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100번째 칼럼에 즈음해서

최래원목사 / 올랜도 선한목자교회 담임

어느덧 칼럼을 쓴지가 100번째가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인도해주신 성령님께 무한 감사를 드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드립니다. 시간으로 보면 근 2년이란 시간이 흘러간듯합니다. 매번 느끼지만 칼럼을 쓸 때 마다 크던 작던 부담이 없지 않았습니다. 칼럼을 쓰면서 지나온 시간은 저를 더 성숙하고, 진실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점점 저의 지식이 얼마나 초라한지도 깨닫게 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항상 제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삶의 거울 앞에 서는 것 같습니다. 글이 잘 되고 안 되고는 두 번째입니다. 그 글 앞에 앉아 있을 때 마다 그것이 저를 더 겸손한 자리로 인도해간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처음 칼럼의 부탁을 받았을 때 기대감, 설렘 그리고 두려움도 없지 않았습니다. 글을 공적으로 신문에 올린 다는 것은 특별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했기에 처음엔 거절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이런 기회를 주신 올랜도 지부장 장 마리아 회장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또 이런 졸필에도 몇 번 뵙지 못했지만 격려해주시고 힘주신 이승봉 사장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얼마 전 칼럼을 쓰도록 해주신 장회장님께 칼럼을 그만 썼으면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젠 제게서 더 이상 선한 것이 나오질 않습니다” 가 표면적인 이유였습니다.
물론 급구 반대하셨고, 제게 힘을 실어 주셨지만 저의 그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제가 글을 멈춰야겠다고 생각한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그 동안 한 사람에게 집중된 신문의 지면을 지역교회의 많은 덕망 있고 또한 깊은 영성을 가지신 목회자들에게 이 공간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한 사람이 독식하는 지면이 아닌 많은 분들이 참여하는 더 건전하고 건강한 지면이 된다면 독자들은 다양하고 풍성한 글을 접하게 되는 유익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선한 것도 없지만 자칫 한 사람의 생각과 글과 사상만을 읽게 될 때 혹이라고 그것이 편협적이거나 형평성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그렇게 결정하게 된 진짜 이유가 있습니다. 몇 달 전 주님 앞에 앉아 있을 때였습니다. 주님은 “네가 처음에 가졌던 사랑과 순순한 열정과 헌신 대신 조금은 익숙해진 목사가 되고, 사람들에게 너의 설교를 알리려는 목사가 되었고, 신문을 통해 너의 인지도를 넓히는 목사가 되었구나! 나는 네가 처음 내 앞에 섰던 그 자리에 있기를 원하고, 처음 나만을 바라보고, 내게 사랑을 주었던 그 마음 앞에 서기를 원한다” 라고 하는 음성을 들려 주셨던 적이 있었습니다. 참 맘이 착잡했습니다. 그 음성에 순종하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 기도하면서 그 동안 외부로 나갔던 설교 CD를 더 이상 내보내지 않기로 결정했고, 칼럼도 그만 쓰기로 마음에 다짐을 하고 교회 제직회에는 이 사실을 이미 알린 상태였습니다. 물론 그 다음 주에 당장 말씀 CD의 부스는 철수 했고, 칼럼은 저의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는 선에서 기회를 주신다면 간혹 한 번씩 올리도록 허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모든 진실에는 아름다움이 숨겨져 있습니다. 스스로의 내면을 속임 없이 솔직하게 써내려 가는 글에는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감동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제가 제 글을 읽어도 별 감동이 없고 느껴지지도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가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상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글을 위한 글을 쓰게 되는 저의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랐던 적이 있었습니다. 누구에겐가 읽히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그들에게 칭찬받고 싶은 욕망이 올라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 정도면 갈 때까지 간 게 아니겠습니까? ㅎㅎ

다시 초심에서 생각하고, 이민자로 지역사회에 살며,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에게 정말 필요한 말씀, 여름 가뭄에 얼음냉수 같은 글들이 제 영 안에서 다시 나오기를 바랍니다.
그저 그런 글이 아니라 진정 이민교회를 생각하고, 이민 생활 속에서 신앙인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인지를 더 배우고, 그저 숙제를 떠 앉은 학생의 부담감으로 쓰는 글이 아니라 좀 더 생산적이고, 의미를 부여 할 수 있고, 생명을 주는 글들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랄뿐입니다. 물론 영원히 그런 글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요! 누군가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말하길 “ 안으로 자기를 정돈하기 위하여 쓰는 글은, 쓰고 싶을 때에 쓰고 싶은 말을 쓰는 것입니다. 아무도 나의 붓대의 길을 가로막거나 간섭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하고 싶은 바를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할 수 있는 일, 따라서 그것은 즐거운 작업입니다” 그런 글이 쓰여지고 나와야 그것을 읽는 독자들도 그 글을 통해 더 자유로워지고, 더 신선함을 맛보게 되고, 읽을 맛을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며, 그 글이 자신의 또 다른 거울이 되어 독자들을 더 활력 있게 만들어 주게 될 것입니다.

그 동안 길다면 긴 시간, 짧다면 짧은 시간이기도 했던 100번째의 글이 제겐 새로운 도전과 기회를 동시에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99번째까지의 글을 쓰는 동안 너무나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글의 힘이 참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도 해보았고, 그래서 더 두렵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글 쓰는 재주꾼은 아닙니다. 그래서 쓰고 나면 늘 아쉬움이 남고, 생각이 많아지기도 했던 적이 수없이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어주시는 독자들께서 계셨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모든 분들께 지면을 통해 감사를 드립니다.
당분간 떠나있는 공간을 누군가 채우게 될 때 더 열심히 읽어주시고, 응원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면 더 좋은 글들을 접하게 될 것입니다. <993/0923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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