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잘 사는 것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옛날 박정희대통령시절 “잘 살아보세”라는 노래가 새마을운동과 더불어 한국의 방방곡곡에 울려 퍼진 적이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잘살기를 원하고 바란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욕구가운데 하나는 잘사는 것이다. 그런데 잘사는 것은 무엇일까? 흔히들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사는 것을 잘산다고 생각한다. 오늘날같이 자본이 주인이 되는 물질주의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돈이 최고의 가치가된 이상 잘 산다는 것은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이며 돈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많이 벌고 많이 소유하면 진정으로 행복하고 평화로울까? 자유로울까? 대답은 한마디로 아니올시다 이다.
성경 말씀에 보면 어느 부자청년 한사람이 예수님에게 영생을 얻는 길을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네게 있는 모든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자들에게 주라” 그리고 나서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 하지만 그 사람은 재물이 아까워서 예수님의 뒤를 따르지 못했다고 전한다. 그러므로 많이 가졌다는 것이 잘 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재물 때문에 잘사는 길을 가지 못하게 되었다.
얼마 전 내가 적을 두고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이 설교시간에 잘산다는 것은 부의 축적이나 재물이 많은 것이 아니라 기쁨이 많은 것이 잘사는 것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 한 예로 어느 부자한사람이 친한 친구의 집을 방문했는데 그 집은 돈이 없고 가난했지만 가족 간에 정과 사랑이 넘치고 서로를 아끼며 잘못이 있을 때는 그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자기의 탓으로 돌리며 이해하고 용서하는 모습을 볼 때 “아~이것이 진정 잘사는 참모습이로구나”하고 느끼고 집에 와서는 자기중심적으로 권위를 세우고 남들 위에 군림하면서 재물을 모으기에 욕심만 냈던 자신을 반성하고 되돌아보며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 이후로 자기가 가진 많은 재산을 이웃이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남들과 더불어 이타심으로 자선을 베풀며 살다보니 주는 기쁨이 오히려 받는 기쁨보다 더 보람 있고 즐거워서 평생을 베푸는 삶과 인정 속에 기쁘게 살았다고 한다.
어느 사람이 잘산다고 하면 사람들은 으레 그 집의 평수가 넓고 돈이 많은 부자로 살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잘산다고 할 때 설령 경제적으로는 넉넉한 부자일수가 있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 말하자면 그 집이 부자라는 것이지 잘 산다고는 단정할 수 없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잘산다는 것과 부자로 산다는 것이 동의어로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사실적 판단과 견해로 구분해서 말하자면 잘산다는 것과 부자로 산다는 것은 동의어가 아니다. 세상 사람들은 물질만능주의, 물신주의에 빠져있기 때문에 부자로 사는 것을 잘사는 것으로 착각하고 알고 있다. 그렇다고 가난하게 사는 것을 잘사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인 경기침체에 취업난과 경제난으로 못살겠다고 아우성치는 그 이면에는 언제나 경제적인 어려움이 내포되어있다. 즉 경제적인 부유함이 잘사는 기준이 될 수 없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못사는 것의 지표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최근 우리들의 사회를 보면 웰빙이 뜨고 있다. 현대사회는 가히 웰빙 신드롬이라 할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붐이 일기 시작한 웰빙바람은 이제 하나의 사회적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그것은 새로운Life Style을 반영한 새로운 이 시대의 문화코드이다. 즐겁고 건강하게 잘살자는 모토아래 이른바 웰빙족들은 요가와 명상, 아로마 테라피, 스파, 피트니스, 스킨케어, 뷰티케어, 유기농산물, 등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웰빙이란 무엇일까? 웰빙은 Well(잘)being(삶), 즉 글자그대로 잘산다는 것이다. 잘사는 것은 건강하게 사는 것이다. 건강한 삶이란 단순히 질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다는 것만이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한 웰빙의 상태라고 정의한다. 즉 건강한 삶이란 육체나 정신뿐만이 아니라 인간이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회까지도 온전해야 비로소 성취될 수 있음을 뜻한다. 환경이 파괴되거나 훼손되고 사회가 온갖 불의와 악으로 오염된 곳에서 나 혼자만 건강하게 잘살지는 의문이다. 오염된 물에서 자라는 물고기가 건강할 수 없듯이 오염된 사회에서 개인의 건강을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몸과 마음, 사회, 이 3가지의 완전한 조화로움이 웰빙의 전제조건이다. 비싼 돈을 들이더라도 몸에 좋은 유기농산물과 건강식품을 먹고 여가시간엔 헬스클럽에 나가 몸을 풀고 명상센터를 찾아가 정신을 수련하는 ‘양질’의 삶을 살라고 자본은 끊임없이 부추긴다. 어느 사람이 이러한 조건의 삶을 마다하겠는가? 그렇지만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저소득 빈곤층에게 이러한 웰빙은 공연히 사람을 주눅 들고 피곤하게 만드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웰빙이 돈 많은 호사가들의 고급취미나 과시적 소비에 그친다면 그것은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하는 또 하나의 값비싼 상업 문화일 뿐이다. 흔히 말하듯이 잘 먹고 잘산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현대사회에서는 수많은 종교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나 혼자만 잘 먹고 잘 살자는 교가 가장 강력한 교세를 펼치면서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잘사는 것이 개인의 이기적 욕망의 충족에만 치중한다면 반쪽만의 불구적인 웰빙이 될 것이다.
개인의 건강에서 사회의 건강을 생각하고 개인의 몸과 마음에 한정되는 소극적인 웰빙에서 사회적 건강까지도 생각하고 실천하는 적극적인 웰빙으로 나가야한다.
나 홀로의 웰빙에서 이웃의 웰빙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곳에 개인과 사회, 자신과 타인의 조화로운 삶속에 진정한 의미의 웰빙, 즉 잘살 수 있는 삶이 존재할 수 있다. <myongyul@gmail.com> 916/0219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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