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렬칼럼> 아름다운 봄의 색깔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봄처녀제 오시네, 새 풀옷을 입으셨네…….봄이오면 친구들과 어울려 봄의 노래를 부르며 연노랑으로 단장된 초봄의 도봉산을 오르며 불렀던 봄 노래가 떠오른다. 봄처녀가 산너머에 있는 줄 알았더니 성큼 내 코앞에 다가와 있다. 한국은 북한의 핵폭탄위협에 긴장이 고조되어있고 우리가 살고있는 이곳 미국은 보스턴 테러와 텍사스주의 비료공장 폭발사고, 시카고지역의 홍수와 물난리 등으로 세상은 매우 어수선하지만, 이렇게 어수선하고 시끄러워도 봄은 한해도 빼놓지 않고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봄은 멘델스존의 음악처럼 속삭이며 오기도하고 하얀 목련처럼 우아한 미소로 오는가 하면 노란 개나리처럼 까르르 웃으며 오기도 한다.
의학적으로 남성보다는 여성이 봄에 더 민감하다고 하는데 그래서 봄을 여성의 계절이라고 하는가보다. 그 이유는 일조량이 많아져 감정표현과 연관 있는 멜라토닌호르몬 분비가 많아 기분이 들뜨게되며 습도와 온도가 동시에 올라가 말초혈관이 확장되고 피의 흐름이 활발해져 겨우내 움추러 들었던 음의 기운이 솟아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것이 어디 여성뿐이겠는가?
바야흐로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 되었다. 이 봄을 맞아 우리 모두가 생명력이 넘치는 봄날의 정취를 한껏 만끽하였으면 좋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멈출 줄 모르고 거의 매일처럼 내리는 비로 인하여 봄이 이 장맛비에 떠내려간 줄 알았는데 다행히 봄은 그 자리에 머물러서 온갖 아름다운 자태를 보이며 화려한 미소를 짓고 우리들 곁에 서서 함께 하고 있다.
한국이나 우리가 살고있는 이곳은 사계절이 뚜렷하게 갈리어서 계절마다 고유의 빛과 색깔로 그때를 상징해주는 아름다운 색깔을 지니고있다.
여름은 초록이고 가을은 갈색, 그리고 겨울은 흰색이다. 그러면 봄은 무슨 색깔일까?.
매화와 벚꽃 놀이에 취한 사람은 흰색이라 할 것이고 유채나 산수유, 개나리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노랑색이라 할 것이며 철쭉꽃이나 진달래꽃처럼 핑크빛꽃놀이에 빠진 사람은 분홍색이라고 말할 것이다.
아울러 붉디붉은 동백의 요염한 자태를 보면 빨강색도 빼놓을 수가 없다. 그러고 보니 봄은 계절의 여왕답게 화려한 색깔로 몸치장을 하는 계절이다.
나는 설익은 봄이 좋다. 마치 화장을 하기전 얼굴을 말끔하게 씻은 모습으로 거울앞에 앉은 여인처럼 갖가지 원색들의 향연을 앞두고 봄의 기운들이 대지를 녹이는 이 맘떄의 봄색이 좋다.
연노랑빛, 연초록빛, 연분홍빛의 각종 색깔들이 조화를 이루며 군무를 추듯 겨우 나무위로 차분히 내려앉아 있다. 미세하고 흐릿하지만 봄의 온기로 피워놓은 고운 빛깔이다. 버드나무, 벗꽃나무, 개나리, 단풍나무, 은사시나무, 굴참나무, 목련나무 등등 수없이 많은 꽃과 나무, 초목들이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만들어놓은 진정한 봄의 색이다.
이제 곧 나무잎사귀는 푸르름을 자랑할 것이고 봄의 자연동산은 알록달록한 천연색의 자태를 마음껏 뽐 낼터이다. 이에 질세라 봄을 맞은 사람들과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여인들의 옷 빛깔도 각양 각색으로 차려입고 나와 거리와 산과 들을 곱게 물들일 것이다.

한가로운 일요일 오후, 교회에서 예배를 보고 점심을 마친후 공원으로 나갔다.
두텁지 않은 자켓에도 미풍은 기분 좋게 얼굴을 만져주고 신선했으며, 햇살은 따갑지 않을 만큼 어깨와 등위에 닿았다.
나무그루터기에 두 다리를 올려놓고 자근자근 맛사지도 하고 소풍 나온 상춘객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호수가 보이는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기도 했다. 한가로운 주말오후의 햇볕비치는 공원의 모습, 밝고 화사한 색으로 다가온 공원의 봄소식은 참으로 아름답기만 하다.
