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동칼럼>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소녀의 유서(遺書)

<김원동칼럼>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소녀의 유서(遺書)

지난 11일 뉴질랜드에서는 기러기엄마를 위시한 일가족 자살이라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엄마와 함께 죽음 길로 동행한 어린 소녀의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유서가 눈길을 끈다. 경제적으로 더 이상 두 자매의 유학비용을 감당 못하자 기러기 엄마는 가족동반 집단자살을 선택했다. 이어 비극의 현장으로 날라 온 남편 배 모씨도 연달아 싸늘한 가족들의 시신 앞에서 목숨을 끊은 사건이다. 조기교육 열풍의 후유증이라고 간단히 평가하기에는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아픔이 따르는 사건이다.
아내나 자식들이 보고 싶어도 쉽게 찾아갈 입장이 못 되는 처지까지 사업이 망가진 남편을 두고 이웃의 입방아는 자살속도의 불을 지폈다. “저 집에 송금이 안 온데..”라며 수군거리던 이웃들의 싸늘한 눈초리는 “남편이 바람났데….”라는 유언비어로 확산하면서 남편의 어려운 근황을 자세히 알고 있던 가족들은 그래서 이웃 때문에 더욱 이중고(二重苦)에 시달려야 했다. 심지어 한인회까지 어려운 가정을 돌보지는 못할망정 헛소문을 확대 재생산하며 터무니없는 루머로 괴롭히지 말자는 공고문도 한인회 홈페이지에 띄었다고 한다.
얼마나 황당하고 괴로웠으면 가족 자살사건이 있기 이틀 전에 맏딸은 자신의 미니 홈피에 “세상에 사람들이 제일 무섭다”는 글을 올렸을까? 아는 척 하고 친한척하던 이웃들이 아빠의 송금이 중단되면서는 언제 봤느냐는 식의 몰인정으로 변했다는 것이 그가 세상 사람들을 보기에 무서움을 느끼게 된 동기다. 그 글을 칠 때 심정이 어떠했을까는 짐작이 싑게 간다. 죽음을 이틀 앞두고 띄운 글임에 살아있는 사람들이 더 무엇을 말하랴!
그리고 불법체류자로 이곳 한인업소에서 일하던 조선족 한 사람이 이민국 직원이 들이닥치자 뒷문으로 급히 뛰쳐나왔다며 필자가 경영하던 신문사로 찾아온 적이 있다.
신분상의 이유로 겪어야하는 불이익이야 자신의 책임이기도 하다면서 그러나 한번 씩 들이닥치는 이민국 직원 때문에….라고 말을 잇지 못하는 그는 이웃의 한인 경쟁업체의 고발로 안다면서 이곳에 와 새삼스러이 느끼는 거지만 “사람(동족)이 제일 무섭다”고 했다.
그리고 제비족에 홀려 몸도 돈도 가정도 다 망가지고 난 후 불륜의 상대였던 제비를 겨냥해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책임전가용의 너절한 푸념과는 차원이 다르다. 미주 한인밀집지역도 예외는 아닌성 싶으니 이건 논외(論外)로 치자.
또 하나의 슬픈 사건도 있다. 지난 15일 한국의 경희대학교 여학생 휴게실에서 일어난 “경희대 패륜녀”라는 신조어까지 생긴 문제의 사건이다.
여대생들의 휴게실 옆에 붙은 세면대를 청소하던 아주머니가 세면대 위에 있는 우유통을 누군가 먹는 중이거니 하고 치우지 않자 문제의 패륜녀가 “이건 왜 안치워 청소가 직업이잖아!” 라는 반말이 화근이었다. 그래서 자식 또래의 그 여대생에게 아무리 환경미화원이라는 말단 신분이지만 부모 같은 사람에게 그렇게 반말을 할 수 있느냐고 하자 패륜녀의 입에서는 나와 안 될 말이 튀어나왔다. “미친년” “이게 진짜 맞고 싶어” “꺼지지 못해” 등 막말을 퍼부을 때도 피맺힌 눈물을 흘리면서 그녀 또한 “사람이 제일 무섭다”고 했을 성싶다.
아무리 인격을 함양하는 인성교육 부재(不在)의 한국교육현장임을 감안하더라도 그렇다. 이건 너무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이 무섭다”는 소리는 뉴질랜드에서 생을 거두며 띄운 어린 소녀의 유서로만 기억할 일이 아니다. 조기교육에 미친 묻지마 열풍에 휩싸인 지구촌 한인사회 모두가 안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점이 아닌가해서다.(kwd70@hotmail.com). <737/2010-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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