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유아무와 인생지한(有我無蛙 人生之限)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한국의 옛날 자유당정권시절에 시중에는 “빽없고 돈 없는 놈(사람)은 실력이 있어도 취직도 못하고 출세도 못하며 죽을 때도 빽하고 죽는다” 라는 말이 시중에 유행되었다. 한마디로 빽(배경 및 후원인)이 없거나 돈이 없다면 아무리 실력이 있고 잘났어도 좋은 위치나 좋은 직업을 구하기가 그만큼 힘들었다는 시사적인 사회상의 단적인 표현이기도 했다.
빽이 있는 사람은 연줄연줄, 연고를 통해 가고 싶고 좋은 자리를 다 차지하고 맘에 드는 사람 또는 친, 인척, 지인 관계를 통해 끼리끼리 다해먹으며 그것을 배경으로 출세를 하기도 했다. 군대만하더라도 돈 없고 빽없는 사람은 최전방 말단 소총소대나 수색대에 배치 받아 군복무 3년 동안 고생만 직사하게 하다가 골병이 들어 제대하기도 했다. 돈 있고 빽있는 사람은 아예 군대를 가지 않거나 군대를 가도 좋은 보직을 받아 편하게 군 생활을 마치고 제대를 하곤 했다.
이렇게 돈과 배경(빽)은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예나 지금이나 출세나 성공의 지름길로 대변되기도 했다. 억울하면 출세를 하라고 하지만 돈없고 빽없는 것이 억울하고 서글플 뿐이라서 그 울분을 막걸리 한 사발에 풀어 목구멍 속으로 힘겹게 삼켜 넘기기도 했다.
이러한 예는 옛날에도 마찬가지로 존재해서, 고려말 후기의 문장가이자 학자인 이규보 선생도 벼슬길에 오르기 전 초야에 묻혀서 자신의 신세한탄을 시로서 표현을 많이 했는데 그 중에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를 소개해 드리고자한다.
이규보선생은(1168~1241) 고려후기시대의 문인으로서 자(字)는 춘경(春卿),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로 불리웠으며 그의 호탕, 활달한 시풍(詩風)은 고려말 후기 당대를 풍미했으며 특히 벼슬에 임명될 때마다 그 감상을 읊은 즉흥시는 조선시대에까지 유림, 학사들에게 즐겨 읽혀지곤 했다. 시, 술, 거문고를 즐겨 삼혹호선생(三酷好)이라 자칭했으며 만년에 불교에 귀의했다.
어느 날 임금님이 혼자서 야행을 나갔다가 그만 깊은 산중에서 날이 저물었다. 요행히 어느 민가를 만나 하룻밤을 묵고자 청을 했지만 집주인(이규보선생)이 조금만 더 가면 주막이 있으니 그곳으로 가보라며 정중히 거절을 했다.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려 집을 나오는데 그 집 대문에 이러한 글이 써져서 대문에 붙어 있었다.
“유아무와 인생지한(有我無蛙 人生之限)”, 그 뜻인즉 나는 있는데 개구리가 없는 게 인생의 한이다.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 어느 만큼의 지식은 갖추었지만 글귀속의 개구리가 뜻하는 내용은 아무리해도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여기서 蛙자는 개구리 와字이다) 개구리가 뭘까? 곰곰이 생각하며 주막에 이르러 국밥 한 그릇을 시켜먹으며 주모에게 조금 전에 다녀왔던 산골 외딴집(이규보집)에 대해 물어보았다. 주모의 말인즉 그는 과거에 몇 번 낙방하고 마을에도 왕래가 별로 없이 집안에서 밤낮으로 책만 읽으며 살아가는 선비라는 말을 들었다. 궁금증이 더욱 발동한 임금은 다시 그 집으로 찾아가 사정 사정을 하여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방안에 들어가 수인사를 나누고 서로 주거니 받거니 여러 이야기를 나눈 끝에 대문에 붙은 ‘유아무와 인생지한’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규보가 낯설은 방문객에게 한 가지 이야기를 설명해주었다.
