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 칼럼> 먼동이 터오는 이 아침에………..

<김명열 칼럼> 먼동이 터오는 이 아침에………..

어두운 대지를 깨우며 여명의 새 아침이 열려지고 있다. 멀리서 아련히 들리는 계명(鷄鳴=닭 울음)소리는 일하러 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새벽을 여는 사람들, 힘에 겨운 세상살이속 일터로 가는 발걸음소리가 무겁기만 한데, 권력과 부를 거머쥔 위정자나 졸부들은 민초(民草)들과 가난한사람들의 고달픈 삶과 한숨소리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러한 세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가진 자와 없는 자를 구별하지 않고 오늘도 태양은 공평하게 세상을 밝혀주기 위하여 동녘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작은 행복을 찾으려는 새벽을 여는 사람들의 부산한 움직임으로 오늘도 그렇게 먼동이 터오는 새벽은 깨어나고 있다.

오롯이 밝아오는 이른 새벽, 여명의 아침에 긴 암흑의 침묵이 선잠을 깨고 고요한 새벽하늘에 바람이 되어 흐르고 있다. 아직은 어둠에 묻힌 어두운 잿빛하늘이지만, 부지런한 사람들은 하나 둘 자리를 털고 일어나 새날의 새로운 발길을 재촉하고 있다. 새날이 밝아오고 바뀔 때마다 새로운 각오와 새로운 계획, 새로운 목표를 세워보지만, 석양에 비춰진 저녁노을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집으로 되돌아올 때 손에 쥔 것은 언제나 공허한 빈주먹뿐이다. 그러나 어쩌랴……..

그것이 그래도 다시 또 걸어가야 할 나의 인생길이고 우리네의 인생길인 것을……… 그렇게 또 시작되는 오늘 하루의 시작, 희망의 아침은 또다시 밝아온다.

새벽은 새로운 날의 시작이다. 오늘의 시초인 것이다. 새벽의 맑은 공기, 새벽의 상쾌한 느낌, 새벽의 기분과 감정 느낌의 컨디션에 따라 그날 하루의 주어진 우리들의 삶이 좌우된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어제가 아닌 새로운 오늘에 감사하고, 어제보다 더 아름답고 창조적인 삶을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지혜롭고 행복한 사람이다. 새벽, 새벽 또는 심야(深夜)는 하루 중 깊은 밤이나 해가 떠오르기 직전부터 이른 아침까지를 말한다. 적도근방에서는 새벽이 몇 분 만에 끝나기도 한다. 반면에 북극권과 남극권의 극 지역에서는 몇 시간씩 계속될 수도 있으며 계절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극지방이 아닌 중간에 위치한 북반구와 남반구의 경우에도 동지 같은 겨울의 무렵에는 오전 8시가 되어도 새벽인 반면에 여름에는 오전5시도 채 안되어서 해가 떠오르므로 새벽이 짧다. 북반구에 위치한 캐나다일부와 미네소타주, 몬태나, 워싱턴주가 이에 해당된다.

먼동이 터오는 새벽, 비 내려 씻겨진 자연의 순색과 단순한 구도의 아름다움은 내가 볼 수 있는 가장 신성한 색조로 다가온다. 어두운 하늘은 검푸른 빛이지만 희뿌연한 하늘빛사이로 대지는 젖어있다. 풀벌레와 새소리마저 숨을 죽이고 있는 이른 새벽, 초작 초작 발소리를 내며 이슬 맞고 비에 젖은 풀밭, 잔디 위를 걸어본다. 구름은 여명의 빛에 반사되어 민낯을 점점 더 뚜렷이 보여주고, 사위는 고요하여 마음은 절로 순수해진다. 젊은 청소년시절, 사춘기적 감상 속에 속으로 넘쳐 오르는 젊음을 이기지 못하여 비를 맞으며, 빈산을 헤매고 다닌 적이 있다. 빗물에 젖어 헝클어진 머리칼을 주체 못한 채 흠씬 비를 맞고 짐승처럼 숲속을 헤매고 있는데 희뿌연 한 오늘 같은 새벽이 오고 있었다. 머릿속은 머리와 함께 헝클어지고 구름은 낮게 드리워져 비는 내리는데도 새벽은 오고 있었다.

비 내리며 터 오는 먼동을 바라보며 속으로 다짐하였다. 슬프거나 괴로울 때, 힘이 들때는 먼동이 트는 새벽 청징(凊澄=탁한 이물질이나 불순물을 제거한 맑고 깨끗한 상태)해져있는 저 색조를 회상하자고……….

이른 봄에 내리는 비는 봄을 맞아 얼어붙은 대지를 녹여내어 조심스레 움을 돋워내고, 더위를 식혀내는 한여름의 새벽비와, 지열에 지친 대지를 적셔주는 가을비는 가을비대로, 정을 두고 떠난 이를 그리게 하는 겨울비는 겨울비대로 좋지 않던가. 그러나 오랫동안 먼동이 트는 새벽, 비 오는 숲속을 걸어보지 못했다. 슬픔과 괴로움, 힘든 일이 있어도 청징한 그 색조를 회상하는 일이 없었다. 게으른 성품과 바쁜 일상, 산성에 찌들어 신성을 잃어버린 비 때문인가?………..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감성은 둔해지고 사회적인 불만과 왜소해진 자신에 대한 초라함으로 먼동이 터오는 새벽, 그 청징한 색조를 볼 수 있는 용기마저 사라져버렸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속썩임과 기죽임을 씻어내는 새벽비가 기다려진다. 먼동이 트는 새벽, 의식이 존재의 뿌리를 흔들고 혼돈이 우수처럼 배어있는 머리에 가끔씩이라도 시원하게 비가 내려 청징하던 그 색조를 불러들여 황폐해진 내 영혼을 적셔주고 싶다.

어둠을 물리치고 밝아오는 새아침에 이러한 다짐을 해본다. ‘나는 오늘 하루를 지혜롭게 살아보자’고…….지식은 학교나 책, 인생의 선배나 스승을 통하여 배울 수 있고 얻을 수 있으나 지혜만은 스스로 깨우치고, 인생의 체험이나 경험에서만 배우고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삶의 재산이다.

지혜로운 사람의 눈은 머릿속에 있고, 사랑하는 사람의 눈은 마음속에 있다. 보는 눈과 느끼는 눈, 그리고 세상을 사색하는 눈으로 우리는 깨달음을 얻자. 세상을 보는 혜안(慧眼=세상을 꿰뚫어 보는 안목과 식견)을 갖추고, 오늘도 저 밝아오는 태양빛처럼 아름답고 따듯한 마음으로 베풀고 포용하며 보람된 하루의 삶을 만들어야겠다. 이러한 다짐이 매일 매일 식어지지 않도록 마음의 기도를 다지며 오늘도 힘차게 출발의 발걸음을 내 디뎌보자.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 모든 분들의 축복되고 후회 없는 하루가 되시기를 축원 드린다.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1077 myongyu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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