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동칼럼> 개소리 끝에 붙는 말 “아니면 말고”

▲아니면 말고 식의 역경을 돌파한 가수 파불로씨.

▲아니면 말고 식의 역경을 돌파한 가수 파불로씨.

<김원동칼럼> 개소리 끝에 붙는 말 “아니면 말고”

최소한의 확인도 없이 덮어놓고 냅다 지껄이고 난 후 아니면 말고 식으로 꼬리를 내린다. 피해자의 명예 실추나 그 가족들이 받는 고통은 고려대상에서 예외다. 가해자 입장에선 미안하다거나 짤막한 사과문 등으로 얼버무리면 끝일지 모르나 당하는 피해자 입장은 다르다. 법에 의해 진실이 밝혀지고 명예가 회복되기 전에 정치생명은 이미 끝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총선과 대선이 있을 때 일어나는 돌이킬 수 없는 본의 아니게 끝장이 나는 치명적인 경우 말이다. 대통령의 꿈을 향해 질주하던 이회창씨의 경우도 그러했다.
아니면 말고 식의 병역브로커인 전과자 김대업과 DJ 가신 설훈의 개소리는 그들의 발언이 허위사실로 끝났을 무렵에는 이미 대선은 지나도 한참 지난 후다. 유행가 가사처럼 “꿈는 사라지고”다.
연예인들은 더 하다. 인터넷의 아니면 말고 식 묻지마 인민재판으로 자살극이 벌어지는 사례도 있다. 그러나 아니면 말고 식의 융단폭격 속을 헤매면서 진실은 이긴다는 신념을 끝내 관철시킨 가수 타불로의 역경 돌파 스토리는 다르다.
물론 그를 괴롭히던 아니면 말고 식의 타불로 공격의 의미는 간단했다. 그가 스텐포드 출신이라는 사실에 학력 컴플렉스와 반미감정이 강한 것들이 이때다 하고 덤벼들며 아니면 말고 식으로 개짓듯이 짖어 놓고는 이제 어떻게 수습할지는 관심거리다.
방송국의 특별 취재팀이 스텐포드에서 취재로 사실 확인을 했고 사직당국에서도 타불로의 손을 들어주었다. 타불로도 자신을 향해 인민재판을 벌렸던 그들을 상대로 고소를 했다. 어느 천 년에 받을지는 몰라도 보상을 받은들 어떻게 그것으로 자신의 멍든 상처는 물론 가족들이 받은 깊은 고통의 보상이 될까 의문이다.
청문회 정국에서도 아니면 말고 식의 인격살인행위는 무성하다. 지난해 총리후보로 나왔던 소장수 아들 김태호도 야당의원들의 막가파식 폭로행위에 도중하차를 하면서 “아무런 실체나 근거도 없는 내용을 최소한의 확인도 없이 폭로하는 아니면 말고의 묻지마 식의 행태를 보고 그 저질성에 “개탄스럽고 황당하다”는 말을 하며 귀향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최근 이명박 인사 난맥상의 극치를 보인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 역시 야당의원들의 아니면 말고 식의 막장공세에 범죄혐의자에게 최후진술도 안 들어보고 사형판결을 내리는 경우와 같다며 청문회 절차를 정치행위로 봉쇄한 일련의 과정을 두고 “살아있는 법을 정치로 폐지한 법치주의의 커다란 오점을 남겼다”고 했다.
따질 것이 있으면 들어보기 위해 청문회 제도를 도입했을 텐데 한국은 그게 아니다. 아니면 말고 식의 사실(Fact)이 아닌 소설식의 폭로로 청문회를 보이코트 하는 한국의 청문회문화에 따끈하게 일침을 놓은 5공 청문회에 출석한 허문도가 남긴 일화다.
그는 “한국의 청문회는 들어보기를 위한 청문회(聽聞會)가 아니고 듣기를 거부하는 “척문회”라고 표현했다.
“아니면 말고”식의 엉터리 폭로로 정치권이 뜨겁다. 안상수의원이 차남의 로스쿨 관련에 대한 사실과 전혀 무관한 허무맹랑하고 악의적인 “아니면 말고”식의 폭로로 발설자인 민주당의 이석현의원과 박지원을 고소했다. 이번만은 되지 못한 “아니면 말고”식의 폭로가 만연하는 정치권의 중병을 치료하겠단다. 제발 이루어지길 바란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아니면 말고식의 저질문화를 부추긴다. 아니면 말고 식의 발언내용을 아니면 말고 식으로 기사화 한다. 한술 더 떠 누가 그러더라면서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까”라는 속담을 인용한 여론 조성형 멘트도 단다. 해외동포언론 사회도 예외가 아니라서 걱정이다.
6.25사변직후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으로 목격한 마을 어귀에서 벌어졌던 그 인민재판 현장, 60년을 변함 없이 인민재판문화가 버려야할 유산임에도 이어지고 있다. 달라진게 있다면 그때 그 지방 빨갱이들 손에 들렸던 죽창의 모습이 말과 인터넷으로 바뀌기는 했지만……      <769/2011-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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