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칼럼> 멍청한 짓 말고 용감하게 | |
글 제목을 조금 자극적으로 적은 이유가 있습니다. 저의 창피한 경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랜만에 멍청한 짓을 했더니 여간 마음이 불편하고 창피해서 글을 써서 씻어내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으시라고 조금 자극적이지만 솔직한 글을 시작해 봅니다. 며칠 전 마틴 루터킹 주니어 공휴일에 가족들과 낚시를 다녀왔습니다. 기분 좋게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사달이 났습니다. 일 차선에서 차선을 변경하려고 했는데 오른쪽 사각 지역에 있는 차를 보지 못했습니다. “빠~앙!” 놀란 옆 차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순식간에 옆으로 달려오는 운전자에게 손을 들어 미안한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그런데도 성에 차지 않았나 봅니다. 앞으로 끼어들더니 창문을 내리더군요. 불쑥 창문 사이로 손가락이 나왔습니다. 그냥 손가락이 아니라 미국식 손가락 욕입니다. 순간 미안했던 마음이 싹 가셨습니다. 옆에 타고 있던 아들 보기도 민망하고, 뒤에 있던 가족들 앞에서 아빠 체면을 구겨버렸단 생각에 순간 앞이 안 보였습니다. 민망함, 창피함, 어색함이 부딪히니 곧바로 가슴에 불이 납니다. 심장에 아드레날린이 뛰고 눈이 치켜떠지고 운전대를 두 손으로 움켜잡은 채 이미 발은 가속페달을 깊이 밟았습니다. 가만 안 놔둬야겠다는 욕망을 쫓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아내의 음성이 저를 깨웠습니다. “왜 그래요 Stop!, 아이고 목사님 아직도 안 죽었네 안 죽었어!” 이 상황에 뜬금없이 안 죽었다는 말을 들으니 순간 웃기기도 하고 정신이 번쩍 차려집니다. 분노로 가려진 눈이 열리니 황당함과 겁먹은 표정으로 나를 보는 아이들이 그제야 보입니다. 30초 정도 짧은 시간에 지옥을 다녀왔습니다. 혈압이 화산 폭발하듯 했다가 내려왔습니다. 마음에 분노의 불이 마치 마른 짚단에 화약을 올려놓은 듯 불살라집니다. 정말 아직도 제가 죽지 않았습니다. 옆에 교인이 함께 타고 있지 않았기에 천만다행입니다. 정말이지 멍청한 짓을 했습니다. 그냥 웃어버리면 될 것을 그게 뭐라고 말입니다. 변명할 여지없는 멍청한 짓입니다. 이래서 제가 차 뒤에 아직 물고기 마크를 못 달고 다닙니다. 자신이 없습니다. 집에 와서 가만히 찬찬히 생각해봤습니다. 과연 멍청한 짓을 왜 하는지. 용감한 일과 멍청한 일을 어떻게 분별할지 말입니다. 1. 멍청한 일을 용감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2. 욕구가 아닌 욕망을 따라가지 말아야 합니다. 3. 자신에게 끌려가지 말아야 합니다. 이 사건 이후 아침마다 학교 가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게 되었습니다. “Don’t do stupid thing, but brave thing today”(얘들아 오늘 하루도 멍청한 짓 말고 용감한 일을 해라) 아빠의 말씀에 킥킥거리는 애들 소리가 여전히 제 마음을 찌릅니다. 얘들아 그때 아빠가 정말 멍청한 짓을 했구나. 미안… 김호진 목사(올랜도연합감리교회) <105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