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가을의 끝자락에서

<김명열칼럼> 가을의 끝자락에서
11월 달도 이제 거의 다 끝나서 며칠 안 남았다. 가을이 이제 작별인사를 마치고 떠나갈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해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물레방아 돌듯 때가되면 돌아오고, 또 때가되면 떠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건만, 가을이 되면 우리는 감성적, 성찰적, 존재를 회복한다. 아마 자연의 섭리를 인생살이에 비유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열적이고 생산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계절을 지나, 찬바람 옷깃 속에 스며들기 시작하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에 삶의 끝자락이 언뜻 언뜻 보인다.
황량해지는 들녘과 나목, 갈색으로 바뀌는 산천, 11월의 숙연함은 자연이 우리들에게 주는 소중한 선물이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심연을 맞닥뜨리게 하기 때문이다. 하이데거는 이 세상에서 피투(被投)된 존재, 인간에게 죽음은 마지막 가능성의 실현이라고 말했다.
힌두교에서는 죽음을 “옷을 갈아입는 것”으로 이해하고, 그리스도교에서는 “새로운 삶으로 옮겨가는 것”으로 고백한다. 임종을 앞둔 성녀 소화 테레사는 “죽음이 나를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데려가시는 것”이라고 말했듯이 그리스도교에서는 이렇게 죽음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삶의 출발로 영생을 의미하기도 한다. 가을이 끝나가고 겨울이 찾아오는 계절, 위령성월의 11월, 이 사색의 계절에 우리는 내면으로 힘을 모아 곰삭도록 초대하는 은총의 계절에 우리도 자신과 주변을 겸허하게 되돌아보면서 부질없이 우리를 감싸고 있는 많은 것들을 뒤로하고, 본질을 향하는 삶의 여정에 더 깊은 노력과 정성을 기울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끝나가는 만추(滿秋)의 계절, 가을이 서서히 우리들의 곁을 떠나가고 있다. 우리가 품고 있는 이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남자도, 여자도, 노인도, 청년도, 심지어는 어린아이조차도 가을이오면 제 나이의 색깔대로 사색에 잠긴다. 시인과 소설가는 시와 운율로 사색을 하고, 음악가와 가수는 음률과 노래로 사색을 한다. 그리고 미술가는 그림과 색채로 사색을 하며 나 같은 사람은 이렇게 계절을 음미하며 글로써 사색을 표현한다. 그래서 가을은 모두가 철학자가 되고 시인이 되며 문학가가 된다고도 한다. 가을의 사색은 또한 각자의 기도가 되고 소망이 되며 우수가 곁들인 낭만과 꿈이 되기도 한다. 그것들은 지나간 계절, 봄과 여름을 반추하는 회고의 기도가 되고, 다가오는 겨울을 위한 준비와 소망의 기도가 된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마지막 매달려 휘날리는 낙엽을 바라보며 나에게 남은 한가지 기도, 그것은 당신을 위한 기도이다. 촛불은 꺼지기 직전에 가장 활활 불타오르고, 가을은 추위가 오기 직전에 가장 아름답게 불타오르며, 사람은 죽기직전에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했는데……..그리고 살면서 가장 아름답고 즐거웠던 추억에 간직된 앨범들을 회상하며 행복해하고……..가장 쇠락하고 추했던 자신의 내면을 후회하며 떠나간다.
11월이 다 끝나는 계절이 되고 겨울이 가까이 다가와서 그런지 바람이 차다. 바람살로 감지하는 마지막 떠나가는 가을, 목덜미 속으로 스며드는 찬바람에 옷깃을 여민다. 포도(鋪道)위를 뒹구는 낙엽들이 그물에 갇힌 물고기들처럼 파닥거린다. 가을은 자신을 비우는 것이 진정 채워진다는 것을 알게 하는 자연의 메신저일지도 모른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물감을 칠한 듯 유난히도 하늘색깔이 파랗다. 그렇다. 어느 날은 이렇게 하늘이 유난히도 파랗게 보이고 높아만 보일 때가 있다. 그렇지만 또 어느 날은 하늘이 잔뜩 울상이 되어 비바람을 뿌리고 심술을 부려 도 그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것들, 자연의 이치와 조화는 우리들 모두에게 평등한 것인데, 사람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있을 것이 아닌가?
내 마음의 하늘은 내 스스로가 만드는 것, 많이 웃으면 파란하늘로 보일 것이고, 아파하고 우울하여 얼굴을 찡그리면 흐린 하늘로 보이는 것이리라. 서리 맞아 말라서 축 늘어진 철지난 길가의 코스모스가 애처롭다. ‘소녀의 순정’이란 꽃말에서 풍기는 이미지 때문일까. 가을과 코스모스, 그리고 억새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억새꽃이 카리스마가 있는 남정네의 꽃이라면, 코스모스는 가녀린 아낙네의 꽃이라고 하고 싶다. 이 둘은 궁합이 잘 맞는 것 같다. 파아란 하늘아래 은빛의 억새가 손짓하는 가을 길을 걷노라면, 가녀린 코스모스 아가씨가 쌩긋이 미소 지으며 반긴다. 올해의 가을하늘은 유난히도 파랗다. 폭풍이 지나간 뒤의 바다와 같이 잔잔한 가을하늘엔 솜털보다 더 보드라운 뭉게구름이 피어있다. 유유히 떠있는 구름같이 우리의인생도 그렇게 흘러가는가보다. 천둥과 비바람이 몰아칠 때면, 한치 앞의 미래를 알 수 없지만 화사한 햇살이 온 누리에 살포시 내려앉을 때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려는 것이리라. 행복은 꿈꾸는 자의 몫이라고 그 누군가가 말했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이 계절에 행복을 꿈꾸는 시인이 되고 싶다. 찬란하게 떠오르는 일출도 장관이지만, 붉으래 지는 석양도 참으로 아름답다.
희망은 기억하는 사람의 몫이며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내 집 앞, 먼 바다 수면위로 비취는 황금 노을빛의 저녁바다가 너무나 아름답고 평온하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내 고향 뒷산의 은빛억새의 물결이 파도를 잠재운다. 가을의 중간 10월이 되면 불붙은 가을단풍들은 패션쇼 준비에 바쁘고, 풍성한 황금들녘엔 넉넉한 가을바람이 물결친다. 가을은 남성의 계절, 아마 나도 계절병이 생긴 탓일까? 마음이 스잔하고 잠이 오지 않아 창문을 여니 그믐달과 마주쳤다. 달이 수줍어서 구름 속으로 숨어버린다.
해마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이 계절이 오면, 그토록 고운 빛을 발하며 드높기만 하던 파란하늘도 싸늘한 바람결에 멀어져만 간다. 해 수면위로 깔려오는 물새소리 들으며, 그렇게도 마지막 연결고리에 매달려 안간힘을 쓰더니, 끊어져 처량함으로 나뒹굴며 흩어지는 낙엽 같은 우리네 인생이여………잿빛 하늘에 마음은 움츠러들고, 허전한 심연(深淵)속에 아쉬움이 솟구친다. 그토록 놓기가 아까웠던 지난세월의 풍성했던 가을도 흐르는 시간의 수레바퀴 속에 실려 어디론가 떠나가며 희미해져만 간다. 찬 서리 맞으며 피어나는 국화향기도 코끝에서 입맞춤하며 낙엽 따라 슬픈 가을이 저만치서 손을 흔들며 사라져가고 있다.
문필가(탬파거주) /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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