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동칼럼> 어머니날과 생일에 대한 단상

<김원동칼럼> 어머니날과 생일에 대한 단상

올해도 어느새 어머니날이 성큼 다가온다. 그 날이면 나는 어머님을 사모하고 그리는 남다른 정으로 흐뭇한 하루일과를 보낸다. 이른 새벽 친지가 경영하는 꽃집으로 가서 하루 왼 종일 꽃 배달을 하는 것이 이젠 연중행사다. 자식들이 부모에게 보내는 꽃다발을 전해주며 느끼는데서 오는 대리만족이랄까. 그 순간이야 말로 내가 받는 수고료에 비할 수 없는 몇 백 몇 천배의 기쁨으로 되돌아오기에 연중행사처럼 치른다. 꽃다발을 들고 초인종을 누를 때 꼭 나의 어머니가 문을 열고 나오는 듯 한 착각의 순간 또한 어디 한두 번이었을까!.
어머니날에 대한 단상! 그래 필자에겐 어머니에 대한 남다르고 별난 사랑의 의미가 짙게 깔려있는 구석이 도사리고 있다. 무엇이 남과 다르기에 한때 어느 라디오 방송국에서는 어머니날 특집프로에 초대하려던 앵커가 필자의 남다른 어머니사랑에 대한 견해를 청취자들과 함께 듣고 싶다는 전갈을 넣은 적도 있으나 꼭 청문회 같아서 사양하고 말았다.
6.25사변 다음해 열 세 살짜리 필자를 두고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셨다. 살아 계시면 언젠가는 효도할 날도 있었을 텐데 뭐가 그리 급하셔서 홀연히 떠나셨다. 다음해에는 아버지를 여이고. 망망대해에 일엽편주 같은 신세를 만들어주고 두 분은 말없이 떠나시고 말았다. 그리고 반세기를 넘는 세월 아무리 어머니를 불러 봐도 메아리는 허공을 맴돌고 있다.
나는 어머니를 여윈 후부터 그 57년의 긴긴 세월을 남들처럼 생일을 챙기는 법이 없다. 남들의 생일날에는 수없이 많은 생일 축하 송을 불러주며 축하 케이크를 얻어 먹어보았지만 난 한 차례도 그렇질 못했다. 나를 나아주신 어머님이 안 계시는데 누구와 생일파티를 하느냐 라는 외고집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9년 전인가 이번에는 회갑이니 예외로 치고 딱 한번만 생일을 치르자는 가족의 당부를 뒤로하고 이른 새벽 스키장으로 갔던 일도 있다.
그런 나에게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어느 날의 기억은 아직도 고스란히 뇌리를 떠나지 않고 남아있다. 사반세기 전쯤이다. 가까이 지나던 친구의 집에 우연히 들렸던 순간이다. 그날 그 집 외아들이 생일날이라며 리빙룸에는 아들과 남녀 친구들이 모여 생일파티를 벌리고 있기에 2세들의 생일문화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그를 낳아 준 어머니는 부엌에서 앞치마를 걸친 채 지짐을 붙이고 있었다. 나를 까무라치게 만드는 외마디 비명 같은 것이 20대 초반인 그 날의 주인공인 아들 입에서 나왔다. “엄마 빨리 안 가지고 오고 뭣해”라는 그 말. 그래 조금만 기다려 라며 땀을 뻘뻘 흘리시는 어머님의 모습에서 나는 “이게 아닌데”를 수 없이 외치며 그 집을 나섰다.
나에게 어머니가 생존해 계신다면 나는 아마 생일날 하루를 어머니와 함께 보낼 것이다. 드라이브도 하고 선물도 사 드리고 그 옛날 그 시절 나를 낳으실 때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을 참아주신 그 어머님을 나는 그 날의 파트너로 모시고 다닐 것이다. 그 어떤 이의 축하도 의미 없다. 낳아주신 그 어머님의 은혜를 보답하는 날로 생일의 의미를 부여 할 뿐이다.
올해의 어머니날도 나는 이름 모를 사람들의 집을 찾아 꽃바구니를 든 손으로 초인종을 누 룰 것이며 엄동설한 중에 있을 나의 일흔 한 번째의 출생일도 필경 모르고 지날 것이다. 어쩌면 어머니와 한 나 혼자만의 깰 수 없는 약속이기에 그럴지 모른다. kwd70@hotmail.com<685/2009-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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