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동칼럼> “내려놓음”에 인색했던 지난 세월 

<김원동칼럼> “내려놓음”에 인색했던 지난 세월 

평생 의료비가 들지 않는 나라에 살면서도 미련을 피우며 홈닥터를 피해 다니던 길에 최근 부닥뜨렸던 의사선생과의 어쩔 수 없는 만남에서다. 조기발견을 위한 암 진찰, 거기에 무슨 이의(異意)가 있을까만 꼭 그렇지는 않았다. 내 또래 나이에 더러 찾아오는 질병이라면서 이름하여 전립선 암 이상유무를 확인한다는 순간, 사색(死色)이 완연한 모습으로 간이 콩알만 한 채 진찰실 간이침대에 몸을 던졌다. 나에게도 과연 검은 불청객은 찾아왔을까?.
그리고 이어지는 말할 수 없는 불안감과 함께 오는 공포의 시간, 그날따라 진찰실 철침대의 온도가 왜 그리 차갑던지 그리고 한 참 후 “이상 무!”라는 소리에 따르는 급격하게 변하는 온도의 차이는 그야말로 천당과 지옥을 오가던 순간이었다고 말하면 될까.
어머님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물론 일차다. 그리고 만감이 교차한다. 그날따라 읽었던 어느 토막기사도 떠오른다. 캘리포니아에서 암 투병의 마지막 한계에 다른 10세 소녀의 간절한 소원을 받아드린 영화사에서 급송한 “UP”이라는 만화영화의 DVD를 그는 이미 볼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는 슬픈 소식 말이다. 그리고 담배 한 개피를 원하며 부엉이바위에 섰던 어느 실없는 사람의 마지막 순간도 무력감 중에 느닷없이 떠오른다.
입관예배 순간에도 항상 남의 죽음이었을 뿐이지 그 앞에서 감히 나의 죽음을 생각해 보지 못했던, 평소에 모자랐던 나의 일그러진 모습도 저절로 그려진다. 그러면서 나의 사생관은 남과 달리 뚜렷하다며 죽음직전에 불안이나 공포 같은 건 있을 수 없는 양 오만, 교만 있는 대로 다 떨던 순간의 모습들도 필름처럼 스쳐간다.
병원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는 가족에게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가며 “자 나이아가라행”이라고 외치며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얼마 후 폭포근처에 있는 영빈관이라는 한국식당에서 정균섭 작가와 마주했다. 한 달에 한번 꼴로 만날 때마다 우리의 고정메뉴로 등장하는 소주 두병에 돌아가며 섞어먹는 얼큰한 콤보메뉴가 전부인데 이날은 예외다. “오늘은 축하하는 의미에서 제가 왕창 쏜다”며 두부를 위시한 건강식탁으로 업그레이드한 메뉴를 오더 한다. 오전 매상을 날리기로 작심하고 온 양 “위하여”를 외치는 온탕속의 축제는 한참 이어졌고 이어 어둠이 내리고 있는 폭포를 뒤로하고 귀로에 들어섰다. 그리고 운전대 옆에 앉은 나는 그날따라 예사로 보이지 않는 전부가 아름답게만 보이는 호수주변들의 풍경을 새로운 기분으로 감상했다. 병원을 피할 이유가 없다는 때늦은 후회성 자각도 하면서 말이다.
그래 어느 사람의 유언처럼 삶과 죽음은 자연의 한 조각이다. 즉 삶과 죽음은 하나다.
태어남으로써 부여된 삶의 의미에 충실해야 한다는 각오도 새삼스레 했다. 후회 없이 살다 간다는 말을 남기는 것으로 끝내기엔 나의 경우 너무 이기적인 주장일지 모른다. 특히 기억할만한 과속이나 저속 없이 비교적 제한속도 속에서 달려온 내 인생마일레지를 다시 조명해보기도 했다. 남을 위해 살아 본적은 기억에 거의 없다. 언론인으로써 곧바른 외길인생이라고 더러 추켜 주는 분들도 있었으나 진실과 거리가 먼 위로차원이다. 나는 그렇게 살지를 못했다.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내려놓음”에 인색했던 삶이 전부 아닌가! 이제 남은 여생이라도 “내려놓음”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때늦은 후회와 함께 새로운 각오의 다짐을 했다면 뜻밖에 겪었던 그날 그 냉탕과 온탕을 헤매며 공짜로 얻은 축복 아니겠는가!. 그렇다. 남은 여생이라도 “내려놓음”의 자세로 뻥 뚫려있던 그 빈자리를 하나님의 계명인 사랑으로 채우며 가리라. 그 분 보시기에 아름다운 미처 해보지 못했던 그 “내려놓음”의 자세로 말이다. kwd70@hotmail.com <693/2009-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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