 떠나는 박대통령과 육영수여사의 주위로 몰려들어 두분을 붙잡고 “우릴 두고 어딜 가세요. 고향에 가고 싶어요.” 하며 떠나는 박대통령과 육여사를 놓아줄 줄을 몰랐다. 박대통령 내외분도 그들의 손을 놓지 못한채 함께 울고 서있는데, 보다 못한 경호원들이 이들 사이로 들어와 조심스레 박대통령 내외를 전용차로 안내했다. 호텔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도 박대통령과 육여사는 계속 눈물을 흘렸다. 옆에 앉아있던 서독의 뤼브케 대통령은 손수건을 직접 건네주며 “우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서독 국민들이 도와 드리겠습니다” 라고 힘주어 말했다.
서독 국회에서 연설하는 자리에서 박대통령은 “돈 좀 빌려 주십시오. 한국에 돈 좀 빌려주세요. 여러분들의 나라처럼 한국은 공산주의와 싸우고 있습니다. 한국이 공산주의와 대결하여 이기려면 반드시 경제를 부흥시키고 일으켜야 합니다. 그 돈은 꼭 갚겠습니다. 저는 거짓말을 할 줄 모릅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을 이길 수 있도록 돈을 꼭 좀 빌려주십시요” 를 반복해서 말했다. 애절한 호소와 사정에 서독의 국회의원들은 감동했고, 숙연한 분위기속에 연설을 마무리한 박정희 대통령의 눈가에는 어느 듯 눈물이 가득히 고여 있었다.
당시 한국은 자원도 없고 돈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 사는 가난한 나라였다. 유엔에 등록된 나라 수는 120여개국, 그 당시 필리핀의 국민소득이 170달러, 태국은 220달러 등….. 이때 한국은 고작 76달러였다. 우리나라 밑에는 달랑 인도라는 나라 하나밖에 없었다. 세계 120여개 나라 중에 인도 다음으로 못사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 한국이었다. 1964년 한국은 국민소득 100달러, 이 1백달러를 위해 단군 할아버지로부터 무려 4600여년이라는 길고 긴 세월이 걸렸다. 서독의 에르하르트 수상은 박정희 대통령이 이역만리 타국에 와서 고생하는 간호사와 광부들을 붙들고 함께 우는 모습을 뉴스에서 보고는 감동한 나머지 이렇게 외쳤다. “보라, 저런 민족과 지도자가 있는 나라라면 설령 차관을 줬다가 떼이는 한이 있어도 절대로 후회하지 않겠다” 라고 말하며 차관을 범정부 차원에서 승인해주었다고 한다. 그 당시의 차관으로 우리나라는 고속도로도 건설하고 경제부흥의 쌈짓돈으로 우리나라가 눈부신 경제건설의 발판을 마련할 수가 있었다. 특히나 주목해야할 사항은 경부고속도로 건설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서독의 이곳저곳(광부들과 간호원들이 근무하는 곳)을 방문하면서 사방으로 거미줄처럼 잘 놓여진 고속도로를 보면서 우리나라에도 고속도로를 건설해야할 필요성을 절실히 깨닫고 느끼게 되었다. 경제가 발달하려면 물동량이 원활하게 유통되고 접속될 고속도로는 절대적으로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시원하게 직선으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잘 뚫리고 발달된 아우토반(Autobahn)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박대통령은 마음속으로 우리나라에도 꼭 저와 같은 고속도로를 건설해야겠다는 다짐을 새겼다. 그럼 여기서 독일의 아우토반 고속도로의 이야기를 잠시 들려드리도록 하겠다.
Autobahn이란?. 독일 및 인근 독일어권 국가들의 고속도로 시스템을 말한다. 원조격인 독일에서는 공식명칭이 연방 아우토반(Bandesaautobahn), 고속주행을 위해서 별도로 시공한 길은 슈넬트라베(Schnellstrabe)라고 부른다. 두 등급으로 나뉘며, 아우토반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자동차 전용으로는 거의 다 들어가고, 아우토반이라는 명칭 자체가 그냥 ‘자동차 길’이라는 뜻이다. 아우토반은 전 구간이 왕복 4차로~6차로로 구성되어있다. 참고로 왕복 8차로 이상인 구간은 없다. 왕복 8차로 이상인 구간이 없는 이유는, 독일은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환경문제에 매우 민감하여 도로확장을 하느니보다 차라리 고속도로 주변에 공원과 녹지를 만들어 환경을 보호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을 포함한 나머지 유럽 국가들은 정말로 자동차가 필요한 사람들(화물차 기사, 버스기사, 택시기사)등을 제외하고는 어지간한 사람들에게는 대중교통(철도, 고속버스, 시외버스)를 이용할 것을 정부차원에서 권장하고 있다.
