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꾸러기의 짧은 글 긴 생각> ‘주의 자녀’가 ‘주의 종’을 섬겨야 하는가

이경규목사 / 서울 새로운 성결교회 담임
교회생활이 종종 개그 프로그램의 주제로 변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독특한 어법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만세삼창에서 따온 ‘주여 삼창’, 시도때도 없이 그야말로 강아지 훈련하듯이 기침만 해도 따라하게 만든 ‘아멘’ ‘할레루야’ 합창 등이다.
그중 가장 심각한 것 중에 하나가 ‘주의 종’의 용법이다.
여기서 자신을 ‘주의 종’이라고 할 때는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삼고 그의 명령을 따라 행하려고 하는 사람이라는 은유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주의 종’은 곧 목사를 가리키는 고유명사화 되었다.
‘목사=주의 종’이라는 인식이 일반화되어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주의 종’을 잘 섬겨야 복을 받는다고 가르치고 있고, 그렇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고 협박까지 하고 있다.
그러면 ‘주의 자녀’인 성도(이 말조차도 계급화 되어 사용되지만)들이 ‘주의 종’을 섬겨야 한다는 말인가?
어느 나라에, 어느 시대에 ‘자녀(주인)’가 ‘종’을 섬기는 경우가 있었는가?

누가복음 17:5-10을 자세히, 꼼꼼하게 읽어보라.
종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주의 종’이라는 말에는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다.
첫째, 종은 쉼 없이 일해야 한다.
밖에서도 열심히 일해야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도 주인의 시중을 들어야 한다.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쉬는 것은 종이 아니라 주인이다.
둘째, 종은 주인이 먹고 남은 것을 먹어야한다. 종은 주인의 식탁에 동참하는 자가 아니라 식탁을 섬기는 자다. 검소와 절제는 종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셋째, 그러고서도 종은 보상을 바랄 수 없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왜냐하면 종은 주인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겸손은 종의 본질적인 성품이다. 이런 것들이 어떤 사람이 종인지를 보여주는 표징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우리의 주인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보상해주고자 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주인이신 그분의 마음이므로 누구도 말릴 수 없다.
진실로 더 철저하게 종이 될수록 더 높은 천국 보좌를 예비해놓고 계신다. 이 비밀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현되었다.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주의 종이란 예수그리스도를 본받아 자신을 낮추어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자를 의미한다.
목사만이 주의 종이 아니다. 아니 한국교회에 있는 적지 않은 목사들(나를 포함)은 주의 종이 아니다.
거기에는 주의 자녀들을 호령하는 상전으로서 교회의 주인 행세를 하는 목사들이 있다.
이들은 진짜 주인이 다시 오실 때 아마도 바깥 어두운 곳에서 이를 갊이 있을 것이다. 진심으로 주의 종이 되려는 자는 주인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처지를 명확히 알아야 한다. 그리고 주인이 죽으라면 죽고 살라면 사는 것이다.
더 이상 ‘주의 자녀’들에게 자신을 섬기라고 우기는 ‘주의 종’들의 개그같은 해프닝이 없기를…. <947/1008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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