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동칼럼> 충견(忠犬)과 광견(狂犬)
17일 오전 국회의사당 앞에서는 일단의 견공들이 출현하여 개도 웃을 농성국회와 개판국회의원들을 신랄하게 한바탕 비웃어 주는 퍼포먼스가 열렸다.
보수단체 회원들이 피켓을 목에 건 진돗개들을 데리고 나온듯하다. 그 장면을 페러디한 어느 보수신문의 만평에는 “내가 봐도 너희들 너무하다”며 펫말을 건 견공의 성난 모습이 나왔다. 작금의 대한민국 국회가 개들의 인내에도 한계를 불러왔다고나 할까. 개들의 시위는 그렇다 치고, 최근 견공들이 뿔날 정도의 개에 대한 갖가지 기사거리가 많이 떴다.
유명한 보수논객 C 모 기자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김정일에게 위원장이라는 호칭을 붙여서는 안 된다”며 어느 일선 지휘관은 장병들의 조회시간에 김정일 이름 석자 뒤에 반드시 위원장이 아닌 개새끼라 부르라고 훈시를 한다며 그 대대장을 부쩍 추켜세웠다.
그러면서 김정일을 “위원장”으로 호칭하는 한 자라나는 학생들에게도 반공교육이나 가치관교육, 그리고 국민교육을 시키기에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알만한 대 기자 C씨로서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그렇게 올렸다. 그런데 이 기사가 뜨자 바로 김동길 교수가 제동을 걸었다.
“지금 조기자의 논리는 타당성도 있지만 많은 견공들에 대한 일괄적인 명예훼손 행위”라고 했다. 모든 개들이 다 나쁜게 아니고 그 중에는 충견들도 있으니 광견(狂犬)과 충견(忠犬)을 혼동하지 말고 김정일 이름에다 그냥 개새끼가 아닌 “미친개(광견)”로 표현을 정정 해줬으면 어떨까하고 걱정 반 훈수 반으로 참견하고 나섰다.
충견(忠犬)에 대한 노 교수님의 배려와는 다른 측면도 생각해 볼 일이다. 김동길교수의 충견론은 정말 훌륭한 견공들에 대한 학자로써 아낌없는 찬사일 뿐이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는 충견 본래의 의미가 상실된 채 아주 나쁘게 인용되고 있어 문제다.
우선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만 봐도 그렇다. 한세월(10년 좌파정권 세월) 잘 보내던 끝에 정권교체와 함께 보스를 잃은 오갈 데 없는 정치적 노숙자들로 불리는 그때 그 충견들이 광견으로 변해 조문정국의 물결을 타고 집단 히스테리를 일으키는 모습 말이다. 어디 그 뿐인가 최근 이어지는 북한의 미사일 폭거를 보고 유엔 안보이사회는 대북자금 압박용으로 특정단체에 이어 다섯명의 김정일 충견 명단을 실명으로 발표했다. 노 교수님께서 걱정하는 충견 본래의 의미와는 사뭇 다르게 충견이라는 말은 이렇듯 혼란스러운 단어가 됐다.
다시 진짜 충견들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고려 충렬왕 8년 개성 진고개에서 있었던 일이다. 부모 잃은 눈 먼 어린 주인을 섬긴 한쪽 다리를 절룩거리는 장애 견(犬)에게 사람보다 충직하다고해서 종삼품(從三品)의 벼슬직함을 임금님이 직접 하사했다. 그리고 육군 21사단의 ‘헌트’라는 군견(軍犬)은 북한군이 설치한 지뢰를 발견 자신의 몸을 던져 1개 분대병력의 목숨을 건졌다 해서 ‘충견지묘’라는 비석과 함께 청동조각상을 순직현장인 제4 땅굴 앞에 세우면서 그의 죽음 앞에 인헌무공훈장과 함께 육군 소위로 추서(追敍)했다는 아름다운 기록도 남아 내려오고 있다.
국회 앞에서 있었던 충견시위와 김정일에 대한 개새끼 호칭을 강조하는 어느 대(大)기자, 그리고 견공들의 명예를 위해 일갈하는 노 교수의 말씀들이 함께 뒤섞여 휘졌고 지나가는 주간에 생각나는 충견들의 이야기를 모아 보았다. 국회농성에 여념없는 광견집단의 추한 모습을 함께 보면서…… kwd70@hotmail.com <696/2009-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