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옛 마이애미지역 한인사회 (10 ) 

내가 본 옛 마이애미지역 한인사회 (10 )
언론을 모함한 교역자 이야기

평소 이 고장의 여러 교역자 중 필자가 존경하는 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조금 전 교역자협의회가 있었는데 10 여 분이 모인 그 자리에서, 김발행인이 다른 교회의 소식은 3면에 조그맣게 실으면서 모 교회만은 돈을 받고 1면에 실어주는 특별대우를 하고 있다고 이 고장에서 가장 젊은 교역자 아무개가 주장했다, 물론 나처럼 이 지역에 온지 20 여 년이나 된 교역자들은 김발행인을 잘 알아서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새로 온 교역자들은 그 말을 믿고 고개를 끄덕이더라, 교역자 중 일부라도 이곳 신문이 그런 신문이라고 생각한다면 자연히 신자들에게 잘 못 알려져 지금까지 청렴한 이미지로 남아 있는 신문에 악영향을 줄 텐데 어찌 생각하느냐?, 왜 그 교회의 부흥회 기사만 1면에 실어 그런 오해를 사는지 나도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이 때 필자의 머리를 스친 것은 지난 호 신문 1면 하단에 1단으로 보도된 어느 교회 소식을 보고 아직 편집 경험이 많지 않은 후배 기자의 실수를 꾸짖었던 일이 생각났다. 그 사실을 이 분께 해명했더니 “어쩐지 이상하더라, 이제 알겠다”면서 신문사 측에서는 이번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냐고 물었다.
필자는 그에 대한 대답을 하기 전에 “동료 교역자의 주장을 듣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필자에게 ‘그 교회에서 돈을 받은 적이 있냐?’ 고 묻지를 않고, 필자는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 날 일어 난 내용을 전해 준 점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씀드렸다.
이어 이 분께 앞으로 신문사가 해야 할 대책을 비롯해서 정중히 어려운 부탁말씀을 드렸다. “일단 그 교역자 분께 다음 번 교역자협의회에서 오늘 발설한 내용은 자신이 지어 낸 말이라고 밝히고 그 점 사과한다는 약속을 한다면 신문사 측에서 그냥 없던 일로 처리하겠다. 그러나 만일 이러한 사과를 할 의사가 없다면 신문 및 기자의 결백성과 명예 실추 예방 차원에서 어떤 댓가를 치르더라도 법에 호소할 길 밖에 없다. 문제는 그 말이 나온 현장을 법정에서 증언할 ‘동료보다는 양심과 정의의 편을 드는 교역자’ 두 분이 필요한데 목사님을 그 둘 중 한 분으로 생각해도 되겠느냐?” 고 물었다.
한 참을 망설이던 이 분은 “정 아무도 증언을 할 분이 없다면 제보자인 자신이 증언대에 설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가급적이면 그 지경까지 안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쉽지 않은 결정을 해 준 이 분께 심심한 사의를 표했다. 전화를 끊고 이어 제2의 증인을 찾기 위해 평소 인격적으로 가장 신뢰를 했던 목사님께 전화를 드렸다. 자초지종 필자의 얘기를 듣더니 “그렇지 않아도 김발행인께 그 사실을 알려 드리려고 전화를 드리려던 참이었다. 오늘 그 교역자의 발언에 많이 놀랐다. 김발행인을 잘 몰라서 그랬겠지만 언론을 상대할 때는 보다 신중했어야 하는데 너무 경솔한 처신이었다. 그러나 같은 교역자 입장에서 법정의 증언대에 선다는 것은 참 난처한 일이다. 하루 동안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필자도 이 분의 처지와 심경을 충분히 이해했다.
다음 날 저녁 늦게 이 교역자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많이 생각해 봤다. 결론은 동료 교역자보다는 정의를 택하기로 했다”면서 필자에게 힘을 실어 주셨다.
두 증인 확보로 법적 대응이 가능해 짐에 따라 즉시 필자를 모함한 교역자분께 전화를 했다. 평소 자존심이 강하고 지나치게 교만해서 대선배 교역자들 사이에서도 호평을 못 받던 이 분은 예상대로 ‘그런 사실이 없으니 필자나 교역자협의회에 사과할 뜻은 전혀 없다는 것’, 또 “그런 내용을 고소하려면 증인이 필요한데 법 좋아하시면 마음대로 하시죠”하고 조롱하는 언사로 대답을 대신했다. ‘어느 교역자가 교역자 편에 서지 않고 기자 편에 서겠냐?’는 자만심이었으리라. 그 때 필자는 “내일까지 잘 생각해 보세요. 증인도 없이 법적 대응 운운하겠어요?”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다음 날 다시 전화를 드렸다. 예상대로 이 분은 더 기고만장해져서 “당신 마음대로 해봐!”했다. 필자는 전화를 끊고 ‘아마 중진 교인들에게는 기자가 아무 잘 못 없는 교역자를 거짓말을 조작해서 괴롭힌다’고 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사건 내막을 잘 몰라서 교역자의 말만 믿은 그 분들의 든든한 지지를 이끌어 냈기에 저렇게 당당하리라 생각했다.
