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사랑, 사랑, 사랑을 누가 말했나.

<김명열칼럼> 사랑, 사랑, 사랑을 누가 말했나.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평생 빈민운동에 헌신한 아베 피에르(Abbe Pierre) 신부님은 “인간의 삶은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고 허락된 짧은 순간” 이라고 했는데, 인생에 대해 이보다 더 맞는 답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우리는 사랑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사랑할 줄 아는 존재로 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인 논리를 펴는 편파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 자체에서 사랑이 자연스럽게 저절로 나오지는 않는다. 사랑은 자기중심적 논리를 극복하는 것이다. 물론 에로스에 입각한 남녀간 사랑의 경우 일정기간 스스로 이 자기중심적 논리를 파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당사자 중에 한명이라도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소홀한 것같이 느끼게 되면 그 사랑이 아주 쉽게 깨져버리고 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여기에는 개인적인 차가 있기는 하지만……….

부모자식간의 사랑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그 사랑에도 계산이 완전히 배제되지는 않는다.

“내가 너를 어떻게 길렀는데”라는 말은 내가 손해를 보았다는 판단이다. 이 역시 사랑이 인간에게서 자연스럽게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그래서 주고도 잊어버리는 사랑이 진짜 사랑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인간은 준 것과 받은 것 중 준 것을 훨씬 더 잘 기억하는 편파성의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에는 능력과 노력이 요구된다.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상대방을 이해하는 능력과 노력, 그리고 상대방의 고유성을 수용해주고 인정해주는 능력과 노력, 즉 전체적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력과 인내력이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관계가 부부관계라고 한다. 기본적으로 남녀간의 사랑이기 때문에 주고받는 대차대조표를 많이 신경을 쓰게 되고 성별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는데도 상당한 노력이 든다. 또 부모자식처럼 본능적으로 연결돼있는 존재가 아니라서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는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인간은 누구나 손해에 민감하다. 그런데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마음으로는 사랑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상대방이 나 때문에 손해 본 부분은 의식하지 못하면서도 내가 상대방 때문에 손해를 본 부분은 너무나 잘 의식하고 기억하는 인간의 의식구조상 사랑을 지속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1등 신랑감, 1등신부감을 거론하는데 부모의 유산까지도 감안하는 시대에, 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사랑을 느끼지 못하겠다는 시대에, 자신이 손해 보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상대방을 참아주는 일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랑을 고려하면 이혼율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요즘 이혼율이 증가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이다. 최근 한국의 경우를 보면 결혼을 한 부부 중 10명당 3,8명(100%의 결혼비율 중 38%가 이혼비율)이 이혼을 한다고 하니 대단히 놀라운 일이다.

얼마전 나는, 한국에서 유학을 온 대학생들인데 나의 글을 즐겨 애독하는 사람들이라며 그들이 나를 만나고 싶다고 하여 어느 식당에서 7명의 학생들과 만나게 되었다.

식탁을 마주하고 이런저런 세상적인 이야기들을 허심탄회하게 나누는 중에 부모님들의 이혼이야기가 나왔다. 그중에 두명의 학생이 거리낌 없이 자기의 부모님이 이혼을 했다고 말을 했다. 구세대에 살았던 나로서는 그들이 별 부담 없이 털어놓는 부모의 이혼 이야기가 조금은 당황스럽고 부담스러웠지만, 오히려 당사자인 두 학생들은 그것이 당연한 처사로 여기고 별 거리낌 없이 부모님이 이혼했다고 말을 했다. 그리고 자기의 부모님이 왜 이혼을 해야 했던가를 이해한다고 했다. 20~30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정서상 이혼은 극히 부정적이며 하지 말아야 할 규범으로 생각들을 했었는데, 지금 세상에서는 그렇게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을 시대에 뒤떨어진 꽉 막힌 사람으로 오히려 그런 사람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그곳에 앉아있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인용하면 지금 대학생들을 보면 4명중 한명은 부모님이 이혼을 하신 상태에 있다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혼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며 부모님을 탓할 일은 아니라고….” 자신이 잘하고 상대방이 못한 것만 기억하고 상대방이 잘한 것과 내가 잘못한 것은 의식하기 어려운 인간의 인식구조상 이혼은 어찌 보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또 한편으로 본다면 오히려 결혼이 참으로 부자연스럽기까지 하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상대방의 생활습관과 가정환경, 그리고 상대방부모님의 비합리성, 또한 무엇보다도 상대방의 존재 자체의 어두움 등, 그 모든 것들을 이해하고 인내하며 결혼을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말했다.”이혼한 부모님을 원망하지 말고, 결혼을 유지하고 계신 부모님을 존경하라”고…..

