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칼럼> 양을 위한 목자냐! 목자를 위한 양이냐!

최래원목사 / 올랜도 선한목자교회 담임
닭이 먼저일까요? 달걀이 먼저일까요? 이 명제에 대해서는 항상 두 가지 의견이 팽팽히 대립하고 결론을 내지 못합니다. 사실 성경적인 답은 닭이 먼저입니다. 성경에는 서로 다르지만 항상 함께 있어야 하는 수수께끼 같은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양과 목자입니다. 이 둘은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불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 관계가 약간은 곡해되어 설명되고 있는 듯합니다. 특히 오늘날 교회는 목자를 위한 양의 필요가 더 많아진 것 같습니다. 양들의 존재가 목자를 먹여 살리고, 목사 뒷바라지하는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아 진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양과 목자의 관계가 누구 먹여 살리고, 뒷바라지를 위해 존재하는 관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곳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양들이 있기 때문에 그 양들을 위해 목자를 세우시고 채용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기 때문에 모세를 준비시키시고 세우신 것입니다. 모세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요10장 오늘날 목자들에게 심각하게 생각해 보게 하는 말씀입니다. 목자는 양들에게 문을 열어주는 사람이 되야 한다고 합니다. 그들이 들어올 수 없도록 문을 닫아 잠궈 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그 앞에 걸림돌을 제거해주고, 걸려 넘어 질 수 있는 것들을 치워줌으로 양들이 안전하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들이 목자라고 말합니다.
목자들은 주인이 아니라 채용된 사람들입니다. 양들로 하여금 주인(선한목자)의 음성을 듣도록 주인과 양들 사이에 어떤 장애물이나, 벽이 없도록 해주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주인은 우리의 이름을 모르시는 것이 없으십니다. 우리의 사정과 형편과 마음의 아픔과 고통의 소리까지 다 알고 계신 분입니다. 그분은 우리와 이미 인격적인 깊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양들은 어떻게, 어디로 인도해야 할지를 알고 계신 분입니다. 그분이 인도하는 곳은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입니다. 우리는 그분이 인도하시는 곳에서 쉼을 얻고, 안식과 위로를 얻게 됩니다. 물론 배불리 움도 입게 되지요
놀랍게도 목자는 양들 앞서 가신다고 합니다. 모범을 보이시는 분입니다. 앞의 장애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 앞의 장애들을 치워주신다고 말합니다. 앞에 있는 적들을 양들을 대신해 싸워주신다고 말합니다. 절정은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곳에 이르게 됩니다. 이곳에 이르면 전적으로 희생과 헌신된 사랑이 양과 목자 사이를 연결하는 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은 온데 간데 없어져 버렸습니다. 강단에서는 그렇게 말하는데 실제로는 양들은 목자들의 후원 그룹 정도, 목자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정도로 변해 버렸습니다. 목자들은 마치 자신이 나온 좋은 목자 양성소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그 졸업장을 내 밀면 양들은 감지덕지하고, 그 속내가 어떻든, 영혼의 상태가 어떻든, 그 경건의 상태가 어떻든, 양들을 향한 목자의 마음이 어떻든, 아랑곳하지 않고 채용을 합니다. 우수한 성적순으로 말입니다. 그 결과는 우스운 꼴 나는 것입니다. 결국 양들은 목자에게 희생되고, 소비되고, 양들은 점점 말라가고, 먹을 것을 먹지 못하고 잠 한번 편히 못하고, 기쁨도 없이 목자의 필요로 전락해 버리고 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양들을 위해서 목자를 준비시키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양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목자셨습니다. 양들은 그분을 버리고 제 갈 길로 다 도망갔지만 그래도 그분은 자신을 버린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 분입니다. 양들이 뭐라 해도, 어떻게 들이받든, 내 맘에 안 들어도, 정말 마음 같아서는 확 잡아 팔팔 끊는 물에 넣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양은 양입니다. 여전히 목자의 돌봄과 사랑과 희생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일 뿐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목자였으면서도 또한 자신이 양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양을 돌보고 키우면서도 자신은 목자 되신 하나님 앞에서 여전히 철부지고, 함부로 굴고, 자기 잘났다고 천방지축인 양이었습니다. 그 양들을 보면서 내 평생 저런 천방지축인 양은 처음 보네! 그렇게 말하는 바로 그 양이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을 때 목자는 겸허해지고, 분수를 알게 되고, 들이받는 양들에게도 끝까지 그들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혹 지금 목자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여러분들도 목자이기 전에 양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에게도 목자가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이 목자 되신 주님께 더 가까이 더 바짝 따르고 그 곁에 있지 않으면 여러분도 먹이감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는 양이라는 사실입니다.
매 순간 그것을 잊지 말아야 여러분들에게 맡겨주신 양들에 대해 한 순간도 소홀히 대하거나, 나 싫어한다고 발로 차버리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팔아버리는 삯꾼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양들이라면 여러분들은 평생 양으로만 살지 않는 다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어느 순간, 생각지도 않고, 예정에도 없던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바로 목자(목사가 아닙니다)가 되도록 부르시는 것입니다.
가정의 목자로, 구역의 목자로, 한 공동체의 목자로, 교회의 목자로 여러분들이 양들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도록 부르실 때, 결단코 삯꾼 목자가 되지 않기 위해 목자를 잘 따르십시오, 목자의 영을 몸으로 배우십시오. 나만 위하는 삶에서 주변의 다른 사람을 돌보고, 챙기고, 연약하고 도움이 필요한 자들의 도움이 되고자 하십시오. 그들의 고통을 들어주고, 감싸주십시오. 그 어떤 사심도 없이 말입니다. 여러분이 양으로 있을 때 목자의 영이 개발되는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좋은 문지기가 되거나, 좋은 목자가 되지 않습니다. 신학교에서 선한 목자가 되는 훈련을 시켜주지 않습니다. 목회자들이 선한 목자가 되도록 서로 서로 코치와 멘토가 되어 주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양으로 있을 때 목자가 될 자질이 개발됩니다. 내 필요, 내 요구, 나만 봐주고, 내 말만 들어주고, 나에게만 관심을 가져주라는 양은 목자가 되면 특별한 은혜의 과정이 없는 한 100%삯꾼 목자 됩니다.
아! 예, 그런 분들은 평생 양으로 사십시오. 목자 중에서 그런 분들이 있다면 고치려는 고통의 시간을 원치 않는다면 목자의 직무를 버리고 양이 되십시오. 그것이 당신을 보호하는 유일한 길이고, 양들을 위험에 빠트리지 않게 할 수 있는 최선책입니다. 양은 목자의 돌봄을 필요로 하지만 목자는 반드시 양들을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양이 없는 목자, 양들이 따르지 않는 목자는 더 이상 목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927/0514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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