옛날 노래를 아주 잘하는 꾀꼬리와 목소리가 듣기 거북한 까마귀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꾀꼬리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신나게 하고 있을 때 까마귀가 찾아와서 노래 시합내기를 하자고 청을 했다. 바로 3일 후에 노래시합을 하는데 심판은 두루미로 하자고………
너무나 기가 막히고 자존심이 상했으나 꾀꼬리는 이참에 못돼먹은 까마귀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고 창피를 주기 위해 노래시합에 응하기로 했다. 그래서 꾀꼬리는 그로부터 3일 동안 더욱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열심히 아름다운목소리로 연습을 했다.
그러나 까마귀는 노래연습은 하지 않고 자루하나를 둘러메고 논두렁으로 나가 열심히 개구리를 잡아 자루에 담았다. 그렇게 잡은 개구리를 들고 두루미한테 갔다. 맛있게 개구리를 찍어 먹는 두루미에게 3일 후에 있을 노래시합에 좋은 판정을 자기에게 내려줄 것을 부탁했다.
배부르게 개구리를 얻어먹은 두루미는 걱정 말라며 까마귀를 안심시키고 3일후에 노래시합장에서 만나자고 약속하고 헤어졌다. 약속한 3일이 되어 꾀꼬리와 까마귀는 자기의 실력을 다발휘하여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한 곡조씩 불렀다. 자신에 찬 꾀꼬리는 두루미가 당연히 자신의 손을 들어줄 것으로 알고 느긋한 표정으로 두루미의 눈을 주시했다. 그러나 두루미는 의외로 까마귀의 손을 들어주며 까마귀가 이겼다고 선언했다.
이 말은 이규보선생이 임금(선비)한테 불의와 불법으로 얼룩진 나라를 비유해서 한말이다. 이규보선생은 자신의 실력이 어디를 내놔도 안 지는데 과거를 보면 언제나 떨어진다는 거다. 돈이 없고 빽이 없다보니 정승, 판서 및 벼슬아치자식들은 실력도 없는데 모두가 한자리씩 차지하고 잘되는데 유독 자기만은 줄도 없고 빽도 없으며 뇌물로 쓸 돈조차 없으니, 바로 자신은 노래를 잘하는 꾀꼬리입장이지만 까마귀가 두루미에게 상납한 개구리 같은 뒷거래가 없었기에 번번이 낙방하여 이렇게 초야에 묻혀 책만 읽으며 살고 있노라고……. 그 말을 들은 임금은 이규보선생의 품격이나 지식이 고상하고 상당한 수준을 갖췄기에 자신도 과거에 여러번 낙방하고 전국을 떠도는 떠돌이인데 이번에 들으니 며칠 후에 임시과거가 있다 해서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이규보에게 이번에 다시 한번 과거에 응시할 것을 종용했다.
임금은 궁궐에 돌아와서 며칠 후에 임시과거를 볼 것을 명하였다. 과거를 보는날, 이규보선생도 뜰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마음을 가다듬으며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시험관이 내걸은 시제가 ‘유아무와 인생지한(有我無蛙 人生之漢)’이란 여덟자였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게 무슨 뜻을 의미하는지를 몰라 골머리를 앓고 있을때 이규보선생은 임금이 계신곳을 향해 큰절을 한번 올리고 답을 막힘없이 적어냄으로써 그 날 과거시험에 다른 사람들을 제치고 장원급제하여 임금 앞에 다시 상봉을 하고 큰절을 다시 한 번 올렸다고 한다.
‘나는 있으나 개구리가 없는 게 한이다.(유아무아 인생지한’. 고려 말 이규보선생이 과거에 낙방하고 초야에 묻혀살 때 집 대문에 붙어있던 글로서 흔히들 돈없고 빽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울분의 눈물을 흘리며 내뱉는 말이 바로 이 말로 자유당시절에 많이 써먹던 말이다.  myongyul@gmail.com <950/1023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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