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새벽영성 – 영혼의 근육을 단련하자

최래원목사 / 올랜도 선한목자교회 담임
높이 나는 새가 더 멀리보고, 일찍 일어나는 새가 더 많은 먹이를 얻습니다. 새벽을 가로질러 가다보면 간혹 제가 감탄과 탄성을 자아내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새벽 예배를 위해 집을 나설때 면 저보다 먼저 잠에서 깨어 운동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이른 새벽부터 달리는 사람들의 움직임과 호흡이 아직 잠에서 떨 깬 저의 심장을 깨워줍니다.
그 시간이 가장 깊은 꿀잠을 잘 시간이고, 밤새 뒤척이던 사람도 그 시간이면 숙면을 취하는 데 “어떻게 저렇게 일찍 일어나 자기 몸을 관리하기 위해 운동을 한단 말인가?”놀랍니다.
각자의 이유와 사연이 있겠지만 아무튼 자신의 몸을 위해 이처럼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 새벽을 가르고, 자신의 근육을 단련하고, 건강을 위해 잠을 깨트린다는 것이 나에게 탄성을 자아내게 합니다.
새벽은 새벽을 깨우는 자의 것이 됩니다. 그 시간을 잃어버린 시간이 아닌 무엇인가로 자신을 채우는 시간, 단련의 시간으로 보내는 사람들의 삶 그 자체만으로도 나를 자극하기에 충분합니다.
매일 새벽시간에 일어나야 하는 목사인 저로서도 때론 고단하고, 힘들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럴때면 조금 게을러지기도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새벽에 집을 나설 때면 어김없이 제 차 앞에서 뛰고 있는 사람들의 숨가쁜 호흡이 저를 상당히 부끄럽게 합니다.
목사인 저 자신이 새벽을 깨우고 하나님의 임재 앞에 먼저 나가지 못하고 마지못해, 의무적으로, 목사니까 해야만 하는 업무로 생각한다면 그 새벽에 고단한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하루의 첫 시간을 가장 먼저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몰려드는 성도들의 영혼은 어떻겠습니까? 와, 정신이 확 듭니다.
새벽 영성가를 찾으라면 단연 다윗을 꼽을 수 있습니다. 다윗은 새벽을 깨웠던 원조 영성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누구도 시작하지 못했던 새벽의 어둠을 기도로, 찬양으로, 말씀으로 깨버렸던 사람입니다. 시57편은 바로 새벽 영성가의 진수를 보여주는 시편입니다. 그도 자신의 새벽을 깨우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한번 그 새벽의 은혜를 맛본 후 결코 다시는 그 새벽을 자신의 생애동안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더 쉬고, 더 잘 수 있는 시간, 잠을 잔다고 누가 뭐라고 할 사람도 없습니다. 그 시간은 내가 무엇을 하던 나에게 주어진 나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생각을 전환시켰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 시간을 쪼개버렸습니다. 반 토막을 내 버린 것입니다. 잠자고 있던 자신속에 꿈틀거리는 모든 잠재의식을 벗어나고자 했습니다. 그의 인생에 찾아온 가로막혀버린 통로들, 잠자는 내면을 경건한 영성으로 바꿔버렸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황이 어렵고, 문제가 발생하고, 갑자기 많은 일들이 자신에게 몰려오면 만사가 귀찮아지고, 근육에서 힘이 빠지고, 의욕을 상실하고, 영적 욕망도 시들해집니다. 우리는 그것을 영적인 침체라고 부릅니다.
어떤 분의 기사를 본적이 있다. 갑자기 자신에게 찾아온 암을 이기기 위해 나이 들어 자전거 타기를 시작했다가 미국 횡단길에까지 도전하게 된 내용입니다. 또 어떤 분은 암에 걸려 조깅을 시작했는데 이젠 조깅 마니아가 되어버린 분의 이야기입니다. 습관은 길들이기 나름입니다. 좋은 습관은 좋은 행동과 결과를 만들어 줍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좋은 습관을 많이 가져야 합니다 .
새벽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간이지만 그러나 아무나 그 시간을 자신의 영성의 시간으로 바꾸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몸을 만들고 건강을 위해 잠을 포기하고, 일어나 조깅과 걷기는 하지만 진정 영혼의 영짱이 되는 일을 위해 우리는 그 새벽을 어떻게 쓰고 계십니까?
사람들의 말처럼 앞으로 죽으면 평생 잘텐데 덜자고 새벽에 더 일찍 일어난다고 무슨 문제일까만 그 습관이 쉽게 몸에 배지 않아 안타까워합니다. 새벽을 깨우는 영성은 새벽을 깨우고 일어나는 사람만이 발견하는 깊은 산속 옹달샘 같습니다. 아무도 와서 먹지 않은 밤새 솟아난 가장 맑고 시원한 영혼의 양식으로 가득 채워진 그 옹달샘의 생수를 마실 수 있는 특권을 과연 누가 얻을 수 있겠습니까?
이 새벽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하루의 삶이 달라지고, 여러분의 하루가 결정될 것입니다. 이 시간은 단순히 하루를 평안히 산다는 것을 넘어 하루종일 여러분의 영혼이 굶주림 없이 살 수 있는 축복의 시간입니다. 2014년 새해를 어떻게 보내고 계십니까? 새벽영성을 한번 회복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910/1230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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