저 멀리 공원근처 어느 주택가 울타리 곁에 피어난 노오랗게 피어난 개나리 꽃이 유난히도 선명하게 눈안에 들어온다. 봄은 저렇게 노란색으로 시작이 되나보다.
산수유, 생강 꽃은 겨울이 끝나기도 전에 살금살금 다가와서 손을 내민다. 제주도 산방산 아래의 들판을 가득 채우고있던 유채꽃을 바라보며 감동했던 기억이 새롭다. 옛날 나의 시골집 돌담 사이에 지천으로 피어났던 개나리꽃이며, 개나리꽃 그늘에서 땅을 헤집으며 먹이를 쪼아먹던 노오란 병아리들까지도 봄의 추억으로 남아있다.
개나리꽃을 피웠던 유년의 봄바람이 유채꽃 가득했던 중년의 벌판을 넘어 이제 흰머리 날리는 노년의 길을 걸어가는 나의 시야에 공원 잔디밭에 질펀하게 피어난 노오란 민들레꽃을 연상해보니 봄은 노란색이다.
지천으로 피었던 고향 뒷동산의 진달래와 입술이 파랗도록 진달래꽃을 따먹던 동무들이 생각난다.
옆집 선희네 울안의 살구나무 고목에는 매년 봄마다 연분 홍꽃이 피었다. 눈을 감으면 선희의 얼굴이 떠오르고 눈을 뜨면 동네 곳곳에 만개한 개나리꽃이 바람에 날리고있다.
봄바람에 들꽃이 만개한 오솔길을 꽃향기, 나무향기, 봄 향기를 맡으며 걷노라면 “연~부운홍 치마가 보~옴바람에 휘날리이더라….”하는 내가 잘 알고 지내는 어느 여사님이 좋아하는 십팔번 가락이 머리속에서 흘러나온다. 봄은 아울러 분홍색을 띄고있다.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면 연초록 잎파리들이 나온다.
얼음 녹은물에 정신을 차린 버들강아지를 앞세우고 연두빛 새움들이 합창을 한다. 돋아나는 새잎들은 꽃보다 더 곱다.
물오른 버드나무 작은 가지를 비틀어 버들피리를 만들어 입에 물고 갓 돋아난 솜이불 같은 풀밭에 누워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흘러가는 뭉개 구름도 한가하고 여유롭게 보였다. 소년의 꿈은 새싹의 푸른잎을 보면서 티 없이 성장하여 이렇게 봄의 색깔을 노래하고 표현하는 반백의 노년이 되었다.
그때 불렀던 버들피리소리가 연두빛으로 들려온다. 다채롭고 다양한 색깔을 띄고 출발하는 봄은 무슨 색깔일까?…….유채꽃, 개나리꽃의 노란색과 진달래, 살구꽃의 분홍색, 그리고 딱딱한 껍질을 뚫고 돋아 나오는 이파리, 연두초록색이 서로가 봄의 색깔이라며 다투고있다.
개나리를 택하려니 진달래가 삐질 것 같고 진달래로 낙점 하려니 서운해하는 연두빛 이파리를 달랠 길이 없다. 이렇게 다채 다양한 봄을 어느 색깔 하나를 골라서 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노란색, 분홍색, 연두초록색이 모두다 봄이다. 세 가지의 색깔을 섞어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희끄무레한 색으로 하자니 봄에게 너무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훈풍이 미간을 간지럽혀 주는 신선한 아침나절은 연두초록색이고, 화사한 햇살이 뜨락에 가득히 비춰주는 한낮은 분홍색이며, 뻐꾸기울음소리가 먼산에서 날아드는 오후에는 노란색으로 봄의 색깔을 정했다.
이렇게 여러가지 색깔이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계절인 이 봄이 너무 짧다.
동고동락하며 몇십년 동안 함께 살아가면서, 약속이라도 한듯 나와 같이 흰머리카락이 눈에 띄게 늘어가는 정다운 아내와 마주보며 정원의 테이블에 앉아 와인잔을 기울이니 라일락 꽃향기와 함께 취해, 환하게 비춰주는 달빛이 봄을 재촉하며 수줍은 듯이 미소를 보낸다.
보내기가 서운한 봄, 4월달의 끝자락에서 좀더 머물다가라고 사정을 해보지만 야멸차게 뿌리치며 그렇게 아쉬운 하루, 봄밤이 속절없이 깊어만 간다.

<myongyur@gmail.com> 877/0501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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