다음호 신문에 이 분의 필자 모함 내용이 사실대로 크게 보도되자 이 교회의 집사급 신자 15명이 험악한 표정으로 신문사를 항의 방문했다. 유독 필자와 안면이 없는 인솔자말고는 모두가 필자와는 평소에 잘 아는 분들이었다. 인솔자로 앞에 나선 집사님은 큰 녹음기를 켜서 들고 들어 왔기에 필자도 법적 문제에 대비해서 민첩하게 신문사 데스크 밑에 있는 소형 녹음기의 키를 눌렀지만 인솔자는 물론 아무도 이 광경을 못 본 듯 했다.
이 분들 중 다른 분들은 자기네 교역자를 괴롭히는(?) 필자에 항의하는 표정들을 지으면서도 거의가 질문이 없는 대신 당시 교역자의 신뢰를 가장 많이 받고 있다는 인솔자만 필자에게 질문을 계속했다. 그 요지는 “왜 없는 내용(?)을 기사화해서 신성한 교회와 목사님의 명예를 훼손하냐?”, “신문사와 기자를 명예 훼손으로 고소하려는데 그래도 잘못을 사과하지 않겠냐?”, “우리 목사님께는 증인이 있다고 거짓말(?)했다는데 증인이 있으면 이름을 대야 하지 않겠냐?” 등이었다.
필자는 있는 대로 사실을 당당히 밝히면서 귀 교회의 교역자님이 실수를 하게 된 경위는 신문의 편집실수 때문임은 알겠으나 그렇다고 없는 사실을 조작해서 이 고장의 전 교역자 앞에서 언론의 위상을 실추시킨 점은 그냥 지나갈 일이 아니다. 다음 번 교역자 모임에서 자신의 실수를 사과하는 선에서 해결하려 했으나 끝내 귀 교회 교역자님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서 하는 수 없이 사실 내용을 기사화 함과 동시에 법적 대응이 필요하게 됐다는 점 등을 상세히 설명했다.
여기서 필자가 느낀 것은 다른 분들은 대부분이 필자의 해명을 듣고 이해를 하는 표정이었으나 인솔자만은 건성으로 현장녹음을 할 뿐, 필자의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호 다른 신문에 필자 및 신문을 ‘사이비 기자 및 언론’으로 매도하는 전면 광고가 떴다.
이 광고 내용을 보면 인솔자가 질문한 내용은 그대로인데 필자가 답변한 내용은 모두가 필자의 입에서 나온 적이 없는 말, 즉 필자가 ‘교역자가 하지도 않은 말을 조작’해서 보도한 것을 고백한 것처럼 주장하고 있었다. 이 광고를 보고서야 교회 측 항의방문단이 신문사에 왔을 때 필자도 녹음한다는 사실을 큰 소리로 알렸더라면 감히 이런 장난을 못 쳤을 것을…하고 후회했다.
이날 저녁 때 평소 필자와 가까이 지내는 이 교회의 중진 신자 한 분이 전화를 걸어와 그 신문의 광고 내용 100%를 교역자가 작성해서 다른 신문에 광고 의뢰를 한 사실을 귀띔해 주었다. 필자가 녹음기를 켜 놓은 사실을 몰랐기에 자기네 마음대로 녹음 내용을 조작했겠지만 신문사 항의방문단에 끼어 있던 전원은 이 광고 내용을 보고 사실과 너무 많이 다른 점에 놀랐을 것이다.
하는 수없이 필자는 교회 중진 신자들에게 이번 사건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필자가 녹음한 내용 전부를 30여개 테잎에 복사, 당사자인 교역자를 비롯해서, 장로, 권사, 집사 전원에게 일제히 우송했다.
결과는 교역자의 언행에 실망한 교인들로 교회가 발칵 뒤집혔고 결국 교역자는 그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줄 아는 교역자의 겸허한 자세가 아쉬운 사건이었다. (계속) kajhck@ naver.com <2013-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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