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0주년기념 축사> Happy Birthday!

김원동 / 미주신문인협회 고문 /

언론인으로써 사명감에 누구보다 충실했다.

김원동/미주신문인협회 고문

트럭에 한가득 싣고 온 신문으로 사무실 안에는 잉크냄새가 진동한다. 그 순간 직원들과 가족들이 매달려 직접 배달하는 탬파와 올랜도 지역을 제외한 플로리다 전역으로 배포될 크고 작은 UPS박스에 신문을 담기에 분주한 다른 신문사에서는 불 수 없는 남다른 풍경이다.
몇 세대가 모여 사는 자그마한 동네에도 한 곳을 선택하여 보내느라 UPS차량이 도착하기 전에 분주히 움직이는 일손들, 어느 수요일 오전 탬파에서 본 한겨레저널 본사의 색다른 모습이다.
광고를 내지 않는 업소에도 독자들의 발길은 있기에 광고 내는 업소와의 차별화는 없다.
광고주의 자주성을 최대한으로 존중하면서도 업소들로부터 한인 커뮤니티의 발전을 위해 동포언론과의 공생공존(共生共存)이라는 필요성을 역설하며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노력한다.
그로 인한 신뢰와 믿음으로 구축한 하나됨이 있었기에 오늘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플로리다 동포사회 수문장으로써 자리매김을 했다고 생각한다.
언론이라는 공기(公器)의 사명감에 누구보다 충실했다. 독자나 광고주의 눈치를 살피지도 않는다.
성역 없는 정론직필(正論直筆)로 할 말 다하면서도 소외계층을 다독거리며 하나의 따뜻한 동포사회로 아우르는 그 나름의 남다른 저력과 노하우도 있었다.
그래서 더러는 파도처럼 밀려오던 그 숱한 좌절과 고통과 고독과 시련도 신앙인으로써의 굳건한 믿음과 인내와 용기로 순간마다의 고비를 넘기는 힘의 원천으로 작용했을 성싶다.
물론 오늘의 “한겨레저널”로 일구어 놓은 부인의 남다른 희생정신과 부단한 노력도 이 기회에 소개해야 할 아름다운 소재 중에 하나다.
생존해 계시던 때의 시어머니에게는 소문난 효부였으며 두 아들의 뒷바라지와 부엌설거지와 신문편집일 그리고 신문배달! 1인5역의 초인적인 노력을 기울였던 이선화 여사의 노고는 그 무엇에 비유할 수 없다.
“한겨레저널”이라는 무공해 상록수를 자라게 한 결코 빼 놓을 수 없는 값진 밑거름이었다.
열악한 재정 속에 취재인력 부족을 온몸으로 메꾸느라 뛰면서 피곤에 겹친 발행인 남편을 대신해 핸들을 잡고 신문배달에 나섰던 한겨레저널의 일등공신이 바로 이선화 여사로 스무돌 잔치의 단연 주역이자 축하대상 제1호다.

도서관의 꿈을 이룬 작은 거인 이승봉 발행인의 쾌거

그리고 해외동포사회의 크고 작은 신문사들 중 자체도서관을 갖춘 신문사는 별로 없다.
1만권이 넘는 적잖은 장서(藏書)를 작은 거인 이승봉 발행인은 꿈이 아닌 현실로 이루어냈다.
탬파 보다 몇 십 배 되는 수준의 한인밀집지역에서도 보기 드문 그만의 착상이자 밀어붙이기식의 성공이었다.
동포사회 정서함양과 민족전통문화 계승과 정체성 확립이라는 1991년 1월 어느 날 마이애미에서 첫 신문을 내던 그 창간정신의 초심을 일구기에 성공한 귀중하고 값진 사례다.
이는 결코 플로리다 동포사회만의 자랑이 아닌 해외동포사회에 모범이 될 전무후무한 쾌거다.
그리고 보다 더 많이 장만하겠다는 책 욕심에 이번 스무돌 잔치에도 도서구입 지원을 위한 골프대회도 연다고 한다.
플로리다 한인골퍼들에게 이 이상 값진 골프대회가 또 있을 가 하는 생각이 든다.
푸른 잔디를 밟는 발자국 수에 따라 도서의 양이 늘어날 기막히게 중요하고 가슴 벅찬 골프 행사다.
그리고 전자신문 한겨레저널의 파워도 이젠 막강하다. 신문 발행 당일 주요뉴스나 칼럼은 google이나 yahoo등을 타고 제때에 뜬다.
플로리다를 넘고 미국을 넘어 금세 지구촌 한인사회의 네트워크 망을 연결하며 그 진가를 유감 없이 발휘한다.
10년 가까운 세월을 한 주도 빠짐없이 실었던 필자의 글이라는 것도 거의 촌철살인형의 아슬아슬한 글들이었다. 그러나 이 발행인은 한 번도 글 내용에 토를 다는 법이 없었다. 한 자구 단 한 점의 점도 수정하는 법이 없다. 필진(筆陣)과 사주(社主)는 같은 운명체라는 철저한 공동운명 의식의 발로라고 보았기에 그 만큼 믿음도 컸다.

단순한 축하연이 아닌 거듭나겠다는 약속의 장(場)

한겨레저널이 이만큼 성장했으면 창간 20주년이라는 행사를 벌릴 만도 한데 그는 여러 날을 이 문제로 고민하였다는 후문이다.
강산이 두 번 변한다는 20년 세월이 결코 짧지는 않았지만 많은 모자람의 연속이었고 지금도 그렇다면서 자축(自祝)을 하고 축하를 받기에는 한없이 고마운 광고주들과 독자들 앞에 부끄럼이 앞선다는 그 나름의 겸손 때문이다.
그러나 외지의 다른 동료언론인들이 한겨레저널의 스무살 생일은 특별히 축하를 할 만 한 의미가 있다며 축하객으로 모두 참석하겠다는 적극적인 자세와 일부 현지동포들의 권유에 힘입어 스무돌 잔치를 열기로 결심했단다.
단순한 축하연이 아닌 언론으로서의 지난날의 미숙함과 모자랐던 점을 이 기회를 통해 새로운 각오로 모든 면에서 또 한 번 업그레이드하는 약속의 장소가 될 것이며, 광고주와 독자들의 격려와 성원에 보답 못 한 턱없이 부족했던 과오들에 대해서도 어떠한 질책도 겸허이 받겠다는 새로운 도약을 외치는 약속의 장(場)이기도 하다.
필자에게도 “긴 세월 고정칼럼을 쓰시느라 수고하셨으니 이번 행사에 꼭 참석해 달라”는 당부가 왔다.
그래서 탬파행 항공권을 주저 없이 끊었다.
눈보라 속의 설국(雪國)의 전원도시를 박차고 상하(常夏)의 땅 탬파를 향해 이륙할 생각에 체감온도가 달라지면서 벌써 마음이 벅차오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오랜 세월 어쭙잖은 필자의 글에 대해 격려를 해주시곤 하던 플로리다 독자들과의 만남에 벌써 가슴 설레기도 한다.
Happy birthday!

2011-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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