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동칼럼> 김삿갓과 박근혜
지난 초가을 문턱에서 무엇으로 이번 독서의 계절을 맞을까 망서렸다.
그래서 책 대본을 위한 멤버십이 있는 어느 한국 서점에서 10권으로 되어있는 이문열의 <삼국지>를 빌려왔다. 삼국지라면 처음 읽는 책도 아닌지라 속독(速讀)으로 다 읽고 <초한지>를 읽어가던 중 이 상문의 장편대하 역사소설 “김삿갓 방랑기”로 바꾸어 오늘 아홉권 째의 책갈피를 넘겼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대선 후보 중 누가 정치보복 근절의 공약을 내 걸까하고 생각하던 중에 일어난 선택이다. 때마침 인혁당 사건 및 장준하선생 유족들을 방문하며 아버지를 대신해 사죄하고 다니던 박근혜 후보의 모습에서 느낀 점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아버지 때에 있었던 과거사가 어째서 박근혜의 아킬레스건이며 괴롭힘을 당해야 하는지 그녀가 왜 속죄양이 되어야 하는가 해서다. 그래서 김삿갓 방랑기를 선택했다. 시대는 다르지만 김삿갓과 박근혜의 동병상련(同病相憐)때문이다. 김삿갓(김병연), 그도 나와 같은 안동 김가로 후암공파 24대 손이다. 그도 박근혜처럼 조부가 연관된 슬픈 역사 속에 갇힌 속죄양이었기에 그렇다. 그래서 집안역사 바로잡기 행보에 나도 깊은 관심을 가졌기에 동행하는 기분으로 책을 붙들고 읽어나갔다. 즉 조부였던 평안도 선천방어사 김익순이 홍경래 난 때 민란세력에 부화뇌동했다고 능지처참 당한 집안내력이 있다. 과거에 응시하기에는 결격사유였다. 어린 나이에 영월백일장에서 장원급제하면서도 한양의 본시(本試)에 응시할 수 없다는데서 경주 김씨로 호적세탁을 하고 상경했다. 그러나 어느 날 그는 벼슬길을 우선 접고 할아버지가 받은 죄가, 그 역사의 기록이 진실이 아니라는 어머니의 말을 귀담아 들었기에 평안도 선천땅을 찾아가는 고행(苦行)이 그려졌다.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라는 노래가사는 그의 역마살 끼인 막연한 유람형 행보거니 하는 생각과는 다르다. 할아버지의 명예와 안동 김씨 가문의 명예를 회복해 보려는 금강산 묘향산에 이어 장백산(백두산)까지 젖은 짚신이 눈 속에 얼어붙으면서도 마다 않고 가던 그 대장정의 역사가 기록된 책이다.지난 4일 박근혜-문재인-이정희 등 대선주자 3인의 TV토론회에서도 “내가 대통령이 되면 정치보복은 없다”라는 문재인의 약속을 눈여겨봤다. 어느 후보 입에서 이 말이 나오는가를 유심히 관찰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이날 토론회가 끝나자마자 문후보의 멘토 격인 서울법대 조 국 교수는 “오직 박근혜를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다”며 설레발을 친 통민당 이정희를 두고 “박근혜가 되는 날이면 교도소로 보낼 것”이라는 발언이다. 같은 날 후보는 정치보복은 없다고 했으나 젊은 층의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그 진영 속에 거물인 조 교수의 입에서는 다른 말이 나왔다. 이정희가 할 말 했을 뿐인데 죄 없는 사람을 교도소로 보낼 수 있느냐? 대명천지에 이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느냐는 의문을 편다면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순진한 소리다. 죄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만드는 것은 한국 검찰의 실력으로 볼 때 노하우 랄 것도 없는 식은 죽 먹기다. 충성으로 정권창출에 기여했거나 새로운 집권 세력에 대한 발 빠른 변신으로 논공행상 차원에서 출세가 보장되는 조직이 바로 한국 정치검찰이다. 검사라면 누구나 죄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어 잡아넣으라는 오더가 하달될 조직 내의 그런 부서에서 일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비리에는 지지부진하면서도 죽은 권력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잔인한 게 청렴도 최하위라는 대한민국 검찰의 현주소다. 이승만 박정희 때의 정치보복은 말할 것도 없다. 야당을 하면서 숱한 정치보복을 당했던 당사자들인 양 김씨, 그들은 한결같이 정치보복은 없다고 했다. 그래놓고 YS는 당선되자마자 자신을 괴롭히던 6공의 황태자 박철언을 잡아넣었다. DJ는 김대중X파일을 쓴 언론인 손충무를 당선되자 잽싸게 투옥시켜 2년간의 옥살이로 분풀이를 했다. 그러고 보면 과연 문재인의 정치보복 근절 공약은 믿어도 될까 싶잖다. kwd70@hotmail.com <859/1212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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