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동칼럼> 한 명숙의 결백을 믿고 싶다.
또 한 차례 안 뗀 굴뚝에 연기가 났대서 말이 많다. 검찰에서 할 말이 있다고 나와 달라는 소환통보를 받은 사람들의 입에서 언제나 나오는 말이다. 더러는 윤동주의 시구를 인용하며 “하늘을 우러러 한 점의 부끄럼도 없다”며 결백을 내세운다. 그러다가 꼼짝 못할 증거가 나오고 유죄가 확정될 때 쯤 고개를 떨구고 교도소로 간다. 범죄피의사실의 의혹이 불거지고부터 교도소라는 새로운 안식처로 주민등록을 옮기는 과정을 말한 예외 없는 풀코스다.
검찰소환이란 비리관련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데 와서 좀 해명해 주십사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의혹대상에 관한 진실을 소명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고 결백하다면 검사 앞에 나가서 밝혀야지 국민들이나 지지층을 상대로 정치검찰 운운하며 선동하고 꽥꽥거리는 이들을 보노라면 저 사람들이 과연 민주국가의 시민자격이 있는가하고 의심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한명숙 전 총리도 여기서 예외는 아닌듯하다.
나는 평소에 한명숙씨에 대한 감정이 좋다. 최초의 여성총리라는 것을 떠나 그가 걸어온 삶의 궤적을 좀 알고 있는 나로서는 늘 저만한 정치인이라면 하고 한명숙씨를 개인적으로 존경해 왔음도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 한명숙씨마저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보고 실망스럽다. 전직 총리라는 위상에 걸맞게 처신해야 하는데 라는 아쉬움이 따른다.
여성운동가로써 서슬퍼런 독재정권에 항거하며 인권운동현장에서 포효하던 그 한명숙의 모습은 어디로 가고 민주당이라는 못 말리는 정당의 평풍뒤로 숨어 버티는 추한 모습에서 실망했기에 하는 말이다. 그리고 끝내 체포영장이 발부되었고 여성수사관에 의해 검찰로 연행되어 조사를 받고 일단 귀가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연신 자신의 정치생명과 야당파괴 음모극의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는 검찰에 수사협조는 못한다고 외친다. 묵비권을 행사하겠다며 모든 진실은 법원에서 밝히겠다고 엄포다. 여기에서도 한명숙의 그 우아하고 멋진 폼이 여지없이 구겨진다. 누가 들어도 한마디로 가는데까지 가보자는 시간 벌기식 꼼수에 다름 아닌데도 말이다. 물론 정치 사병화가 됐고 집권자의 시녀화가 된 한국의 정치검찰의 불행하고 모순된 과거사를 돌아보면 한전총리의 주장처럼 야당탄압 음모극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뇌물을 바쳤다는 증인과 대질심문도 있었다고 들린다. 그러니 정말 억울하면 기다 아니다를 분명히 밝히기에 시간을 끌 필요가 있을까 싶지 않다.
문제는 한명숙의 결백강조를 얼마만큼 그대로 받아드리는가에 있다. 나는 그녀의 결백을 믿고 싶다. 부디 더 이상은 안 다쳤으면 하는 바램이다. 가신(家臣)밖으로 눈을 돌려 한명숙 같은 사람을 정치권으로 픽업하던 동교동 슨상님의 혜안(慧眼)에도 당시 나는 모처럼만에 DJ를 긍정적으로 평가해본 일이 있다. 제대로 보는구나 하고 말이다. 그 한명숙의 모습이 날개 잃은 새처럼 축 쳐져서 저러듯 깽판꾼들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에 연민이 간다.
혹 사실이거든 아예 이실직고 하십시오 라는 측근은 없고 주변을 에워싼 패거리들의 입에서는 무조건 검찰수사에 불응해야 한다며 “정치검찰 아웃”이라는 피켓의 홍수 속에 난리 법석을 피운다. 단 돋보기 너머로 의심의 눈길을 보내면서 “정말 안 묵었능교”라고 묻는 유시민의 진실확인을 위한 일단의 노력이 그나마 패러디로 나오는 게 전부다.
한명숙씨 마저 무식한 정치인들처럼 법치를 무시하고 공권력을 조롱할 그런 입장에 있지 않다. 전직총리에 걸 맞는 위상을 재고해야 한다. 법치가 무너지면 식물국가일 뿐이다. 거듭 한명숙씨의 결백을 믿고 싶다. 그녀는 그렇게 결백한 삶을 신조로 삼고 살아온 사람이다. (kwd70@hotmail.com) <717/2009-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