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 |
부드러운 봄바람이 산과 들에 연둣빛 세상을 어루만지며 화사한 봄빛이 피어나는 봄, 우리들 마음에도 꽃이 피어난다. 봄바람, 꽃바람, 따스한 바람이 수줍은 미소로 우리를 감싸주고 있다. 우리들 인생에도 시들지 않는 행복의 꽃바람이 피어났으면 좋겠다. 뾰족 뾰족 삐져 나온 새순은 가느다란 나뭇가지 끝에서 연초록색 이파리로 변해 나래를 펴고 군무를 이루어 조화로운 물결이 되어 봄바람에 춤을 추고 있다.
봄은 사랑을 약속하는 것처럼 따스하고 감미롭지만 짧다. 꽃이 피어나기 무섭게 떨어지고 그 자리엔 새로운 각오의 새싹이 자리한다. 인무십일호(人無十日好)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인데 월만즉휴(月滿卽虧)이니 권불십년(權不十年)이니라. 라는 말이 있다. 이 뜻을 해석하면, 사람의 좋은 일은 십일을 넘지 못하고 붉은 꽃의 아름다움도 10일을 넘지 못하는데 달도 차면 기우니 권력이 좋다한들 10년을 넘지 못하리라. 즉 우리들 인생사는 좋은 일이 끝까지 영원한 것이 없으니 항상 분수에 맞게 살고 권력이 있다고 뽐내지 말고 겸손하라는 말이다. 또는 모든 예쁜 여자도 나이가 들면 아름다움이 사라지니 지금 자기의 미모가 예쁘다고 너무 자랑하지 말라는 뜻도 내포돼있는 말이다. 우리들 주변에는 지금 아름다운 꽃들이 한창 피어나서 그 자태를 뽐내고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이 꽃들이 아무리 아름답다 하더라도 며칠이 지나고 얼마 못 가서는 모두가 꽃잎이 떨어져 지고 말 것이다. 져가는 꽃잎을 보면서 우리들 인생도 하나의 일장춘몽(一場春夢)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한바탕 꿈을 꿀 때처럼 흔적도 없는 봄밤의 꿈이라는 뜻으로 우리들 인간세상의 덧없음을 비유해서 표현한 말이다. 산다는 것이 덧없고 부질없는 한마당의 꿈임은 우리가 이 무한한 우주 속에서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가를 생각해봐도 금방 알게 된다. 이 무한한 시공 속에서 나 또한 엄청난 권력과 재력가의 존재 또한 별것 아니다. 이 세상에서 영원토록 나의 것이 되고 내가 끝까지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 몸도 내가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영혼이 깃들어 있는 동안 사용하다가 한줌의 흙으로 자연에 돌려줘야 하는 것이다. 나의 육신도 내 것이 아니거늘 입는 것, 먹는 것, 사는 집과 땅덩어리는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내 모든 소유물은 자식에게 물려주면 그 자식이 영원토록 소유할 수 있을까? 제사도 지내주지 않을 것이고 내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할 10대, 20대 후손들이 나의 재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겠는가?… 우리는 권력자의 자살도, 엄청난 재력을 소유했던 이의 자살도, 또 영원할 것 같은 국제나 대우 같은 재벌기업들의 몰락도 보았다. IMF라는 단 하나의 풍파에서도 어제의 재력가가 바로 노숙자신세가 되어졌고 벤처 열풍을 타고 빈털터리가 순식간에 수천억 재산가가 되기도 했다. 순간에도 이렇듯 변화가 심하고 굴곡이 반복되는데 이 세상에는 과연 영원한 것이 있을까?…… 부동산은 영원할 수 있겠는가? 3~40년 전 부동산의 폭등을 예견 못했듯 몇 년 전의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경제 불황으로 부동산가치의 폭락의 변화를 누가 어찌 예견할 수가 있었겠는가? 인구가 늘어나고 통치철학이 바뀌면 그 또한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부동산 불패신화를 꿈꿨던 일본과 홍콩의 부동산몰락을 우리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목격해왔다. 우리의 부동산인들 영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공자는 인(仁)을 말했고 석가모니는 대자대비(大慈大悲)를, 예수님은 사랑을 말했다. 사랑은 날개를 꺾어서 내 곁에 두려는 나의 세계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자유롭게 날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의 세계를 지켜주는 배려다. 사랑은 나눔이고 실천이다. 돈이 주인이 아닌 사람이 주인이 되는 세상, 사람과 사람의 사이가 시기와 질투, 억누름이 아닌 사랑으로 하나가되는 세상을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이봄에 피어나는 저 아름다운 꽃이나 청순한 모습을 띄고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새싹과 잎순처럼 우리들마음도 이처럼 아름답고 고우며 지순한 마음가짐으로 욕심 없이 싸우지 않고 착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회에서나 기업에서나 어떤 일을 잘했을 때 그 사람에게는 상을 준다. 잘하는 사람은 격려를 받으면 더 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일을 잘못했다고 해서 너무 질책을 하거나 벌을 주어서는 안 된다. 일을 잘못했다는 것이 죄가 아니기 때문이다. 절영지연(絶纓之宴)이란 말이 있다. 갓끈을 끊고 즐기는 연회라는 뜻으로 꾸짖음보다는 관대한 사랑의 힘이 더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고사이다. 옛날 중국의 초나라 장왕이 승리를 자축하는 연회를 베풀 때 갑자기 광풍이 불어 촛불이 모두 꺼져버렸다. 어둠을 틈타 누군가 왕의 애첩을 희롱했고 애첩은 희롱한자의 갓끈을 뜯은 후 왕에게 불을 켜서 그자를 처벌해달라고 고하였다. 그러나 장왕은 촛불을 켜지 못하도록 한 후 신하들에게 모두 갓끈을 끊어버리도록 명하고 여흥을 다한 뒤 연회를 마쳤다. 3년 뒤 장왕은 다시 전투에 나섰다가 큰 위기에 빠졌다. 그 순간 미친 듯이 말을 몰고 기적 같은 용맹을 발휘하여 장왕을 구한 장수가 있었다. 장왕이 그 장수를 불러 내가 특별히 그대에게 잘해준 것도 없는데 어찌하여 그토록 목숨을 아끼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장수는 3년 전 술에 취하여 죽을죄를 지었으나 왕이 범인을 색출하지 않고 관대하게 용서해준 그 은혜를 갚은 것이라고 하였다. 이모임은 갓끈을 끊은 모임이라 하여 절영지회라고도 불리 운다. 우리나라 속담에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 는 말이 있다. 부족함이 많고 실수를 잘하는 사람이 오히려 지도와 관심이 더 필요한 법이다. 히틀러의 독재자보다는 간디의 비폭력, 무저항이나 테레사 수녀의 사랑이 훨씬 더 위대해 보인다. 이 아름다운 봄에, 모두가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고 어질고 착하게 봄의 훈풍처럼 따듯한 사랑의 힘을 키워간다면 이 세상은 훨씬 더 따듯하고 아름다워질 것이다. 이봄에 우리들이 할일은 꽃처럼 아름다운 사랑을 실천하고 불쌍한 이웃에게 따듯한 온정을 베푸는 것이다. <myongyul@gmail.com> 879/05152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