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꾸러기의 짧은 글 긴 생각> 믿음의 훈련지, 애굽

이경규목사 / 서울 새로운 성결교회 담임
어느 날 아브라함이 떠나온 땅에 기근이 들었다.
당시 그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그 기근 속에서라도 자신을 먹이실 수 있는 분이라고 믿는 그 수준까지는 이르지 못 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연스럽게 물이 있는 곳, 자기 양떼를 먹일 수 있는 곳, 자기네가 먹고 살 수 있는 곳으로 양식을 구하러 애굽까지 갔다.
가면서 생각하니까 자기 아내가 걱정이다.
너무 예뻐서 아내를 뺏기 위해서 사람들이 자기를 죽일 것이 뻔하다.
그러나 만약 사라가 자기 동생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오빠 되는 이에게는 후하게 대해 줄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기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아내를 동생이라고 속이기로 하고 애굽으로 내려갔다.
그랬더니 그곳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거짓말이 정말인 줄 알고 사라를 빼앗아갔다.

이런 사건을 보고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가만히 있어야 했는데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내려가서 결국 하나님이 글 치신 것이다.
그래서 그가 회개했다.’라고 성급하게 판단 내리지는 말자.
이 때 아브라함이 회개한 장면은 없다.
아브라함이 회개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바로 왕이 회개한다.
바로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왜 그가 회개를 할까?
바로 왕은 한밤중에 유명한 권투선수 타이슨에게 얻어맞은 무명 선수 같이 되었다.
바로는 그 당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엄청난 지위에 있었다.
전세계 문명국의 통치권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권력은 로마의 시이저보다 강하고, 알렉산더보다도 강했다.
그러한 바로가 아브라함의 아내를 뺏은 것 하나 때문에 밤새 하나님께 얻어맞은 것이다.
바로가 얼마나 혼이 났는지 아브라함에게 ‘다 데리고 가라’하고는 금은보화까지 준다.
이것은 바로가 아브라함에게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얻어맞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니 아브라함은 믿음도 없고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지만, 이 사건을 통해 크게 놀라게 된다.
‘하나님이 도대체 어떤 분이시기에 바로가 이렇게까지 한단말인가?’
여러분, 하나님이 인간의 믿음을 도박하듯이 욕하시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믿음은 꺼내놓은 도박이 아니다.
우리를 설득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우시고 넘치는 사랑의 열심이다.
그 설득에 녹아나지 않는 사람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우리를 설득해 오신다.

믿음에 관한 이야기 중에 잘못 이야기하는 것이 이것이다.
‘믿지 않고 무슨 이야기가 되는가? 일단 믿어보고 이야기합시다.’
우리들은 곧잘 이렇게 설명하기를 좋아한다.
‘당신은 아침에 출근할 때 구의역에서 2호선 타고 시청까지 가지 않습니까? 그 때 운전기사를 믿고 타지 않습니까? 믿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안됩니다.’
우리가 믿음을 이런 식으로 설명하는 습관이 있는데, 그것은 믿음이 아니다.
그런 것은 확률이라고 한다.
믿음은 인격에 관한 것이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이다.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에게 복을 주셨다’
이렇게 쉽게 이야기하지 말자.
하나님이 우리를 설득해 오시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생애만큼 이것이 가장 멋있고 명확하게 나타난 예가 없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훈련을 받는다.
그 훈련의 가장 좋은 예가 바로 왕을 통한 것이다. <956/1217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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