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칼럼> 그냥 착해선 안된다.

<김호진목사 / 올랜도 연합감리교회 담임>
여러분은 착한 사람이신가요? 단언컨대 이제부터는 착한 사람 되기를 거부하시기 바랍니다. 착해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실패할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이익은커녕 손해 보기가 훨씬 쉽습니다. 특별히 내 안에서 자발적으로 나오는 ‘착함’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강요된 ‘착함’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족쇄가 될 때 많습니다. 그렇기에 착해져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정말로 착해질 수 있습니다.

사내 녀석을 키우는 아빠의 처지에서 볼 때도 그렇습니다. 아이들이 내 말을 잘 듣게 하려고 착해질 것을 은근히 강요할 때가 있습니다. ‘아이고 내 새끼 착하기도 하지 아빠 말을 잘 듣는구나.’ 정말 아빠 말을 잘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내 말 잘 듣게 하려고 그럴 때가 많습니다. 그래야 내가 편하거든요. 내가 원하는 데로, 내가 편한 대로 아이가 따라주면 착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크는 동안 부모에게 착한 아이는 될 수 있겠지만 결국 커서 또 다른 사람 말에 따라가는 많고 많은 착한 사람들 중에 한 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착한 여자란 환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에게 착한 여자인가요? 당연히 남자 말 잘 듣는 여자가 일등으로 착한 여자일 것입니다. 과거 유교의 가르침도 보세요. 삼종지도(三從之道)라고 해서 어릴 때는 아버지를 따르고, 시집가서는 남편을 따르고, 남편이 죽으면 아들을 따르라고 합니다. 이걸 잘 해내야 ‘착한 여자’입니다. 안 그러면 못된 여자예요. 물론 요즘 세대는 신(新)삼종지도가 있어서 남자가 어려서는 엄마 말을, 결혼해서는 아내 말을, 늙어서는 딸의 말을 잘 따라야 한다고 하기도 합니다. 요즘 시대에 ‘착한 남자’의 기준입니다. 시대가 바뀌었다는 것이죠. 그러나 착함을 내세워 상대를 복종시키려 하는 메커니즘은 같습니다.

갑자기 화재를 돌려서 아픈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얼마 전 한국에 구의역에서 지하철 안전문을 수리하다가 사망한 열아홉 살 청년의 가슴 아픈 사건 있었습니다. 허핑턴 포스트는 이 사건이 일어나게 된 네 가지 원인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묻지 마 외주화,’ ‘인력 쥐어짜기,’ ‘헐값에 청년 부리기,’ ‘원청의 갑질.’ 밥 먹을 시간조차 없이 이리저리 쫓겨 다니듯 가방에 사발면을 품은 청년이 한 달 받은 월급은 144만 원이 전부였습니다. 얼마나 착한가요? 그런데 전동차는 착한지 안착한 지 따지지 않습니다. 청년의 몸을 산산이 부숴버렸습니다. 아들의 죽음에 망연자실한 어머니가 절규했습니다. 책임감 있게 키운 것, 윗사람 지시를 잘 들으라고 가르친 것을 후회한다고 했습니다. 둘째 애는 절대 그렇게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첫째를 그렇게 키운 게 미칠 듯이 후회된다고 말입니다. 오히려 말 안 듣는 안착한 아이였으면 그렇게 죽지도 않았을까 후회하는 엄마의 절규가 너무나 아팠습니다.

정말 착한 것은 무엇일까 다시 생각해 봅시다. 그것은 누군가에 의해서 강요된 착함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상식에도 안 맞고, 양심에도 반하고, 신앙에도 어긋나는데 누군가에게 착하게 보여야 하기에 착한 것은 착한 것 아닙니다. 결국, 나를 파괴하는 족쇄요 폭력일 뿐입니다. 대신에 냉철하게 물어야 합니다. 과연 누구를 위한 착함인지를 말입니다. 상식에 비춰보세요. 양심의 소리를 들어봅시다. 마지막으로 신앙에 비춰보세요. 이때 주어진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 진짜 착한 것입니다. 용감한 것입니다.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에베소서 6:6)

무엇이 착한 것인지 말씀이 명확하게 짚어줍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눈가림으로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다. 대신 하나님의 뜻을 행하라고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의 종들이 그랬다는 것입니다. 율법이니까 한 게 아니라 자기 안에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하나님의 뜻을 자발적으로 행했다는 것입니다. 이게 진짜 착한 것입니다. 타인의 강요에 의한 착함이 아니라 내 안에 성령을 통하여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착함입니다.

내 말 잘 듣는 착한 자녀에 만족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 용감하게 행하는 자녀가 진짜 착한 것이요 축복입니다. 해서는 안 될 일을 시키는데도 조용히 착하게 하지 마세요. 그렇게 해서 당장 승진하고 돈 조금 더 벌어도 결국 다 잃고 맙니다. 대신 양심을 쫓아 안된다 하는 게 착한 것입니다. 당장에 손해를 볼 수도 있지만 결국 큰 이득으로 돌아옵니다.

하버드대학교 교수이자 작가였던 Lauren Thatcher Ulrich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Well-behaved women rarely make history”(착한 여자가 역사를 만드는 것은 드문 일이다)

그냥 착해선 안 됩니다. 남들이 착하다 하는 말에 목메고 익숙해지다간 하나님이 만드실 새로운 역사가 없습니다. 대신 지금보다 덜 착해지는 게 더 좋습니다. 아니 못됐다는 소리 들을지언정 지금 내 맘에 들려오는 하나님 뜻에 따라가는 게 백배 낫습니다. 그때 비로소 당신의 삶에 하나님께서 새로운 역사를 만드실 것입니다.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내일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착한 그리스도인의 축복입니다.
<1029 / 0706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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