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칼럼>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목회자칼럼>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수적천석(水滴穿石) 물방울이 바위를 뚫습니다. 바위는 가장 강력한 것을 말합니다. 반대로 물방울은 가장 약한 것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가장 약한 것이 가장 강한 것을 이긴다니 말이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힘의 강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응집력입니다. 지속함입니다. 물은 응집 될수록 그 힘이 기하급수로 커집니다. 물은 막히면 돌아가는 지속성을 가집니다. 자기를 가로막던 모든 것을 품어서 업고 갑니다. 결국에 거대한 강물 되어 바위를 부수고 대지를 가로 지릅니다. 부수고 가르지만 결국 대지에 생명을 불어 넣고 더욱 풍성하게 만듭니다.

흙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티끌과 같습니다. 보이지도 않고 이리저리 흩날립니다. 그런데 티끌이 서로 응집하여 한 줌의 흙이 됩니다. 그 흙이 또 응집하여 땅을 이룹니다. 그 위로 쌓이게 되어 산을 이룹니다. 결국, 티끌 모여 태산이 됩니다. 그냥 보기엔 작고 보잘것없는 것이었으나 응집하고 지속하여 결집할 때 거대한 파급력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가 떠나온 조국 대한민국에는 놀라운 기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촛불의 기적입니다. 작은 것의 거대한 기적입니다. 약한 것의 강력한 기적입니다. 연일 수백만의 촛불이 거대한 함성이 되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4.19의 주역 세대들부터 시작하여, 어린아이, 중고등학생, 수능시험을 끝낸 수험생과 청장년까지 수많은 사람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작은 촛불의 태산 같은 기적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그토록 많은 사람이 시위에 참여하지만 폭력사태가 없습니다. 이전에 꼭 등장했던 화염병이나 쇠파이프가 사라졌습니다. 차 벽을 세워 행진을 막는 경찰버스를 부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을 막는 차 벽에 꽃 스티커를 붙여줍니다. 꽃 벽으로 변한 차 벽을 기념으로 남기고 싶은 시민들의 사진을 경찰들이 찍어줍니다. 이에 답례하듯 시민들은 전경들 또한 우리의 아들이고 대한민국이기에 팔 벌려 안아주고 보듬어줍니다. 마치 돌아가는 강물의 품에 대지와 강이 하나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간절히 염원하고 바라는 대한민국의 진짜 주인들입니다. 과연 이렇게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종북좌파 빨갱이들일 수 없습니다. 대통령과 그의 일당들은 삼류인데 국민은 일류입니다. 삼류 대통령과 일파들은 대한민국의 국격을 바닥으로 훼손했지만, 일류 국민은 떨어진 국격을 품격 있게 승화시켰습니다.

“결국,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지게 되어있다.” 한 정치인의 말입니다. 이토록 국민을 우습게 여겼기에 오늘의 사달이 난 것입니다. 그의 말처럼 손에 든 촛불은 바람에 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 가슴속에 타오르는 정의의 불꽃은 오히려 바람이 불수록 더 큰 들풀처럼 번져가고 있습니다. 혹 그 정치인이 이것을 알기에 두려웠을 수도 있습니다. 두려운 만큼 부정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엄정한 현실은 불의한 정권이 오히려 꺼져가는 촛불입니다. 폭풍 같은 국민의 바람 앞에 풍전등화(風前燈火)입니다.

12월에 접어들면서 기독교에서는 대강절을 지킵니다. 이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4주간의 절기를 말합니다. 2천 년 전 하나님은 작은 촛불 하나를 암흑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아기 예수는 약합니다. 여기와 비교하면 당대 로마는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제국이었습니다. 유대의 왕 노릇 했던 헤롯은 대적 불가로 교활하고 악독했습니다. 아기 예수는 바람 앞에 촛불 같습니다. 이 촛불에 두려움을 느낀 헤롯은 태어난 모든 사내아이를 학살하는 피바람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피바람은 빛 되신 예수님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예수의 빛은 유대와 로마를 집어삼키는 거대한 불덩이가 되었고 오늘날까지 전 세계에서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습니다.

이 대강절에 저는 대한민국에 새로운 빛의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로, 예수그리스도의 빛으로 그 땅을 고통 받게 하는 불의와 거짓의 세력이 물러나는 것입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습니다. 대통령조차 비리와 부패의 주범이란 사실이 자녀들에게 말하기 창피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바꿔보면 대통령조차도 비리와 부패의 죄를 저지르면 정의의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목격할 기회입니다. 기독교인의 믿음이 하나님의 정의에 얼마나 담대하게 행동하는 믿음인지를 보여줄 기회입니다. 복음의 빛으로 대한민국의 고질병인 정경유착의 비리와 부패의 뿌리가 뽑혀 나가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이전보다 훨씬 정직한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의 양심에 빛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돈과 성공을 위한다면 걸레처럼 버렸던 우리의 양심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아무런 양심의 차이가 없었던 많은 교회의 현실에 예수그리스도의 빛이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 자신 안에 그 빛이 다시금 밝혀지길 원합니다. 하나님 아들로서의 양심, 성도로서의 양심, 목회자로서의 양심, 아버지로서의 양심, 그리고 남편으로서의 양심이 다시 빛을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대통령을 하야시키고 탄핵하고픈 그 결의와 열정이 종국에는 나 자신에게로 향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박근혜 대통령이 내려가도 또 다른 박근혜 게이트가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그리스도의 빛으로 우리 안에 새로운 꿈이 싹트는 것입니다. 헬조선이니 삼포 세대니 꿈이 사라진 시대를 살아가는 것은 말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한들 말 타고 들어가는 최순실 딸을 따라잡을 수 없는 절망적 고통이 사라져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눈물과 아픔 위에 나의 행복을 세우려는 꿈을 쫓는 인생은 자신과 모든 사람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이제 예수그리스도의 빛으로 우리 마음에 새로운 꿈이 싹트기를 기대합니다. 그래서 꿈을 꾸는 것이 고통이요 부질없는 짓 되지 않는 나라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여러분과 저를 어두운 세상에 또 다른 촛불로 세우십니다. 이 땅에 단단한 바위처럼 자리 잡은 불의 위에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심판의 연자맷돌은 너무 천천히 돈다. 때론 돌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정확하게 돌면서 부드럽게 갈아 놓으신다’ 라고 했던 찰스 비어드(Charles A Beard)의 말처럼 확실히 하나님은 오늘 대한민국에 역사를 이루시고 계십니다. 2천 년 전 아기 예수를 보내셨던 것과 같이 말입니다.

김호진 목사(올랜도연합감리교회)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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