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무더운 여름에 휴식을 주는 재미있는 이야기

<김명열칼럼>무더운 여름에 휴식을 주는 재미있는 이야기

한국은 지금 매일같이 게속되는 찜통더위에 열대야도 겹치고, 어느곳에서는 폭염경보까지 발효되어 그 무더위속에 농촌에서 일하던 농부들이 여러명 더위를 이기지못하고 희생되어 숨지는 사례까지 발생되었다. 무더위속 삼복더위는 매년 반복되는 연례행사의 기상, 기후현상인데, 그때마다 그 무더위와 폭염을 겪게 되는 사람들은 지루하고 힘들며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삼복(三伏)은 음력 6월에서 7월 사이에 들어있는 속절(俗節)이다. 하지가 지난 후 셋째 경일(庚日)을 초복, 넷째경일을 중복, 입추 후 첫 경일을 말복이라하여 이를 삼경일(三庚日), 혹은 삼복이라고 한다. 복날은 10일간격으로 오기 때문에 초복과 말복까지는 20일이 걸린다. 그러나 해에 따라서 중복과 말복사이가 20일간격이 되기도 하는데 이를 월복(越伏)이라고 한다.

삼복은 1년중 가장 더운 기간으로 금년에는 7월12일이 초복, 22일이 중복, 8월11일이 말복이다. 금년에는 해에 따라 건너뛰는 20일 간격의 중복과 말복사이가 되는 해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 궁중에서는 더위를 이겨내라는 뜻에서 높은 벼슬아치들에게 빙표(冰票=얼음을 얻어갈 수 있는 증표)를 주어 장빙고(藏氷庫)에서 얼음을 타 가게 하였다. 지금세상이야 집에 냉장고가 있어서 얼음을 사시사철 아무때나 얼려 만들어 먹을 수 있으나 그 옛날 조선시대에는 얼음이 꽁꽁어는 추운겨울에 한강에서 결빙된 얼음을 톱으로 잘라내 장빙고에 보관했다가 요즘처럼 한 여름의 삼복더위때에 고급 벼슬아치인 관료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하였다. 여기서 조선시대의 이야기가 나온 김에 그 시대의 유학자이자 대표적 선비의 표상인 퇴계 이황선생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도록 하겠다. 그에 관한 인적사항은 이미 독자들께서는 학교나 역사학을 통하여 너무나 잘 알고계시리란 생각이 들어서 생략하고, 이번에는 퇴계선생의 문하생 선별의 재미난 이야기와, 현대적인 사고와 판단으로 젊은 수절과부 며느리를 재가시킨 인간 휴먼드라마를 곁들여 소개하여 드리도록 하겠다.

이렇게 찌는 듯한 무더운 여름철이 되면 나는 어느해인가 책에서 읽은 퇴계선생의 독특한 문하생 선별모습이 머리에 떠올라 그것을 생각나는 대로 옮겨본다. 퇴계선생은 문하생을 받아 들일때 사람 됨됨이를 먼저 알아보고자 여러가지 시험방법을 섰다고 한다. 그중의 하나는 요즘 같은 한여름 삼복더위에 문하생을 자청한 학생들에게 의관을 정제하고 앉게 한 다음 이것저것 문답을 하였다. 이때 퇴계선생의 옷차림은 시원하고 가벼운 옷차림이었고, 제자 되기를 간청한 학생은 잔뜩 차려입고 그 무더위속에 땀을 뻘뻘흘리며 선생과 대화를 주고받아야 하는 것이었다. 이때 더위를 못 참아 기지를 발휘해 옷을 훌훌 벗어버리는 사람이 있고, 끝까지 더위를 꾹꾹 인내심으로 참아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면 퇴계선생은 중간에 옷을 벗어버리는 학생만을 제자로 맞아들이고 끝까지 참아내는 학생은 사람됨됨이가 모질고 융통성이 없으며 비인간적이라고 판단되어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인내심의 신념은 높이 샀지만 피도 눈물도 없는 강인한 성격을 가진자가 나중에 높은벼슬에 오르게 된다면 보나마나 자기만의 그릇된 신념으로 백성들을 고달프게 만들것이라는 점이 퇴계의 지론이었다. 그는 학문연구를 일생 최대의 과업으로 여겼지만 자신의 자제나 가족, 또는 문하생들에게는 자신의 뜻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 대표적인 예로 사실적인 인간적 애환이 깃들여진 조선시대의 구습(舊習)과 악습(惡習)을 탈피한 파격적인 퇴계의 현명한 가족(며느리)를 위한 배려의 이야기도 빼놓을수가 없다.

퇴계선생의 둘째아들이 21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한창 젊은 나이의 둘째며느리는 자식도 없는 청상의 과부가 되었다.

