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선(善)과 악(惡)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인간의 본성에 대한 여러 가지 학설이 있는데 한국의 고등학교(윤리와 사상)교과서에는 그 중 세 가지가 실려 있다.
본래 순선(純善)한 성품을 타고난다고 보는 성선설(性善說)과 본성이나 감성적 욕구의 악함을 가정하는 성악설(性惡說), 선악이 인간의 고유한 속성이 아니라 인간자신의 선택과 판단이나 환경에 달려있다고 보는 성무선악설(性無善惡說) 등이다.
이들 학설의 공통점은 선과 악의 대립구도로 본성을 탐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은 본성이 착한 마음으로 태어났다. 아니다. 사람의 본성은 원래 악한인간으로 태어났다.
앞의 말은 맹자의 성선설을 뒷받침하는 말이고 뒤의 말은 순자의 성악설을 표현하는 말이다.
맹자는 우물에 빠진 아이를 보면 누구나 그 아이를 불쌍히 여겨 구해주려 할 것이라는 이유로 사람은 누구나 그 본성이 선하다고 하였다.
반면 순자는 사람은 누구나 다 이익을 좋아하고 손해 보는 것을 싫어하며 예쁘고 좋은 것을 탐한다는 이유로 사람은 누구나 그 본성이 악하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옳은 것일까?
나는 둘 다 맞는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내면에는 선한 본성도, 또 악한본성도 함께 내재되어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두 가지의 본성이 내재되어 있다가 힘든 상황에 처한 불쌍한 아이를 보면 도와주고 싶은 선한 본성이 발동이 되어 나타나고 좋고 예쁜걸 보면 가지고 싶은 악한본성이 발동이 되어 나타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맹자나 순자 모두 사람을 보다 선하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려 하였다는 점일 것이다.
맹자는 타고난 선한 본성을 계속 지키고 유지해서 선하게 살자고 주장하였고, 순자는 타고난 악한본성을 계속 고치고 바로잡아서 선하게 살자고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한다면 성선설이나 성악설모두가 추구하는 목표가 보다 선한 사람으로 살아가자는데 있다. 때문에 우리들이 살면서 성선설이 옳고 성악설이 틀렸네, 또는 반대로 성악설이 옳고 성선설이 틀렸다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별의미가 없다.
타고난 선한 본성을 잘 지켜나가든 타고난 악한본성을 잘 고쳐나가든 자기가 사는 동안 보다 선하고 아름다운사람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인간들은 예쁘고 소중한 토끼를 가여워하면서도 잔인하게 죽여서 먹어야만 자신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사는 동안 토끼를 측은히 여겨 가여워하는 마음과 토끼를 맛있게 요리해 자신의 배를 불리고자하는 마음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즉 다른 생명을 죽여 그 에너지를 취해 나의 생명을 유지하며 살다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서 생명을 유지하는 내내 선한 마음과 악한마음사이에서 번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지켜지고 있는 법은 이러한 근거를 바탕으로 법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대의 법은 인간의 삶을 선과 악으로 나누는 성경에 기반을 둔 서구의 법체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이분법적 관계에서 출발한 오늘날의 법철학은 또 나름대로 모순을 지니고 있음을 피할 수 없다.
이러한 법철학은 현대인의 사상과 문화, 일상생활까지도 지배하게 되는 경향이 많다.
따라서 오늘날 선과 악으로 양분하려는 시도들이 바로 여기에 근거를 둔 것이다.
인간은 본래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니다. 인간의 선악을 결정짓는 요소는 그 소속한 문화와 관습의 결과이다.
오랜 기간 축적된 사고방식과 규범이 그 기준이며 그 기준은 절대적인 경우와 가변적인 경우가 혼재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성향과 성격, 가치 등은 대부분 후천적이다.
성장하면서 습득하여 체계화하는 것이며 그렇게 체계화된 사고는 여러 차례 새로워지고 대체되거나 바뀌기도 한다.