인간이 정말 사랑받기위해서 태어났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인간을 가장 편안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 사랑임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사랑받기위해 태어났다는 노래는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그런데 사실은 사랑을 받는 가장 빠른 방법은 사랑을 주는 것이다. 당신은 당신주변의 사람들 중에서 누구를 가장 사랑하는가? 아마도 당신을 가장 사랑해주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성경 고전13장 13절에 써 있다. 사랑은 크게 알고 있는 사랑과 알게 되는 사랑으로 나뉜다. 전자는 가족애, 동료애, 박애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후자는 남녀간의 사랑으로 대표되며 급격히 찾아오는 편이다. 물론 오랜 기간에 걸쳐서 서서히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사랑의 경우 이성 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대다수이나 동성간에 사랑을 드러내는 사랑도 있고, 이성이든 동성이든 상관없이 하는 경우도 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은 앞서도 말했듯이 부모님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사상은 유교와 결합되어 이에 보답하는 효(孝) 사상으로 발전되었다. 부모님의 사랑은 알면서도 당연시하기 때문에 대개 평소에는 무시하다가 부모님이 떠나신 뒤에 땅을 치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평소에 잘 모셔야한다. 하지만 요즘에는 부모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한 부정적 견해 또한 존재한다. 잘못된 방향의 과한 자식사랑은 자식을 망치는 지름길이며, 이를 통해 무개념한 사람들이 양산되는 경우도 많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 한국교육계의 문제나 외자녀 정책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중국의 무개념 젊은이 문제, 부모에게 있어서도 자신을 버리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어야한다는 강박감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서 부모님의 사랑이 가장 큰 이유는, 이성간의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이 찾아올 수 있지만 부모님의 사랑은 “우리가 아니면 안되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다.

사랑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학이든 가요든 여러 문화 매체에서 널리 쓰이는 소재다. 부모와 자식간의 천륜적인 사랑과 이성간의 사랑을 제하고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크고 숭고한사랑은 자신의 이해관계나 감정을 초월해서 아낌없이 베풀 수 있는 사랑이다. 이러한 사랑은 시대와 장소와 국가를 불문하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경외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심지어는 종교로 승화되기도 하였다. 여기에 예수님은 특별한 경우이고, 슈바이처, 테레사 수녀, 손양원, 등의 많은 위인들이 있다. 이것은 휴머니즘과도 통한다고 할 수 있다.

어쨌거나 사랑은 수도 없이 많이 있고, 다양한 매체에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표현되지만, 그것을 잘 묘사하여 표현해내기란 정말로 어려운 주제중의 하나다. 일단 사랑이란 것을 하게 되면 아무리 현실적이고 상식적인 사람이라도 최고를 바라게 되기 마련이고, 긍정적으로 묘사하면 진부하고 닭살이 돋아나기 쉽고, 부정적으로 묘사하면 한도 끝도 없이 지저분해지는 것이 바로 이 사랑이라는 것이다.

사랑에 빠지면 좋기도 하고 골치도 아픈 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병을 낫게 하기도 하고, 병이 들게 만들기도 한다. 알다가도 모르는 것이 바로 이사랑인가보다.

이메일 주소 myongyu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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