퇴계선생은 홀로된 며느리가 걱정이 되었다. 남편도 자식도 없는 의지할 사람조차 없는 젊은 며느리가 앞으로 수십년간을 어떻게 긴세월을 힘들게 혼자보낼까?. 그리고 혹여 신변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자기집이나 사돈집 모두에게 누(累)가 될 것이기에, 한 밤중이 되면 자다가도 일어나 집안을 순찰하곤 했다. 어느날 밤, 집안을 둘러보던 퇴계는 며느리의 방에서 소곤소곤 이야기를 하는 소리가 밖으로 들려나왔다. 순간 퇴계선생은 전신이 얼어붙는 것 같은 불안감과 충격에 휩싸였다. 이 야심한 밤에 홀로 사는 젊은과부 며느리의 방에서 소곤소곤하는 다정다감한 목소리가 들려나오니, 점잖은 선비의 체면에 결코 할 수없는 일이지만, 걱정과 궁금증이 증폭되어 며느리의 방을 엿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안을 들여다보니 젊은 며느리가 술상을 차려놓고 짚으로 만든 선비모양의 인형과 마주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인형은 바로 자기의아들인 남편의 모습이었다. 인형앞에 놓인 잔에 술을 가득채운 며느리는 이렇게 말했다.”여보, 한잔 잡수세요. 보고싶어요” 그리고 한참동안 인형을 향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주루륵 눈물을 쏟으며 흐느끼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남편의 인형을 만들어놓고 대화를 나누는 며느리……..한 밤중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흐느끼고 있는 며느리……이 광경을 바라본 퇴계선생은 생각을 했다. 윤리는 무엇이고, 도덕은 무엇이냐? 그러한 굴레에 뒤집어씌워져 죽을때까지 혼자서 수절하며 살아가야하는 젊은 며느리를 볼때 가슴이 미어지고 인간으로서는 할 도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저 아이를 윤리나 도덕의 규범과 관습으로 묶어서 평생을 홀로서 수절을 시킨다는 것은 너무나 잔인하고 가혹하다. 인간의 아픔과 고통을 몰라주는 이 짓이야말로 윤리도 아니고 도덕도 아니며 따라야할 규범도 아니다. 이러한 틀에 인간이 구속되어서는 안 된다. 저 아이를 자유롭게 풀어줘야 한다.

이튿날 퇴계선생은 사돈을 불러 결론만 간단히 말했다. “자네 딸을 데려가게”, “내딸이 무엇을 잘못했는가?” “잘못한 거 없네. 무조건 데려가게”. 친구이면서 사돈관계였던 두사람이기에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 할 까닭이 없었다. 그러나 딸을 데려가려면 두 사람의 친구사이 마저 절연하는 것이기 때문에 퇴계선생의 사돈도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안되네 양반가문에서 이게 무슨일인가?”, “나는 할말이 없네 자네딸이 내 며느리로서는 참으로 부족함이 없는 훌륭한 아이지만 어쩔 수 없네 데리고 가게”. 이렇게 퇴계선생은 사돈과 절연하고 며느리를 보냈다. 보내면서 퇴계선생은 가슴속으로 많이 울었다. 그후, 세월은 어느덧 흘러 몇년이 지났다. 퇴계선생은 한양에 볼일이 있어 올라가다가 조용하고 평화스러운 동네를 지나게 되었다. 마침 날이 해가지고 어둡기 시작했으므로 한 집을 택하여 하룻밤을 머물렀다. 그런데 저녁상을 받아보니 하나하나가 퇴계선생이 좋아하는 것들 뿐이었다. 더욱이 음식의 간까지 선생의 입맛에 딱 맞아서 아주 맛있게 먹었다.

‘이집 주인은 나와 입맛이 비슷한가보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상도 받아보니 마찬가지였다. 반찬의 종류는 어제저녁과 달랐지만 여전히 입맛에 딱 맞는 음식들만 상위에 정갈하게 차려져 올라와있다. 나의 식성을 잘 아는 사람이 없다면 어떻게 이토록 음식들이 내입에 딱 맞을까?. 혹시 몇년전에 내보낸 며느리가 이집에 살고 있는것이 아닐까?. 그렇게 궁금증속에 아침식사를 마치고 막 떠나려하는데 집주인이 버선 두켤레를 가지고와서 “한양 가시는길에 신으시라”며 주었다. 버선을 신어보니 퇴계선생의 발에 꼭 맞았다. 밤새워 자기를 위하여 며느리가 버선을 만든것이 분명했다. ‘아~ 며느리가 이집에 사는구나!’ 퇴계선생은 확신을 하게 되었다. 집안을 보나 주인의 마음씨를 보나 내 며느리가 고생은 하지않고 살겠구나 생각하며, 만나보고 싶은 마음도 컷지만 짐작만 하며 대문을 나서는데 저쪽 한켠에 인기척이 나 슬쩍 옆눈질하여 보니 한 여인이 구석에 숨어 치마로 눈깃을 슬치며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다. 퇴계선생의 가슴도 미어지는 듯이 아팠다. 오랫만에 자기의 가족이었던 정들었던 며느리를 먼발치서만 느끼고 떠나가는 그의 심정이 오죽했으랴, 짐작이 가고 남는다. 퇴계선생은 자기로 인하여 며느리에게 누가되고 불편함을 없게 해주기위해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못본척 돌려야만 했다.

퇴계선생은 이렇게 며느리를 개가시켰다. 이 일을 놓고 유가의 한편에서는 오늘날까지 퇴계선생을 비판하고 있다. ‘선비의 법도를 지키지 못한 사람이다. 윤리를 무시한 사람이다’.하지만 또 른 한편에서는 정 반대로 퇴게선생을 칭송하고 다. 퇴계선생이야말로 윤리와 도덕을 올바로 지킬 아는 선비중의 선비이시다. 윤리를 깨뜨리면서까지 윤리를 지키셨다며…………

오늘날 현대를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평가할까?.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겠으나, 나의 생각으로는 이렇게 훌륭한 분들이 우리나라의 선구자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오늘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으며 무더운 여름을 지루하지 고 재미있게 보내시기를 바라겠다.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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