아우토반이 세계 최초의 고속도로라고 일반적으로 알고 있지만, 그러나 사실은 세계 최초의 고속도로는 아우토스트라다로 1923년 이탈리아에서 국책사업으로 건설되었다. 사실 아우토반을 세계 최초로 여기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것으로, 그만큼 아우토반이 현대 자동차문화에 적합한 고속도로로서 최초라는 의미이다.
아우토반의 최초 계획은 1920년대 바이마르 공화국때부터 존재했지만, 바이마르 공화국이 워낙에 가난했던 관계로 실제 시공에 들어간 것은 몇 군데밖에 없었다. 현재의 아우토반 59번중 퀼른과 본, 그리고 뒤셀도르프를 잇는 구간이 그중 하나이다. 그 뒤로 전국을 연결하는 ‘자동차 전용도로 네트워크’ 구상을 실천에 옮긴 사람은 아돌프 히틀러이다. 공공사업을 통해 실업률을 잡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으로, 마치 미국의 뉴 딜 정책과 비슷한 논리로 공사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실상 아우토반건설은 나치 독일의 경제부흥에 큰 역할을 하지는 못했는데, 정책적으로 아우토반건설보다 군비확장이 우선시되어 인력과 자원이 집중되지 못했고, 이로 인해 나치정권 내내 아우토반건설은 완료되지 못했다. 당시 독일의 민간 자동차 소유가 크게 활성화되지 못했고, 독일의 운송수단으로서 철도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나치정권당시 아우토반은 거의 빈 도로였다. 또한 그 시절에 지은 구간들은 나치 센스가 그대로 묻어나 있어 유사시 활주로로 사용될 수 있도록 도로포장이 두껍다. 그리고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때 어떻게든 써먹었다. 당시 나치군의 장교들은 히틀러에게 아우토반을 건설한다 하더라도 전시에 제대로 못 써먹을 것이라고 반대했지만, 히틀러는 막무가내로 건설했고 나치군의 장교들 말마따나 전시에는 제대로 써먹은 적이 없었다. 당시의 나치 독일은 생각 외로 보급에 군마를 많이 사용했다. 결국 아우토반은 히틀러의 옹고집이 만들어낸 결과물인 셈이다. 오토 카리우스는 ‘진흙속의 호랑이’에서 이렇게 비판했다. “우린 승리할 때 러시아의 진흙투성이의 도로를 따라 진격했다. 그리고 러시아인들은 진격할 때 우리가 힘들여 건설한 롤반과 아우토반을 이용할수 있었다”
아우토반 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간간히 검정 원판 안에 비스듬히 검은 줄로 4개의 줄이 쳐져있는 안내판을 볼 수 있다. 이 싸인 간판이 바로 무제한 속도 구역표시이다. 이표시가 있는 구간은 권장속도는 최대 130Km/h 이지만 법적으로 최대 속도제한이 없다. 대충 번역해 설명을 드린다면 ‘차량을 컨트롤 할 수 있을 정도라면 얼마든지 빠르게 달려도 된다’는 뜻이다. 차들의 평균속도도 대단히 빨라서 시외 구간에서 시속 150Km=100마일 이상은 기본이고, 5번 노선의 프랑크프르트와 바젤 구간은 선형이 거의 일직선이라 시속 200Km=150마일 이상으로 주행하는 차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아우토반에는 엄연히 권장속도 또는 제한속도가 있다. 속도제한이 없는 구간은 전 구간의 50%정도이고 그외의 지역인경우 슈넬슈트라세는 시속120Km=80마일이고, 나머지 아우토반은 100Km=65마일의 제한속도가 있다. 신기한 것은 속도 무제한구역이 존재하고 제한 속도도 높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고속도로 사고율은 오히려 세계적으로 매우 낮은 편이다. 이런 경우, 경찰의 강력한 단속체계도 효과가 있겠지만 독일인들이 알아서 교통규칙을 잘 지키는 경향이 강한 것도 있다. 특이한 상황은, 아우토반에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과는 달리 무조건 좌측으로만 추월을 한다. 한국이나 미국처럼 좌우로 왔다갔다 미치광이처럼 칼질 운전을 하면서 추월하는 차는 아우토반에서는 구경할 수가 없다. 이들은 추월규칙을 철저하게 지켜 무조건 좌측으로만 추월을 한다. 예를 들자면 편도 3차로인 도로에서 내가 2차로를 달리고 있는데 정면에 느린 차가 있고 양쪽의 차로가 다 비어있다고 하자, 그럴 때 항상 왼쪽 차로인 1차로로만 추월을 한다. 그럼 1차로에서 천천히 늦게 가는 차는? 애초에 1차로는 추월할 때만 사용하므로 1차로 주행자체가 아예 없고, 1차로로 달리는데 뒤에서 빠른 차가 다가오면 볼 것도 없이 하위 차로인 2차나 3차로로 무조건 피해준다. 또한 도로에 차량이 없으면 무조건 가장 하위 차로로 주행하면서 하위 차로부터 채워나간다.
다음주에 이어서 계속됨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