그러함에도 10대 이전에 형성된 사고가 큰 계기를 맞기 전에는 일생동안 유지되는 경향이 강하다.
현재의 보편적 가치기준으로 선한 것은 타에 대한 희생이나 봉사, 나눔, 세워줌, 격려와 법이나 규범에 따라 사는 것 등을 얘기할 수 있다.
반면 악하다는 것은 남에 대한 갈취나 상해, 폭력, 살해, 사기, 말살, 넘어뜨림, 방해, 모함, 거짓말 등등을 꼽을 수가 있으니 이것은 법리에도 벗어난 경우이다.
인간의 후천적 성격이나 행동성향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많다. 그 입에 들어가는 음식물에서부터 그것을 습득하는 방식과 그것을 대하는 방식에서부터 출발하여 생활환경과 주거환경, 복장의 형식과 형태 및 소재, 나아가 지역사회의 의식과 관계, 정치적 또는 경제적 상황이나 형편 등 무수히 많은 조건들이 인간의 성격과 성향에 깊이 영향을 준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겠다.
그렇다면 누가 악한사람이고 누가 선한 사람이며 무엇이 차이일까?
여기에 설명을 곁들인다면 악한사람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이용할 뿐이고 그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다. 악한사람은 자기가 세상의 중심이고 다른 사람들은 오직 자신을 위하여 이용될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모든 것이 자신을 위하여 존재할 뿐이다.
악한사람에게 다른 사람은 그저 자신의 욕구충족에만 의미가 있다.
사회적으로 모든 범죄를 저지른 자가 악한 사람 편에 속한다. 그런데 이렇게 악한사람은 이러한 범죄자가 아닐지도 모른다. 악한사람이라고 해서 모두가 범죄자는 아니다.
그들 가운데는 법관이 있고 그들 중의 일부는 매우 훌륭하다고 존경받는 사람이며 그들 가운데 일부는 정치가이고 대통령이고 국무총리이다. 또 그들 중의 일부는 성자인 듯 하나님을 파는 악한 목회자도 있다.
그들은 오직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는 위선자 및 악한사람들이다.
일반적으로 악하게 행동을 하지 않는 다해도 이러한 마음적 자세를 갖고 있다면 그는 악한사람이다.
악한자의 반대되는 선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며 자기를 존중하는 만큼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자기가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하고 그 모든 사람을 존중하고 내 몸처럼 생각하는 사람, 다른 사람을 내 생활의 편리함이나 도구로 사용하지 않고 모두가 함께 함을 감사하며 사는 사람, 남을 얕보거나 깔보지도 않고 무시하지 않으며 빈부의 차이를 두고 사람을 가려서 사귀지 않는 사람, 배우고 못 배움을 탓하지 않으며 어느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겸손하게 인정을 베풀며 대하는 사람, 나의 입장이나 환경을 이해하듯 남들의 처지와 환경을 이해하고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사람 등등………

우리는 보통 착한 것을 선이라 하고 악한 것을 악이라고 한다.
선과 악을 주종(主從)으로 따졌을 때는 주(主)인 정신적인 가치를 선(善)이라 하고 종(從)인 물질적, 육신적 가치를 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정신을 담는 머리가 위에 있고 물질을 담는 발은 아래에 있기 때문에 옛 선인들은 정신적 가치를 형이상학(形而上學)이라 하였고 물질적 가치를 형이하학(形而下學)이라 하였다.
따라서 선이란 정신적 가치가 물질적 가치를 지배했을 때 나오는 덕(德)을 말하고 악이란 물질적 가치가 정신적 가치를 지배했을 때 나오는 부덕(不德)한 현상을 말한다.
옛 선인들은 육신의 양심에 순종하는 자는 영생불멸하고 만사형통한다고 선가치(善價置)를 먼저 해야 한다고 가르쳤던 것이다. <myongyul@gmail.com> 942/0903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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