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4월을 맞으며……..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길고도 긴, 그리고 잔뜩 우리의 몸을 움츠러들게 하고 마음조차 얼어붙게 했던 지루했던 겨울이 떠나갔다. 작년 12월이 시작되며 겨울은 기다렸다는 듯이 지난3월까지 위세를 떨치며 눈 폭풍은 물론 한파를 동반하고 많은 사람들을 질병에 시달리게 하며 지치고 힘들게 만들었었다. 이제 그 지겹고 생각하기조차 싫은 추운 겨울은 지나가고 꽃피고 새우는 봄, 4월이 되었다.
우리는 4월을 흔히들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말한다. T.S엘리엇의 시(황무지)의 첫 구절에 나온 이 말이 귀나 입에 익혀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찾아온 이 4월달은 희망의 달이고 생명을 창조하는 생동의 달이기도하다. 인디언의 달력에는 4월은 ‘생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달’이라고 예찬하고 있으니 생명의 달이고, T.S엘리엇도 그 시에서 곧이어 ‘4월은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고 노래했으니 희망의 달이다. 영어로 3월을 마치(March)라고 한다. 마치는 행진한다는 뜻도 된다. 웨딩마치(Wedding March)처럼 3월이 봄의 행진의 서곡이었다면 4월은 봄 내음이 농익은 아름다운 달이다. 그래서 움츠렸던 가슴을 활짝 펼 수 있어 일년중에서 가장 활기차게 자기의 일을 열어갈 수 있는 전환점(Turning Point)이기도하다. 일년 열두달 중에 나는 유독 이 4월을 좋아한다.
만물이 생동하고 얼었던 동토의 땅에 새기운이 솟아나는 달이어서도 좋고 이 달은 내가 태어난 달이기도 하여 좋다. 매년 4월은 기독교의 축제인 부활절이 있다. 이교도(異敎徒)나 무종교자들은 부활의 기적을 믿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자 세상과 인간을 사랑하는 조물주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께서 인간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서 부활하신 놀라운 불가사의의 역사적 증거이다. 그러기에 이 4월은 죽음을 넘어선 부활로서 희망이 한층 가깝게 느껴지는 달이기도 하다. 이제 4월의 꽃들인 벗꽃과 진달래, 개나리, 유채꽃은 만발할 것이며 뜰 앞에서는 목련이 수줍은 듯 그 자태를 뽐낼 것이고 향기로운 라일락도 우리들 코끝에 우거지리라.
지난 4개월간의 회색빛 우울증을 걷어버리고 이제 우리 다함께 기운차게 불러보자. 참으로 좋은 봄의 계절 4월을…….
먼동이 터오듯 아련한 봄기운을 잔설과 함께 간직한 3월과 계절의 여왕인 5월 사이에서 무덤덤하고 별의미 없이 비쳐질지도 모르는 이 4월은 어느 때는 예고 없이 찾아오는 꽃샘추위도 견뎌야하고 5월을 계절의 여왕으로 내세우려고 부단히도 애를 쓰고 수고로움이 숨겨진 4월이기도 하다. 아지랑이가 흥에 겨워 대지위에서 춤을 추며 나른한 봄 햇살에 오수를 유혹하는 따사로운 햇살도 향기처럼 달콤하다. 바람결에 실려 오는 4월의 흙내음과 풀내음이 싱그럽다. 폭풍한설, 엄동설한에 온몸을 내놓고 떨고만 지냈던 나목과 이름 모를 풀잎들이 이제는 하나씩 둘씩 고개를 들며 수줍게 생명의 환희를 꽃피운다.
4월을 피워내는 꽃들은 지순하고 순정하며 살갑기 그지없다. 아직은 뜨겁지 않은 바람결 탓에 신선한 표정으로 순박한 꽃내음을 흘리며 꽃잎들은 온누리, 이 세상을 향내에 취하게 하
고는 멀리서 다가오는 5월을 향하여 손짓을 보내고 있다. 4월의 속내를 좀더 깊이 들여다보면 모태(母胎)가 썩어야 새싹이 돋아나는, 조금은 잔인한 것 같은 그 자연의 순리 속에 생명을 이어가는 사랑의 미학이 숨겨져 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면 자연은 봄비를 내려 땅을 녹이고 따사로운 햇살을 비춰 땅속에 숨어 잠든 씨앗을 깨운다. 씨앗은 새싹을 틔워 자신의 몸은 자양분으로 내어주고 새 생명은 그 자양분으로 인하여 탄생된다. 죽어버린 것 같은 마른 나뭇가지에도 물이 오르고 새잎이 돋고 꽃이 피는 것 역시 가을에 떨어졌던 나뭇잎들이 썩어서 자양분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4월의 자연 들녘에 새 생명의 숨결이 가득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모태가 썩어 내어주는 양분으로 돋아나는 자연의 순리 때문이다. 그것은 결코 암울하거나 잔인하지도 않다. 죽음이 있었지만 더 많은 생명을 피어냈기에 불행하지 않다. 오히려 후세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는 사랑과 희생의 극치인 것이다.
이 땅에 존재하며 살고 있는 생명체들은 누구나 다 같은 과정을 밟는다. 그것이 길섶의 작은 풀꽃이건 연약하기만한 작은 벌레의 생명체이건 또는 사람이든, 모태로부터 양분을 받아 어엿한 생명체로 성장하고, 양분을 다 내어준 모태는 빈껍데기만 남게 되는 것이다.
희생이 없이는 생명도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자연의 순리이다. 그러므로 그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사는 것이 불행을 피해 행복만을 느끼며 사는 지름길이다. 오늘 내가 직장이나 사업장에서 힘들게 일하며 분투하고 노력하는 것은 나에게 피로를 주고 괴로움만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 가족에게 행복을 안겨주는 것이다. 4월이 왔다. 봄햇살 나부끼는 자연의 동산을 걸으며 파랗게 솟구치는 작은 생명들과 울긋불긋 꽃을 피워내는 초목들을 바라보자. 썩어지는 희생의 터위에 활짝 웃는 꽃을 피어낼지언정 슬프거나 불행한 기색은 결코 하지 않는 초목들을 바라보자. 다람쥐 체바퀴 돌듯, 매일매일 번복되는 일정 속에 권태와 괴로움으로 한숨만 쉰다면, 내 삶을 내가 사는 것이 아님을 실감하면서 어쩌면 이 4월은 불행하고 우울한 달이 될지도 모른다.
타인으로부터 무언가를 받으려고만 하는 기대심리에 사로잡혀 정작 자신은 사회와 직장에 거름이 되지 못한다면 엘리엇의 시처럼 4월은 잔인한 계절로 끝날 것이다. 하지만 잠시라도 시간을 내어 작은 풀꽃과 나무들의 새잎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서로 밑거름이 되어 대물림하는 생명의 순리와 자연의 법칙을 배워간다면 4월은 아름답고 행복한 달이 될 것이다. <myongyul@gmail.com> 923/0408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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