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동칼럼> 인연(因緣)과 악연
인연, 어디 좋은 인연뿐이랴 생각만 해도 흐뭇해지는 인연이 있고 지우고 싶은 악연도 있다. 새해로써 만40년이 되는 이 땅 캐나다와의 인연 중에서만 해도 그렇다. 이민초기의 그 좋던 인연들이 악연으로 돌아선 가슴 아픈 사연들이 남달리 많다. 정론지를 표방하며 이 땅에서 오랜 세월 언론사를 경영했던 나의 뼈아픈 경험담이기도 하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하지만 아닌 건 아니라고 썼을 뿐인데 토라지는 사람들, 그 중에는 인연을 끊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비판을 수용 못하는 문화권에서 살다 온 사람들이니 그렇겠지 언젠가는 풀어야지 하는데도 본의 아니게 숙제 해결은 난망하며 미완(未完)의 장으로 또 한 해를 넘긴다.
그런 슬픈 인연에 비해 아주 색다른 인연도 있다.
교회 출석을 거부하던 내가 스스로 교회 문을 들어 선 데는 한편의 영화가 인연이었다.
타이타닉호가 침몰되는 그 아비규환의 수라장 속에서 바이올린으로 찬송가 364장을 켜던 선상 악단원을 보고 크리스찬의 “준비된 죽음”이라며 감전(感電)되던 순간이 나를 교회문으로 밀쳤다.
인연이 형성되는 과정은 이토록 다양하다. 요즘처럼 새 권력이 태동될 때 권력주변에 끼어 들면서 엮어지는 인연은 언젠가 주민등록을 교도소로 옮기는 악연이 되는 필연(必然)적인 순간의 예고편이기도하다..
인연을 들먹거리자니 돈 문제도 나온다.
필자의 경우 돈 하고는 지독한 악연이기에 죽더라도 부고를 내지 말라는 유언을 남겨놓았다.
살아생전 돈과는 인연이 없던 내가 죽고 나서 부조랍시고 머리맡에 달러가 왔다 갔다 하는 건 저승에 가서도 꿈자리가 어설프기에 그렇다. 70여평생 등기부에 이름 한번 못 올렸으니 모기지가 뭔지 모르고 사는 나에게 후회 같은 건 물론 없다.
돈이란 없는 것보다는 좀 편리하지 않을까하는 것이 나의 돈에 대한 개념이다. 평생을 일편단심 월세방에서만 사는 “렌트 아파트 인연”도 글쎄 인연이라면 인연이겠지…..그리고 11년 전 일어난 또 하나의 인연이다. 북미주지역의 언론인들이 한데 모여 미주한인신문인협회라는 단체가 탄생했을 때다. 초대 이사장을 맡았던 나는 모임에서 회원사 대표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 중에 유독 한사람이 돋보였다. 딱 부러지게 할 말 만 한마디씩 내뱉던 한겨레저널의 이승봉 발행인이다.
그것이 플로리다와의 인연이 되어 긴 세월 칼럼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후다. 올랜도를 위시한 몇몇 지역의 한겨레 독자들로부터 E-mail이 오기 시작했다.
격려의 글보다는 못마땅하다는 충고형 글의 비중이 높다. 시사를 다루는데 균형감각 등 나의 시각교정을 부탁하는 점잖은 글들로 설득력이 있다는데서 플로리다독자들의 글은 타지역에서 느낀 바와는 다르다.
필자의 글을 이념적인 잣대로 가볍게 매도하는 묻지마식 댓글로 인민재판장으로 몰고 가는 경우와는 판이하다. 나는 내가 쓴 글에 반응이 없으면 무관심이라는 데서 독자들의 그 어떤 질책도 달게 받지만 그러나 컴퓨터 뒷켠에서 나의 글쓰기 작업을 도와주는 가족의 심기는 꽤 불편한듯하다.연휴에 읽을 책을 빌리기 위해 빙판이 된 주차장을 나오면서 또 한번 생각난다.
그 따뜻한 곳에서 해외동포사회 언론사로서는 유일하게 적잖은 장서(藏書)를 가지고 독자들에게 대여해 주는 한겨레도서관이 얼어붙은 주차장위에서 눈앞에 성큼 다가온다.
독서하기에도 안성맞춤인 사철이 입춘대길(立春大吉)인 그곳 플로리다, 책 한 갈피 씩 넘길 때마다 와 닿는 그 상큼한 쾌감은 골프나 낚시에 견주기에 모자람 없다. 책을 읽은 독후감(讀後感)도 더러 나오는 신문이면 더 품격이 돋보이는데 하는 생각에 조그마한 아쉬움이 따른다.
저의 모자라는 글을 읽고 격려와 질책을 함께 보내주시는 플로리다 독자여러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Happy New year!. <kwd70@hotmail.com/01012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