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 앞에서라

최래원목사 / 올랜도 선한목자교회 담임
교회는 어떤 이윤도 목적이 돼 서는 결코 안 되는 공동체집단이다. 세상의 모든 집단이 이익집단이고, 이윤을 목적으로 만들어 졌다 해도 교회만큼은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사신 몸이자 공동체이다. 그 몸 안에 세속적 가치들이 마치 자신들이 언제부터 주인인 것처럼 행세를 하고 버젓이 공동체 안에 둥지를 틀어 버리고 말았다.
교회는 제도도 의식도 그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안 되는 공동체 집단이다. 세상의 제도와 구조가 교회를 점령해 버린 지 오래다. 교회는 교회 다 와야 하고, 교회가 교회 다 와지기 위해서는 교회는 세속적인 권위로부터 탈출해야 한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세상)의 권력의 구조 속에 400년을 묻어 살다 보니까 그것이 자연스럽게 몸에 베이고, 익숙해져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나라의 구조와 의 식을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오늘날 교회 역시 그와 비슷한 현상에 극심하게 노출되고 있다.
교회를 마치 자신들의 이익집단이거나, 자신들의 특권을 위한 개인 사유로 탈바꿈해버리고 있는 것이 실정이다. 그것에 기인해 교회는 더 이상 예수님 자신이 발붙일 틈도, 그분의 개입을 허락할 기회마저 주지 않는 곳이 돼 버렸다.
이쯤 되면 교회는 더 이상 예수님의 피로 세운 곳이 아니라 극히 세속적 사고와 삶의 구조를 가진 사람들이 만든 세상적인 구조물에 예수라는 조미료를 가미한 인간들의 집합 장이 돼 버린 것이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십시오. 우리가 다니는 교회를 가면 예수님의 향기가 나고, 그분의 임재 가 느껴지고, 예수님처럼 살고 싶은 강한 열망을 배우게 되고, 어떤 고난이 오고, 환란이 와도 이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겠다는 각오와 믿음이 굳건해 집니까? 아니면 예배당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사람들의 썩은 냄새들과, 정치판이나, 이익집단에서나 볼 수 있는 편 가르기와 돈으로 매수당한 사람들의 격양된 모습들, 돈이 지배하고, 권력과 힘이 지배해버린 집단, 목사의 편이 아니면 모두 적이 되고 이단이 되는 그런 집단으로 변모해 가고 있는 곳이 교회가 돼 버렸습니다. 그것은 심각한 교회의 타락이고, 교회의 훼손입니다. 예수님의 피를 거짓된 돼지피로 바꾸는 것이고, 그분의 죽으심을 한 노숙자의 죽음보다 더 의미 없게 만드는 행위들입니다.
교회는 타락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타락해 버렸습니다. 인간은 교회를 다시 복원 할 수 있는 방법을 이미 도난당해 버렸습니다. 교회가 교회를 도적질하고, 교회가 교회를 지배하고, 영혼들을 난도질하고, 자신의 힘을 위해 성도 하나 죽이는 것을 예사로 아는 것이 교회의 풍조가 돼 버렸다. 목사는 모든 것에 면죄부를 받았고 목사가 하는 모든 말은 하나님의 법 위에 굴림 한다. 목사에게 반기를 들면 하나님께 저주를 받을까 하는 두려움이 순 진한 성도들에게는 그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누가 그런 것을 가르쳤는가? 목사 자신들을 위해 가르친 자신들의 법이고, 자신들의 복 음일 뿐 그런 가르침은 성경적인 가르침을 크게 훼손시켜 버린 것들입니다.
바로 이것들이 목회자들을 위한 성경을 편향적으로 가르친 오류에서 나온 결과물이고 이 오랜 정죄 감은 사람들의 마음을 심각하게 파손시켜 버린 것이다. 성경을 대단히 잘 못 해석해서 아전인수 식으로 가르친 결과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누가 목사를 안수하여 세웠는가? 사람들인가? 하나님이신가? 목사들은 다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웠다고 말한다. 그 말이 사실이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하나님의 기름을 부어 세우셨다고 가정한다면 하나님의 뜻, 그분의 원하시는 대로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그 기름 부으심은 거둬가 버리신다. 기름 부으심은 영원하지 않다. 기름은 그분의 뜻을 온전히 이루려는 사람들에게 부어지는 것이지 자기 맘대로 그분의 뜻을 변개하는 사람들의 전유물이 되게 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사울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사울은 뛰어난 지도자며, 목회자로 부르셨다.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도록 그분의 뜻을 백성들에게 온전히 나타내도록 택하셨고 기름 부으셨다. 그러나 그에게서 그분의 기름부음이 거둬 가신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갠달 목사님이 쓰신 책의 내용처럼 어쩌면 오늘의 기름 부으심을 잃어버린 체 어제의 기름 부으심의 기억만을 가지고 그것이 마치 하나님이 부으신 기름 부으심인 냥 거짓으로 행하고 있지는 않는지 점검해 봐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그분의 몸으로 세워주신 교회와 그분의 피로 값 주고 사신 자녀들을 함부로 취급하고 대하는 그분의 종들의 기름 부으심을 영원히 부으시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가? 정말 두렵고 떨리는 일이 아닌가?
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가? 왜 목사들은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그분 앞에 서지 않는가? 그 안수를 준 사람들이 누구인가? 정치적이고, 이권에 눈이 멀고, 권위를 위해 영혼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이 준 안수가 아닌가? 어찌 그것을 하나님께서 부으신 기름 부으심 이라고 하는가? 그분의 기름 부으심이 정말 그렇게 부어지는 것인가? 누가 그 기름을 하나님 대신 부으라는 명령을 받은 자란 말인가?
영혼들은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의 대상이 아니다. 목사 자신을 위해 함부로 대하고 함부로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아니다. 성경은 그들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이고, 성도라고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아울러 그들을 예수의 것이라고 성경은 분명히 이들의 정체성을 명시하고 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 범죄, 우상숭배와 하나님을 저버린 모든 일의 책임은 바로 지도자들에게서부터 기인한다. 지도자들이 타락을 부추기고, 지도자들이 타락을 위한 발판을 깔아 주었기 때문에 양 같은 백성들은 그들이 깔아놓은 죄의 길, 타락의 길로 아무 생각 없이 걸어 나갔던 것이다. 그 길이 사망의 길인지도 모르게 말이다.
교회는 결국 사람이 대안이다. 사람 잃으면 교회도 없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시금석은 바로 사람에게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 하나님의 관심도 사람에게 있다. 그러 나 그분께서 쓰시고자 하는 사람은 아무나, 신학교 나왔다고, 박사 학위 받았다고 쓰실 수 있는 자격을 갖췄다고 결정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쓰시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결정하신다. 그분은 기꺼이 쓰시기도 하지만 그분은 언제든지 버리시기도 하신다. 그분께서는 그분께서 쓰시는 사람을 향해 엄격한 기준을 설정하신다. 목사라고, 장로라고 그분의 기준을 벗어날 수 있는 그 어떤 혜택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만큼은 잊지 말아야 한다. 만약 자신을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자만한다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엄격한 징벌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정말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그분의 종이 돼야 한다. 그분의 몸인 교회가 돼야 한다. 정말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몸부림치는 성도들이 돼야 한다. <967/0311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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