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칼럼> 당신의 믿음은 건강하십니까?

최래원목사 / 올랜도 선한목자교회 담임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저 사람 정말 믿음 좋아요” 라고 하는 말을 종종 듣게 됩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믿음이 좋다는 기준이 어디서 나온 것일까? 누가 만들어 낸 것일까? 그리고 저 사람은 무슨 믿음이 좋다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됩니다.
여러분은 믿음이 좋으십니까? 이렇게 질문하면 많은 사람들은 내가 믿음이 좋다는 증거로 제시하는 것이 바로 교회생활의 규범을 들어서 기준을 정한다는 것입니다.
주일 성수 잘함, 십일조 빠지지 않고 냄, 기타 모든 헌금을 잘 내고 있음, 교회에서 이런 저런 봉사 열심히 함, 기도생활도 반듯하게 잘함, 목사님 대접도 최고로 잘함, 교회에 일이 있을 때마다 손 걷어 부치고 나와 봉사함. 이 정도면 믿음이 최고의 수준에 오른 사람일 것 입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믿음과는 전혀 상관없는 또 다른 믿음의 기준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강대상에서 설교를 통해 주입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진짜 믿음이고 믿음의 사람의 모습이자 삶인지 알고 행하고 살았습니다.
성경에서는 그렇게 완벽하게 교회생활에 중독된 사람들을 믿음의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고 바리새인이라고 부릅니다. 물론 바리새인이란 말은 그렇게 나쁘게 사용하는 말이 아닙니다. 자신의 종교에 매우 열심히 특심한 사람들이며, 종교를 지키기 위해 투쟁과 정부 봉기를 시도하기도 했던 실로 대단한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배운 것들은 우리가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종교를 지키기 위해 투철하게 훈련받은 바리새인들 같은 사람들이 되도록 양육 받아진 것입니다.
믿음은 터무니없는 가상이거나, 어떤 봉사의 필요거나, 열심이라는 것으로 포장되는 그런 값싼 이름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정말 믿음의 사람이 되려고 한다면 지금의 교회라는 괴물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안전한 온실에서 보호 속에 자라고 그 속에서 꽃피고 열매 맺는 사람이 아닙니다. 믿음은 온실에서 잘 관리된 체로 자라는 한 송이 국화꽃이 아닙니다. 믿음은 그 온실을 나와야 비로써 믿음이 시작됩니다. 그렇다고 목사인 저를 무교회주의자로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그렇다고 저를 교회를 비판하는 사람으로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저 역시 누구보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고 그 교회가 진정한 교회로 회복되길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는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언제부터 누구로부터 우리의 믿음이 교회 안에 갇혀 버리고 교회의 하수인이 되어버렸냐는 것입니다. 믿음 때문에 죽기도 하고, 믿음 때문에 핍박과 고난과 자신의 전부를 내어주고 자식과 부모가 처형을 당해도 그 믿음 잃지 않기 위해 살아왔던 믿음의 선진들의 함성과 그들의 피는 온데 간데 없어진 체 말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바라고 있습니까? 천국입니까? 그럼 그 천국을 지금 당신의 삶에서 살고 계십니까? 그것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은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장차 내가 갈 그 소망의 나라를 바라보고 삽니까? 그 소망의 나라를 보고 계신 분들은 지금 당신이 살고 있는 삶 속에서 그 나라를 자랑하고 그 나라를 말하고 그 나라를 증거하는 사람이 되야 합니다. 그 사람이 바로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 영원한 나라가 내 앞에 있는 것을 보는 사람은 작은 것에, 이 땅의 것에, 내가 좀 손해 보는 것에, 사람들이 나를 향해 하는 말에 의해, 속상해 하고, 연연하고, 집착하고 살지 않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내가 믿은 그 믿음이 옳고 바른 것이라는 이유 때문에 고난에 내몰리고 핍박을 받기도 하고, 교회로부터 따돌림을 받기로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좋다는 것은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이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눈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보고 어렵게 살라고 하시면 기쁨으로 어렵게 살아야 하고, 너의 것을 다 내어 주라 하시면 감사함으로 그렇게 행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나는 네가 필요하다 하시면 서슴없이 나를 그분을 위해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계산하지 않습니다. 재지 않습니다.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의로 여겨주셨다고 하셨습니다. 믿음이 의를 만듭니다. 믿음은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의롭게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즉 믿음은 삶을 의롭게 만들어 줍니다. 의로운 삶이 되도록 이끌어 줍니다.
그래서 그 의인(믿음으로 의롭게 살아가는) 50명만 있어도 소돔이 멸망을 당하지 않을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믿음으로 의롭게 살아가는 사람이 50명도 그 성에 없었습니다.
결국 수많은 인구들 중에 10명의 의롭게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을 찾을 수 없어서 그 성은 하나님의 불의 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도시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막아서 줄 사람, 믿음으로 의롭게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입니까? 하나님께서 이 도시에서 믿음으로 의롭게 살아가는 사람을 찾으신다면 여러분 때문에 이 성이 심판을 모면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여전히 여러분의 믿음을 교회라는 새장 안에 가둬두고 산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결코 건강한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 믿음을 새장을 열고 날려 보내십시오.
이제 좁은 사고 속에 가둬주지 말고 안전한 곳에 숨어 믿음의 지키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런 것은 지킬 가치도 없는 것이고 믿음이 아닙니다.
이제 여러분의 믿음을 들고 나가십시오. 세상으로, 현장 안으로, 일터로, 때론 다시 교회 안으로 그리고 그곳에서 경험한 여러분의 믿음을 증명하십시오.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인지를 증명해 보이십시오.
여러분이 당하고 있는 어려움 앞에서, 환란과 모욕과, 수치와 낙심가운데서, 여러분들이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과 가족과의 관계 안에서 그 믿음이 빛을 발하고 그 상황들이 여러분을 진정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완전하진 않지만 그래도 가장 적당한 지금 이 시대의 연단과 핍박이기 때문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939/0812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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