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래원목사 / 올랜도 선한목자교회 담임
11월 25일 아침 설교 준비를 하면서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중 한 평 남직한 창가를 향해 의자를 돌려 밖을 바라보았습니다. 비가 오려는지 창 밖 참나무(Oak tree)가지들이 심하게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잠시 섬기는 교회의 성도들 때문에 마음이 아려오는 느낌을 동시에 가진 체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교회를 섬기면서 가장 힘들고 마음 아픈 것이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들처럼 삶의 무게와 질병들, 건강과 재정, 관계들 때문에 힘들어하고, 고통하며, 때론 하루하루 힘겹게 살며, 싸우고 있는 성도들의 이야기를 전해들을 때입니다. 이런 성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극심한 무기력감속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저 그런 상황 때문에 흔들리더라도 부러지거나, 꺾이지 않고, 쓰러지지 않기를 주님께 구하는 것밖에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집요하게 괴롭히는 순간에도 나의 눈은 창 밖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들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가지들은 바람에 의해 마치 유린당하듯, 영향을 받으면서 때론 격동하듯 때론 조용하고 잔잔하게, 때론 가지가 부러질 정도로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교인들의 상황을 보면 지금 얼마나 세찬바람이 부는지, 얼마나 견디기 힘든 바람을 맞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우리가 볼 때 잔잔한 바람처럼 보여도 힘들고 고통스런 과정 속에 있기도 하고, 어떤 이는 바람이 너무 세차게 불어 도무지 어떻게 몸을 가눠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힘겨워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또 어떤 이는 모든 것을 날려버릴 것 같은 강한 바람 때문에 절망감 앞에 서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여러분 이 고난은 잠시입니다. 고난 뒤에 더 큰 영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라는 말이 도무지 입에서 나오질 않습니다. 그 과정을 당해보지 않으면 누구도 그 고통에 위로자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저에게 창밖의 세상은 모든 것이 흔들리고, 모든 것이 힘겨운 싸움의 연속인 듯 보이는 작은 세상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저런 생각 속에 잠겨 한참 동안을 창문 안에 앉아 밖을 바라보면서 저는 놀라운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창문 안에서 밖을 바라보고 있는 나는 꺾일 듯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의 격동과 다르게 어떤 바람에 영향도 받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밖에 부는 바람 때문에 머리카락 하나 날리거나, 추위에 몸을 움 추리거나, 어떤 갈등도 경험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밖에서 벌어지는 광경과 정반대로 나의 삶에는 아무런 미동도, 흔들림도, 거친 세파에 꺾이듯 힘겨운 버팀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매우 평온하고 깊은 안정감안에서 쉼을 누리고 있는 제 모습이었습니다.이 상황을 통해 제 안에 깨닫게 하신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 창문을 경계로 그리스도 안에 사는 삶과 그리스도 밖에 사는 삶이 얼마나 다른 것인지에 대한 것입니다. 그 동안 저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세상에서 부는 바람과 맞서 싸워 꺾이지 않고 강하고 담대하게 이겨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날 저는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평안의 비밀에 대해서 배우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분 안이 우리가 진정으로 찾던 바로 그 안전한 포구이며, 안전한 망대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예수 안에 들어와 그분 안에 거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더 이상 세상의 부는 바람에 의해 좌우되지 않고, 그것들에 의해 어떤 영향도 받지 않는 마치 깊은 바다가 그 어떤 강한 풍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잠잠하듯 더 이상 세상이 흔드는 온갖 바람에 영향을 받지 않는 마치 바깥세상의 흔들림을 앉아서 구경하는 저의 모습처럼 진정으로 평온한 누림을 누리는 사람이 되는 것과 같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은 그것을 발견했습니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시131:2) 다윗은 하나님의 품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 품 안에 있었습니다. 그에게 세상의 문제는 더 이상 갓난아이인 다윗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문제들은 다윗을 품에 앉고 계신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분이 그 문제를 맞닥트리시고, 직면하십니다. 바로 그 품에 안겨 있는 그의 자녀를 위해서 말입니다. 다윗의 노래는 우리가 무엇을 진정으로 추구해야 하는 지를 알려줍니다. 그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자녀들아 영원토록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그건 더 이상 다른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갓난아이는 오직 엄마만 의지합니다. 그 품에 있을 때 가장 평온합니다. 오직 엄마의 숨결, 호흡, 심장박동소리, 주시는 젖으로 만족합니다. 외부의 환경은 더 이상 그 갓난아이의 몫이 아닙니다. 혹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너무 많이 자랐고 컸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래서 여러분이 혼자 세상을 잘 헤쳐 나가 보려고, 더 이상 하나님은 제 삶에 필요치 않습니다. 라고 말하지는 않습니까? 혹 우리는 이미 그분의 품을 떠나버린 갓난아이들은 아닙니까? 자신이 다 자랐고 컸다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그분 안에 거한다는 것 그것은 흔들림을 이기는 강함을 스스로 소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약함 그대로를 가지고 있지만 나의 내면은 마치 바깥의 흔들림과는 아무런 상관도, 아무런 두려움도 없는 상태가 바로 그분 안에 사는 삶입니다. 왜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예수 안에 거하며 그 안에서 살아야 합니까? 세상의 바람은 그 강도와 상관없이 예수 안에 있는 우리를 절대로 흔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으로 노출된 가지들은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나의 내면은 전혀 그 바람에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부는 바람과 싸울 힘이 아직 남아 있다면 그 힘으로 그 바람으로부터 돌아서 여호와를 더욱 간절히 구하십시오. 그분을 더 바라십시오. 그것이 바로 바람을 잠재우는 가장 지혜롭고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사실을 찾아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착각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수 안에 거한다고 하면서도 우리는 모든 세상의 부는 바람에 영향을 받고 두려워하고 모든 것이 다 날아가 버리면 어쩔까 하는 불안감과 염려를 버리지 못한 체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 스스로 바람을 막아보려고 합니다. 더 열심히 기도하면……더 열심히 봉사하면….…무엇인가에 더 심취하고 더 많은 돈을 헌납하면…… 혹 기특하게 여기셔서 바람을 멈추게 해주시지 않을까? 하는 일명 요행 신앙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생명입니다. 예수를 이길 바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우리는 생명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 생명 안에 거하는 것은 예수의 생명이 나에게 무한한 공급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 그 안에 있을 때 나는 안전하리 그 생명 안에 거할 때 나는 그 어떤 흔들림에도 결코 불안하지 않으며, 요동하지 않으리 그것이 내가 지금 그분 안에 거하고 있다는 증거라네” 내 영혼의 평화와 안정감은 내가 겪는 외부의 상황과 전혀 다른 세계에 대한 경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 안으로 들어와 그 안에 살아야 합니다. 영의 사람이 되야 합니다. 내 몸은 세상에 있으나 나의 영혼은 전혀 다른 세계 안에서 삼이다 그것이 예수 안에 사는 삶입니다. 너의 염를다주께맡기라이는그가너희를볼보심이라. (벧전5:7) <1002/12022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