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래원목사 / 올랜도 선한목자교회 담임 | |
옛날 제가 어릴 적에 월동준비는 추운 겨울을 준비하는 큰 행사였습니다. 변변한 난방 시설 하나 제대로 돼 있지 않던 집의 문들을 문풍지로 바르고, 틈마다 들어오는 찬 공기를 막고, 방안의 따뜻한 공기가 나가지 못하도록 틈을 메우고, 먹을 것이 풍족하지 못했던 그 시절에는 김장을 담는 날이면 동네잔치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막 담은 김장김치를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막 지어낸 흰 쌀밥 위에 얹어 먹는 맛이란 꿀맛 그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겨울내 쓸 연탄을 창고에 쌓았습니다. 그렇게라도 한 집은 꽤나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나마도 못해 추운 겨울을 몸으로 겨우 이겨내야 하는 사람들도 주변에 허다하게 많았던 때였습니다.
좌변 식 화장실은 거의 없을 때라 밖에 위치해 있던 화장실은 추위에 꽁꽁 얼고, 수도는 동파되기 일수였습니다. 지금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지만 그 때 겨울을 어린 제 나이에도 참 추웠던 기억이 남이다. 지금 우리가 맞이하는 겨울은 그때와는 사뭇 환경이 많이 다르지만 올해 이곳 플로리다를 포함한 미국 전역에 북극으로부터 내려오는 혹독한 겨울 한파가 예고되고 있고, 많이 추울 것이라는 기상 전망을 내 놓고 있습니다. 겨울의 성지 같은 플로리다도 기상 이번에는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그러고 보면 이제 미국도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성지가 점점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플로리다까지 기습적으로 내려오는 추위는 추위에 약한 이곳 사람들의 체감온도를 더 떨어트리게 합니다. 그래도 플로리다는 다른 주에 비해 아직까지는 비교할 수 없이 따뜻한 도시 중의 도시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런 다양한 기상이변은 어제 오늘 일만은 아닙니다. 과거에도 있어왔고 진행돼 왔던 것들 입니다. 그러나 그 강도와 피해와 규모가 점점 더 커가고 있다는 게 그 심각성이 있습니다. 사실 종말의 시점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도 모른다고 오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막아보려고 수많은 과학자들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고 온실가스를 줄여보고, 무기의 감축을 논의해도 막을 수 없는 현실입니다. 결코 사람들은 그 종말의 도래를 예측할 수는 있어도 그것을 막을 수도, 알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종말의 가까움과 움직임을 똑똑한 인간들보다 창조된 자연이 먼저 간파하고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측할 수 없는 것을 자연은 그때를 알고 반응합니다. 어쩜 가장 현명하고 똑똑하다고 하는 인간도 자연의 지혜와 분별력을 따라가지 못하는가 봅니다. 추운 지방에 사는 사람들에 비해 더운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추위에 취약합니다. 피부나 몸의 구조가 더위에 익숙해져서 땀구멍이 커지고, 탄력이 없고 느슨해져 있습니다. 더운 곳에 사는 분들은 겨울 준비라고야 고작 긴 팔 옷에 약간 두툼한 옷가지 몇 개 준비가 전부입니다. 따로 음식준비를 해야 하거나, 만반의 월동준비를 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 니다. 그에 비해 추운 곳에 사는 사람들은 긴장감부터가 다릅니다. 추위가 오기 월 씬 전부 터 겨울을 준비하고 식량을 비축하고, 땔감을 마련합니다. 일전에 알래스카 최북단에 사는 에스키모인 들의 삶을 소개하는 다큐를 본적이 있습니다. 1년 중 6-7 개월이 겨울인 그들의 삶은 짧은 봄과 여름은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으로 보냅니다. 고래, 바다사자를 사냥해 겨울에 쓸 가죽과 고기는 잘게 썰어 햇볕에 말려 겨울에 먹기 위해 준비합니다. 한 마리를 사냥하면 온 동네가 모여 함께 나누고 자급자족을 합니다. 혹독한 추위를 견뎌야 하기 때문에 일어날지 모르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발전되고 윤택해진 지금의 세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겨울에도 해가 내리쬐고 수영을 할 수 있고 반팔로 활보가 가능한 플로리다 사람들처럼 추위에 매우 취약하고 약해져 있습니다. 늘 평안하기만을 원하고 복 받기만을 바라고, 좋은 환경, 평온한 환경, 고난과 역경과 시련이 없는 환경만을 원합니다. 그것이 신앙이 되고 종교가 돼 버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