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칼럼> 갈등하고 계십니까?

최래원목사 / 올랜도 선한목자교회 담임
심리학자 융의 말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기 내면의 상반된 요소들끼리 갈등하는 것을 견뎌낼 수 있다면 즉 감정에 휘둘림 당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바라볼 수 있다면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그의 심원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사람은 누구나 그것이 크던 작던 갈등이란 심적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갈등은 감정의 영역에서 비롯됩니다. 갈등을 겪는 대부분은 그 갈등을 담는 감정의 상자에 무엇인가 자극적인 요소가 유입된 것입니다. 그러면 감정은 그것을 강력하게 보호하려는 본능을 발휘합니다. 감정이 내 안에 들어온 갈등을 보호하면 강력한 자아 본능이 발동을 하기 때문에 갈등은 그 감정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융이 말한 대로 갈등이 내 안에 들어오더라도 그 갈등을 보호하려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을 바라봐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해답을 알고 있지만 일단 갈등의 요소가 내 안에 자리잡으면 그것으로부터 오는 안정감의 쾌감을 맛보고 싶어합니다.
한동안 갈등이 주는 재미에 빠지는 것입니다. 우울증을 즐깁니다. 무력감에 잊고 싶어합니다. 만사가 귀찮아 아무것도 하기 싫어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사람들은 해답을 알고, 어떻게 하면 그곳에서 나올 줄도 알면서도 나오려고 시도하거나 별로 노력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난 상처받았다. 누구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는데…… 그 사람이 내게 이런 갈등을 주지 않았다면 이럴 일도 없었을 텐데……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조금만 우리가 알고 있는 해답의 방향 쪽으로 한 걸음만 걸어가 보면 우리가 조금은 잘못된 방향으로 우리의 필요를 조금은 억지로 끌고 간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갈등이 혹 방향을 바꾸는 문제가 된다면 그것은 갈등이 주는 기회와 축복을 아주 좋지 않는 상황으로 변질시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결국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은 갈등을 끌어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갈등의 요소와 계속 우리가 가려는 길을 향해 걸어나가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화도 나고, 분을 가라앉히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좀 귀찮고 무거움마저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갈등을 안고 내가 가는 길의 방향을 향해 걸어가다 보면 갈등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되고, 그 갈등이란 것으로 인해 내가 많이 달라져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깊은 심원 즉 영의 속삭임으로부터 온전한 내 자아, 정체성이 회복되고, 발견하게 되면 그 갈등은 자연스럽게 사라져버리기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보다 나 자신을 존중해주고 사랑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받아야 하는 것이 존중이라고 합니다.
부모로부터 “아니고 네 예쁜 자식” 이란 말을 들으면서 우리 안에는 자존 감이 형성됩니다. 누구나 사랑 받고, 존중받고 싶어합니다. 그렇지만 그 존중과 사랑의 시작은 바로 나로부터 시작 되야 합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존중하지 못하면 누구에게도 그런 존중과 사랑을 기대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존중 감은 사람의 가장 깊은 곳에 자라잡고 있고 가장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나를 인정해주고 존중해주는 사람에게는 훌라당 빠지지만 반대로 나를 무시하는 사람은 죽이고 싶도록 미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민사회는 과거 후퇴형 유형이 많습니다. R. T 켄달 목사님의 책 “기름 부으심”에 보면 “많은 사람들은 어제의 기름 부으심으로 살고 있다” 라고 했습니다.
이민 사회의 많은 분들이 그런 모습으로 살고 계신 분들이 의뢰로 많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어떤 위치와 권력과 힘을 가지고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나 이미 현재 부으시는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이 멈춰버린 상태의 삶. 그래서 항상 과거 이야기에 멈춰서 있고, 예전에 내 삶이 어떠했는지만 말하고, 그땐 이랬는데의 과거형 언어만 쓰시는 분들을 말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내 삶에 일하시고 계시는 흔적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지금 부르시는 신선한 기름 부으심의 흔적은 온데 간데 없습니다. 물론 앞으로 하나님께서 하실 일에 대한 기대감 내지는 소망과 바램도 물론 없겠지요! 성경은 어제의 기름 부으심으로 살지 말고 현재의 기름 부으심에 충실하고 미래를 꿈꾸며 살라고 가르칩니다. 이것이 성경적 사고입니다.
저는 참 많은 실패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저를 이곳에 세워 주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고 설명할 것 외에 달리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실패가 주의한다고 오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주의하면 약간의 실패를 줄일 수는 있지만 실패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실패보다 더 무서운 것이 좌절감입니다. 좌절감은 항상 실패와 함께 옵니다.
좌절감은 자포자기, 연민, 심지어는 자살로 발전하게 됩니다. 여러분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이 지구상에 사는 모든 사람이 만난 골리앗입니다. 그러나 그 골리앗도 다윗이 던진 돌 하나로 거뜬히 넘어트리고 넘을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좌절감의 방문에 문을 쉽게 열어 주는 것입니다.
좌절은 내가 더 이상 붙잡을 것 이 없다고 여길 때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실패에도 아직 내가 붙잡을 무엇인가가 있다면 좌절에게 쉽게 문을 열지 마십시오. 바로 여러분이 좌절 앞에서 붙잡아야 할 분께서는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결코 좌절할 수 없습니다.
바로 그 시간이 여러분의 인생의 문 앞에 서 있다면 아직 그 문을 열어주지 마십시오. 그리고 오래 전 사용하고 일하고, 바쁘고, 아이 키우고, 돈 버느라, 시험 들어서 저 장롱 깊이 넣어 두었던 하나님을 다시 꺼내십시오. 그리고 여전히 여러분을 사랑하는 그분을 의지하고 붙잡으십시오. 그러면 좌절이라는 불청객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게 되고, 희망의 방문객이 여러분을 찾아올 것입니다. <938/0806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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